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 Apr 22. 2023

조금은 벅찬 나날들 하지만

급성기 간호사의 하소연하는? 일기

쾅!!!



새벽 한 시 나는 문을 박차고 집 밖으로 나갔다. 눈엔 눈물이 가득 차 쉴 새 없이 얼굴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무한테도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허한 마음이 들었고 답답했다. 그저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집에 더 있다간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조금은 웃겼다. 그날 오전만 해도 사람들과 웃으며 학회도 갔다고 오고 끝나고 저녁에는 친구와 간단하게 술 한잔 기울이며 요새 근황을 이야기하느라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집에 오고 나서 조금씩 도는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마음속 깊이 꽁꽁 봉인해 놓았던 나의 감정이 펑하고 터져 밖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아무 이유 없이 터진 것은 아니었다. 


"너 간호사 일 하잖아. 뭐 하는지 내가 정확히 어떻게 아니?"


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엄마의 툭 던진 한마디에 나는 말 그대로 펑 터져버렸다. 


"어떻게 딸이 뭘 하는지 몰라? 나한테 너무 관심 없는 거 아냐?"

"갑자기 저녁 늦게 와서 왜 이래? 술주정이야?"

"내가 요새 힘든 건 알아?"

"네가 힘들게 뭐가 있는데 그래? 그냥 좀 바쁜 거가지고 유난은"

"뭐라고?"


그 소리에 깬 아빠는 내게 삿대질하며 화를 냈다.


"야, 이 늦은 저녁에 뭐 하는 짓이야? 너 좀 바쁘다고 유난 떨어? 조용히 안 해? 그렇게 힘들면 그냥 때려치우지 왜 가족한테 난리야, 난리는?"


그 말에 나는 급격하게 화가 났다. 감정이 격해지고 눈물이 차오르며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새벽에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난 그냥 정말 조금의 공감을 원했던 것뿐이다. 다 큰 성인이 그렇게 어린애 같이 굴고 싶지도 않았고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가족에게서 정말 조금의 온기를 바랐을 뿐이었는데! 

 





인정한다. 요새 나는 좀 제정신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봤어야 하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가볍게 무시하며 온갖 감정을 꾹꾹 눌러버렸다. 나는 최근 부서 이동을 했는데 그게 급성기 병동이었고 거기다가 정신건강전문요원 수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 급성기 병동은 전에 내가 있었던 만성 병동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밖에서 타인에게 칼을 휘두르거나 온갖 범죄를 저질러 경찰에게 잡혀온 환자, 자살 시도를 하다가 잡혀온 환자(요새 병동에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우울증이 심해져 치료받고 쉬고 싶어 입원한 환자, 우울과 조증이 함께 있는 양극성장애로 진단받아 피해망상이 너무 심해져 남편과 칼부림을 하면서 싸우고 누군가 자신을 지켜본다며 집안의 가구를 다 갖다 버리는 등 시끄러워 이웃으로부터 신고를 받고 입원한 환자 등 상태가 좋지 않은 온갖 환자들이 입원하는 곳이었다. (남자 급성기 병동에서 일을 하는 동기의 말에 의하면 그곳은 최근 우울증 환자와 젊은 군인들이 많이 입원한다고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병동은 정신없이 바빴고 떠들썩하였다. 이리저리 서로 소리 지르고 근무자를 남편이라며 망상을 호소하고 다른 환자가 자신의 남편을 꼬셨다면서 죽이겠다고 소리 지르고 욕하는 환자, 어느 한쪽에서는 하루종일 흐느끼며 한 끼도 먹지 않으며 죽고 싶다고 표현하는 환자, 다른 한쪽에서는 과호흡을 하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살려 달라며 공황 증세를 호소하는 환자도 있었다. 급성기는 비교적 젊은 환자들이었고, 정신 질환 발현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분들이 많았다. 



하루에 몇 번씩 주사제를 쓰는 일이 많았고 식사를 한 끼도 하지 않아 제발 조금이라도 먹어달라며 환자에게 애원을 했다. 계속해서 우는 환자가 있어 하루에 몇 번이고 환자를 찾아가 면담을 했다. 그리고 최근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나는 정신 질환이 없다. 너네들이 뭔데 날 입원시키냐. 난 원해서 입원한 게 아니라 강제로 입원당한 것이다"이었고 그 환자는 근무자에게 온갖 쌍욕을 했다. 그래서 닥터에게 노티를 했더니 환자를 격리시켜달라고 해서 보호실에 들어가도록 했더니 그 환자는 보호실 벽지를 뜯어놓고 발로 문을 쾅쾅 쳐서 문이 휘는 일도 있었다. 


급성기다 보니 아무래도 주치의들, 레지던트들이 매일 병동에 오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에 몇 번씩 방문하여 환자 상태를 보기도 했다. 그렇게 면담을 하고 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약이 변경되었고 간호사인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약을 빼고 약국에 다녀와 새로 바뀐 약을 받아왔다. 문제는 데이 근무자가 정신이 없어 약을 빼놓지 못하면 이브닝 근무자는 그대로 잘못된 용량 혹은 약을 환자에게 투약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민해져 있는 상태로 몇 번씩 집착(?)하면서 약을 제대로 뺐는지, 약을 제대로 받아왔는지, 용량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 


가장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다면 신환(새롭게 입원한 환자)이 입원 시에 집에서 먹든 안 먹든 정체불명의 온갖 약들을 바리바리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약을 하나하나씩 개수도 세어야 하고 정체를 알 수 없으면 약국에 약품식별을 내려 무슨 약인지 알아야 한다. 정신과 환자들은 대게 불규칙하게 약을 먹지도 않아 아침 점심 저녁약도 개수가 다 다르다. 그럼 어떻게 처방을 받아야 할지도 머리가 아팠다. 당뇨나 고지혈증, 고혈압약과 같은 정신과 약이 아닌 내과약이라면 무조건 약국이 문을 닫기 전에 주치의 처방을 받아 저녁부터 이어서 먹을 수 있도록 약을 받아와야 했다. 우리 병원 같은 경우는 신환이 오후 3시 반~4시 사이에 많이 오는데 약국은 오후 5시 반이면 문을 닫아 신환이 바리바리 온갖 약을 가지고 온 모습을 멀리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나의 심장은 미친 듯이 빠르게 뛰었고 그것은 마치 내가 레이싱 선수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금 수련하고 있는 정신전문요원은... 이것도 참 정신없이 바쁘다. 내가 오후 근무를 가기 전 실습을 가거나 쉬는 날 센터든 병원이든 실습을 나가야 했고 매주 월, 화는 다른 대학병원에 가서 오후에 3~4시간 수업을 들어야 해서 오전 근무를 끝내자마자 미친 듯이 운전해서 가야 했다. 매주 목요일은 4시간 사례회의가 있어 참석해야 했는데 문제는 야간근무를 끝내고 오전 8시 즈음 퇴근을 했는데 오후 1시에 회의에 참석해야 해서 집에 가서 잘 시간이 부족하다 느껴 차에서 잔 적이 있었는데 참 세상 우울해져 그 뒤부턴 억지로라도 집에 가서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회의에 참석했고, 끝나고 나서 또 한두 시간 선잠을 잔 뒤 다시 병원으로 와 야간근무를 나와야 했다. 


센터와 병원 실습도 시간을 채워야 하는 동시에 수업과 과제, 그리고 학술대회 참여, 타 기관 방문, 매주사례회의, 사례 발표, 시험 등 일을 하며 모두 해내야 했기에 지금 정말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뎌내야만 했다. 지금까지 수료해 온 선배들이 정말 존경스럽고 왜 선배들이 내게 '체력을 미리 길러두어라', '삶의 질이 바닥 치는 수준이 아니라 저 지하 밑바닥 끝까지 곤두박질 칠 것이다'라고 했는지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다시 돌아와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차곡차곡 힘든 감정이 쌓여가기 시작했고 이제야 팡 터져버린 것이었다. 우울증 환자가 워낙 많은 터라 나는 환자들에게 웃으면서 다가가 일부로 말도 계속해서 걸었고 '죽고 싶다' '너무 힘들다'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라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계속해서 격려를 해주었는데 어제의 내가 환자분들과 같은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참으로 복잡했다. 



내가 환자들에게 동화되어 버린 것일까? 

다른 동기들도 잘하고 있는데 나는 왜 벌써부터 터져버린 거지, 내 의지가 이렇게 약했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오늘 하루종일 내가 일을 하면서 온갖 생각들이 들어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제 온갖 눈물을 뽑아내고 나니 힘은 조금 없지만 격앙되었던 나의 감정이 조금은 차분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긴 게 있다면 제정신이 아니었던 내게 아빠가 '그럴 거면 때려치워!'라고 했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난 할 거야!'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말이다. 예전의 나였으면 '그래, 내가 왜 이러고 살아, 때려치워!'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나는 정신과 간호사를 원해서 선택했고 분명 지금은 힘든 것이 맞지만 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견딜 것이다. 나와 같이 정신과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주었으면 좋겠다. 이는 최근에 많이 드는 생각 중 하나이다. 


사실 내가 브런치를 잊고 살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오후 근무를 마치고 내일 실습을 가지 않기로 마음먹어(나를 위해 늦잠을 자다가 출근을 할 것이다) 글을 쓰게 되었다. 오랜만에 쓰니 정말 수다스럽게 쓴 것 같은데... 조금은 부끄러운 것 같다. 궁금할 수도 있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아침에 가족이랑 화해(?)는 해서 풀었다. 힘들어하는 내게 쏘아붙인 것이 미안하셨는지 부모님께서 내게 머쓱하게 다가와 '밥이나 먹으러 가자 개딸'이라며 장난도 치셨다. 다행이다.


앞으로도 시간이 좀 나고 체력이 되어서 간간히 브런치 글을 쓰면 좋으련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다.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 두 밤을 놔두고 일어난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