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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May 21. 2023

조금은 익숙해진

나는 정신과 간호사이다. 


남자 만성 조현병 환자 병동에서 근무하다가 3개월 전부터 여자 급성기 병동으로 부서 이동을 하여 일을 하고 있다. 동시에 나는 정신건강간호사 2급 수련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새로 옮긴 병동은 전 병동에 비하면 너무나도 정신이 없고 바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두려움이 컸고 불만도 많았다.


'아니, 수련생을 이렇게 힘든 곳으로 보내면 어쩌자는 거야?'


수련을 하면서 많이들 기피하는 급성기 병동으로 부서이동을 시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걸까? 하며 나는 온갖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에 힘들다며 아이처럼 징징거렸다. 다들 이해를 하면서 끝은 똑같이 말을 해주었다.


 '그래도 선생님, 정신과 간호사라면 한 번쯤 급성기도 겪어 봐야 해요. 수련하면서 힘들겠지만 조금만 힘내요. 아무리 연차가 높아도 급성기를 경험하지 못했으면 그건 진정한 정신과 간호사가 아니죠. '


처음 이 병동으로 왔을 때에는 나는 적잖은 충격을 먹었다. 만성 조현병 환자들만 보았을 때의 나는 정말 정신과 환자의 일부만 본 것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살면서 책으로만 보고 말로만 듣던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환자, 내 눈앞에서 스스로 목을 졸라 자살시도를 하는 환자, 화가 난다며 병동이 떠나가도록 악을 지르며 스스로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환자, 3일 내내 식사와 약을 모두 거부하는 환자, 기분이 자꾸 울적하다며 손톱으로 자해를 하는 환자, 나는 환자가 아니라며 너네가 뭐길래 나를 강제로 입원시키냐 난리 치는 환자 등 정말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환자를 볼 수 있었다. 


만성 조현병 환자들은 일단 조현병 진단을 받고 장기간 병동에 입원해 계신 분이 많아 인지기능저하도 되어있는 분이 많고 큰 사건이 있지 않다면 병동이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이곳 급성기 병동의 환자들은 대체적으로 비교적 연령대가 낮아 20~30대가 많고 발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끊임없는 보호자들의 관심, 잦은 입퇴원으로 병동이 시끌 시끌했다. 



조금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출근하기 전 항상 마음속으로 '새로운 환자가 오더라고 제발 스테이블하길!'과 '제발 자가약(본원 약이 아닌 타 과약을 처방전 없이 들고 온다면 약국에 식별을 내리는 것뿐 아니라 약 개수에 맞춰 계산해 이어지도록 해야 하는 등 일이 훨씬 많아진다) 많이 들고 오지만 말아주세요...!'라며 빌게 되었다.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보니깐 서로 예민한 것도 크다. 조금만 시끄러워도 툭하면 싸우고, 특히 양극성 정동장애(조증과 우울증 삽화를 보이는 것) 환자분들은 쉽게 과민해져 사소한 일에도 크게 터지는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다른 환자에게 폭력을 쓸까 조마조마하고 중재할 때에도 골머리가 아프다. 게다가 가끔 나를 찾아와 "선생님, 제가 지금 너무 화가 나서 미치겠어요. 감정 조절이 안되고 그냥 다 죽여버리고 싶고... 그냥 미치겠어요!"라며 호소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때에는 주치의에게 바로 콜 해서 오더 하에 진정제 주사를 놓던지 경구약을 투약한다. 


내가 이 병동에 와서 가장 나의 속을 썩인 환자가 있는데, 나랑 나이대가 비슷한 여자 환자로 제1형 당뇨를 가지고 있어 주기적으로 혈당 체크와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환자다. 처음 이곳에 입원하면서부터 정신과 약을 먹기 싫다며 떼를 쓰고 펑펑 우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주치의에게 노티를 했지만 어떻게든 약을 먹이라고 했다. 


'아니, 격리를 하든, 강박을 하든, 주사를 놓든, 환자가 안 먹겠다는데 어떻게 강제로 먹여?'라는 생각이 들며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속으로 만화처럼 환자의 입에 약을 넣고 구개반사를 시켜 약을 먹이는 상상을 했다. 나이대는 나랑 비슷한데 어떻게 저렇게 떼를 쓰지?라는 생각에 황당하기도 했다. 


약뿐만이 아니다. 당뇨를 가진 환자라 꾸준한 식이섭취는 필수이건만, 어떻게 anorexia(신경성 식욕 부진증)까지 있어 밥을 먹으면 억지로 구토를 하고, 속이 쓰리다고 식이를 거부하고, 가아끔 간식만 먹어 혈당 수치는 널뛰기를 했다. 매번 약 먹어달라, 밥 좀 먹어달라라며 사정할 때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도 여러 번 들었다. 동시에 울적하다며 스스로 자해도 많이 하는 환자로 내 기준  관심 대상 1호 환자였다. 



그래도 그 환자분은 이제 좀 나랑 여러 번 실랑이도 벌이고 부딪히는 일이 많다 보니 애정도 생겼다. 출근하면 반갑게 맞아주는 분 이기도 하고 (아직도 식사 거부를 해서 저혈당이 오거나 딜을 하며 계속해서 약을 가장 마지막에 먹겠다며 실랑이를 벌이긴 하지만) 내가 좋다며 라운딩을 돌 때 이것저것 무슨 일이 있었는지 웃으며 얘기도 해주신다.  





최근에는 병동이 좀 많이 시끌벅적했었다. 입원하는 환자분들마다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대 초반 여성 환자는 양극성 정동 장애였는데 섭십장애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사람들과 부딪히고 최근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어니 폭력을 가해 그 이후부터 우울증이 심해졌다고 하며 입원을 한 환자였다. 그분은 입원한 지 2일 만에 퇴원을 했다. 흡연을 하는 분이었는데 병동 생활 규칙 상 흡연 시간과 횟수가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근무자와 갈등이 일어났다. 


"XX!!! 너네가 뭔데!!!! 난 담배를 피워야 진정이 되는 사람이라고!!! 이딴곳이 감옥이지 뭔 병원이야? 인권위원회에 신고해 버릴 거야!!"  


온갖 욕을 하며 소리를 질러가며 난동을 피워 바로 주치의를 콜 했다. 주치의는 보호자와 연락을 통해 다음날 아침 원무과가 출근하자마자 퇴원 수속을 밟자고 했다. 주치의가 있는데도 소리소리 지르며 스테이션으로 자꾸만 들어왔고, 맞고 있던 수액을 핸드백 마냥 들고 나와 돌아다녀 수액이 막히기도 했다. 결국에는 다음날 아침 일찍 바로 퇴원을 했지만 퇴원 전까지도 난리도 아니었다. 근무자들에게 쌍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병동이 떠나가라 난리를 피우고 원무과에서 퇴원수속이 늦어지자 또 그곳에 쌍욕을 했다. 그 환자분이 퇴원하고 나서 모든 근무자들은 하얗게 질려버린 상태였다. 



또 어떤 환자는 종교망상이 있는 40대 중반 여성 조현병 환자로 퇴원을 하고 나서 약을 불규칙적으로 먹고 결국에는 자신의 맘대로 끊자 증상이 악화되었고 경찰 대동하에 입원을 한 환자였다. 오자마자부터 "난 입원한 게 아니야. 나 건들지 마. 가만히 안 있을 거야."라고 하더니 이윽고 "아아악!!!! 난 천사인데 너네가 뭔데  날 입원시켜!!!! 천벌 받을 놈들아!!!!"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스테이션에 붙여져 있던 코팅종이를 구겨버리고 온몸을 휘저으며 때리려고 하자 다른 병동 보호사님들의 지원을 받고 2세트의 진정제 주사를 맞자 겨우 잠에 들었다. 뭐, 이후에도 계속해서 보호실 문을 발로 차고 소리 지르고 욕했지만 약을 꾸준히 드시고 보호사님을 신부님으로 망상호소를 하며 '신부님의 말은 절대적으로 들어야 한다'며 이후로는 병동에서 난리를 치시는 일은 없었다.



정말 짧은 기간이었는데도 정신이 없었다. 3개월 즈음되니깐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일단 어느 정도는 병동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되어 처음보단 아무래도 익숙해졌다. 워낙 정신이 없고 내가 모르는 서류도 많아 알아가야 할 것이 많지만... 더욱더 익숙해지리라 믿는다. 물론, 수련생이기에 쉬는 날에 나와서 센터 실습을 하고 근무가 끝나도 집에 가지 않고 병동 실습과 사례 회의, 매주 수업과 과제를 해야 하기에 기본적으로 수면 부족 상태인 것은 익숙해지지 않지만... 이 1년도 얼른 가리라 믿는다. 지금도 야간근무를 끝내고 집에 가서 자지 않고 실습 중인데 오랜만에 브런치가 생각나 조금씩 끄적이다 보니 글이 길어진 것 같다. 이제 어서 과제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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