어느 아주머니가 버스를 탔는데 지갑을 깜빡했나 보다. 순간 난감한 상황이다. "어쩌면 좋지요" 버스기사의 눈치가 좋지 않다. 그때 버스 안쪽에서 " 내 카드 쓰세요" 동시에 한 두 분이 소리쳤다. 그 아주머니는 "그래도 미안해서요" 하며 주저하자 " 신경 쓰지 말아요. 살다 보면 그럴 있지 수요"
훈훈한 장면이다. 차창만 바라보던 나는 약간 창피했다.
# 작은 친절이 큰 보답으로
미국 네바다주 사막 한 복판에서 낡은 트럭을 몰고 가던 "멜빈 다마"라는
한 젊은이가 허름한 차림의 노인을 발견하고 급히 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어디까지 가십니까?
타시죠! 제가 태워 드릴게요!"
그 노인은
"고맙소 젊은이!
라스베이거스까지 가는데 태워다 줄 수 있겠소? 목적지에 도착 후 가난한 노인이라 생각한 젊은이는 25센트를 주면서
"영감님! 차비에 보태 쓰세요!"
그러자 노인은
"참 친절한 젊은 이로구먼!"
"내 이 신세는 꼭 갚겠네!
그 후 세월이 흘러 이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을 무렵에 기상천외한 사건이 일어났다.
[세계적인 부호 하워드 휴즈 사망]이란 기사와 유언장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유산 중에 16분의 1을 '멜빈 다마'에게 증여한다는 내용이
유언장에 기록되어 있었다.
16분의 1은 1억 5000만 달러이며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2천억 원가량이었다.
낡은 트럭을 태워준 친절과 25센트의 차비로 친절을 투자한 것이 2천억 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 글이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보여준다. 친절의 가치는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것이다.(좋은 글에서 발췌)
#작은 친절
친절은 관심과 배려다.
무거운 물건 들어주기, 리어카 밀어주기, 자리 양보, 깜빡이 신호 넣기, 엘리베이터 기다려주기, 길가 쓰레기 줍기 등등
관심만 있다면 우리 주변에는 작은 친절 거리가 많다.
"그냥 지나치지 않는가?"
"바빠서 , 힘들어서, 나중에"하며 위안을 삼는다.
#응원 댓글공유
카카오 같이 가치는 모금 사이트다.
누군가를 돕는 내용을 보고 기부도 하는데, 공유, 응원과 댓글만 달아도 카카오에서 100원씩 지원을 해준다.
코로나로 힘든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을 위한 상생 도시락, 우크라이나 피란민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수백만 원의 성금을 모았다.
"여러분도 카카오 같이가치에 들어가서 응원과 댓글을 달아보아라!" "그리고 공유로 알려라!"
#SNS 안부
코로나 19로 비대면이 되다 보니 직접 만나기가 어려웠다. 전화나 문자, 카카오 톡으로 안부를 묻는 게 대세가 되었다.
좋은 글과 안부 카드 인사를 보내곤 한다. 카톡으로 수백 명에게 보내려면 열명씩 한 시간도 넘게 걸려 목도 아프고 손목도 저리는 중노동이다.
그래도 반가운 답글이 오면 기분 좋은 하루가 된다. 간혹 만나면 답장을 못해서 미안하다며 고맙다는 소리도 듣는다.
누군가를 잊지 않고 생각하면서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안부 전하 기는 기분 좋은 일이다. 예를 들면 매월 계절인사를 한다. "가을 문턱 9월입니다. 아침저녁 선선한 기운이 기분좋습니다.~~~"
#기도와 바람
종교와 무관하게 기도와 바람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만 하는 경우가 많다. 중보 기도라는 게 있다. 누군가가 잘되기를 바라며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는 것인데 큰 힘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가족을 넘어 사회, 국가, 전 세계로 연결된 삶을 살고 있다. 생각을 넓혀 이웃과 나라, 세계를 위해서도 기도하면 어떨까?
남을 위하는 마음 쓰기,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마음 쓰며 살아도 괜찮아
강원석님의 '희망'이라는 시를 옮겨본다.
희망
바람에 쓰러지고
뙤약볕에 말라가던
여린 풀입위로
흘러가던 구름이 건네준
작은 빗물 한 방울
그것이 희망이었다.
지금 네가
건네는
따뜻한 말한마디
지친 사람들에겐
그것이 희망이다
작은 친절과 안부, 응원 댓글, 기도와 바람이 생활습관이 되도록 하자!
누군가에는 희망을 주고 내 삶은 풍요로워지고 더 큰 나눔을 위한 바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