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퇴원한 젊은 여성 환자가 있다.
그 환자는 내 케이스 스터디 대상 환자로 다른 환자들에 비해 면담 시간이 길었고, 그렇기에 더욱더 빠르게 라포(rapport, 두 사람 사이의 상호신뢰관계) 형성이 될 수 있었다. 비교적 젊은 20대 여성 환자로 나와 나이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 조금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양극성 정동장애(Bipolar disdorder, 조증삽화와 우울증 삽화가 보이는 질환)와 신경성 식욕부진(대표적인 섭식장애)으로 진단받고 지속되는 자해 행동과 욕구가 조절되지 않아 거금을 들여 한번에 쇼핑을 하는 등 의사의 진단 하에 입원 치료가 필요함을 느껴 대략 3달 전 입원을 했던 환자였다.
"모르겠어요."
"엄마랑 전화하면 대화가 안 되어서 화가 나요. 다 던져버리고 싶어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너무 싫어요. 그래서 그냥 손가락 넣고 토했어요. "
"약이 너무 커요! 안 먹을래요."
"불안해요... 어렸을 때 겪었던 일을 자꾸 악몽으로 꾸게 되어요... 약 좀 주세요."
"우울해요. 나가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손목을 손톱으로 그었어요."
그 환자와 면담을 하면서 주로 들을 수 있었던 대화다.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문제를 토로하고 있던 환자였고, 이로 인해 주치의뿐 아니라 간호사와 타 직역의 선생님들의 많은 관심과 꾸준한 면담이 필요했던 분이었다. 게다가 그분은 내과적인 질환으로 1형 당뇨를 진단받아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관리가 필요했고, 이로 인해 잦은 병원 생활로 이미 지쳐 있었던 환자였다. 계속된 입퇴원 생활과 우울감 등으로 인해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주 불안감을 호소하였다. 타인이 이런 자신을 보면 얼마나 한심하게 여길지도 걱정된다고 하였다.
"가장 무서운 건요. 다시 입원하게 되는 거예요. 지금도 입원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잖아요. 이 시간이 너무 아깝고 불안해요. 저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요. 앞으로 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앞날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에 두려운 것이고 그것은 그 환자뿐 아니라 나 또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그 환자분께 지금 당장보단 멀리 볼 것을 말씀드렸다. 이곳은 환자분을 묶어두기 위해 있는 곳이 아닌, 앞으로 더 나아지기 위해 치료를 받는 곳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증상이 호전되는 것임을 설명드렸다. 감사하게도 그 환자분께서는 나의 말을 곱씹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약을 꼭 드셨고, 주치의와 면담을 꾸준히 하셨다.
3개월의 기간 끝에 환자분은 주치의 진단 하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신경 써드려야 할 것이 많았던 만큼 애정도 많이 갔던 환자기도 했다. 다들 그 환자분께서 웃으며 밝게 퇴원하시는 모습을 보고 장난스럽게 "다신 오지 말라"라고 했고, 그 환자분은 "오라 해도 안 올 거거든요!"라며 장난을 받아치며 퇴원하셨다.
이후 나는 그 환자분께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라며 이메일 주소를 알려드렸고, 간간히 메일을 받으면 답장을 해드리고 있다. 여전히 불안감과 우울감에 힘들어하시지만 입원 초기보단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스스로 존재 자체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고 호소하시며 타인에게 비추어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계셨는데, 이 또한 스스로 이겨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퇴원하셨으니 나는 멀리서 응원할 뿐이다. 우리 모두는 의미 있는 존재이며 그 환자분께서도 자신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