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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Feb 24. 2023

마지막 두 밤을 놔두고 일어난 일

정신과 간호사 야간근무 일지

나는 현재 만성 조현병 남성 환자분들이 입원해 계신 병동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곧 로테이션(부서이동)을 가게 되는데 내가 앞으로 갈 곳은 급성 조현병, 우울증, 양극성 장애(조증과 우울증 삽화를 가진 질환)를 진단받으신 여성 환자분들이 입원해 계신 곳이다. 앞으로 야간근무 두 밤을 끝내고 나면 1년 반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동고동락한 이 정든 병동을 떠난다. 그렇기에 조금 아쉽기도 하고 앞으로 조금 더 일하기 힘든 곳으로 간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서기도 하다. 일을 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겠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조금 더 꼼꼼히 일을 했다. 동시에 일에 집중이 되지 않을 때 잠깐잠깐씩 내가 앞으로 갈 병동의 카덱스를 보며 어떤 환자분들이 계신 건지 쓱 훑어보았다. 그렇게 한창 모니터를 눈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콩!


맑고 경쾌한,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처음 병동에 왔을 때 이 소리를 들었을 땐 무슨 소리인지 몰라 깜짝 놀랐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병동 화장실 문 소리였다. (참고로 정신과 병동 화장실 문은 잠글 수 없다. 안에서 다양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야간근무 때 일을 하다 보면 병동이 워낙 조용해 자주 들을 수 있는 소리다.


그렇게 나는 다시 모니터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쾅-!!!!!!!!!!!!!!!!!!!!!!!!!!!



이번엔 다른 소리였다. 평소에는 들을 수 없는, 엄청나게 둔탁한 굉음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너무 깜짝 놀라 미어캣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끝에 병동 화장실이 있고 그 옆에 정수기가 있는데 그 앞에 검은 사람의 형체가 엎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자연스럽게 자동 혈압계과 산소포화도 기기를 가지고 냅다 달렸다.




가까이 가보니 환자 한 분이 낙상하여 앞으로 고꾸라져있었는데 엎어진 상태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쓰러져있으셨다. 바로 가까이에 의자가 있었는데 환자를 깨우고 일단 의자에 앉혀 혈압을 재려 했다. 환자분께서는 그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이리저리 환자를 살펴보았을 때 그 어떠한 외상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환자분을 의자로 끌어올려(그때 얼마나 놀랬는지 나에게 엄청난 힘이 나왔던 것 같다) 혈압을 쟀다. 자동혈압계로 측정을 하는데 자꾸 에러가 떴다. 내가 혈압계를 잘못 채운 것은 아닌 지 다시 봤지만 제대로 착용했다. 한번, 두 번 그렇게 계속 혈압을 재지 못하고 에러가 뜨는 모습을 보고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전에도 자동 혈압계로 쟀지만 자꾸 에러가 떠 수동 혈압계로 쟀는데 알고 보니 혈압이 너무나도 낮아 자동 혈압계로 측정이 안 되었던 것이었다. 그 기억이 문득 스쳐가며 이 분도 그런 것임을 직감하고 일단 최대한 침착하고 산소포화도(혈액 내 산소를 측정하여 우리 몸에 충분히 산소가 공급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를 측정하였다. 환자분의 산소포화도도 정상 수치보다 낮게 측정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환자분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잠에 취한 듯이 앞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나는 다급하게 보호사님을 불렀다. "보호사님! 이 환자분 보호실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보호사님께서 환자분의 한쪽 팔을 잡고 나는 반대쪽의 팔을 잡고 환자분을 cctv가 있는 보호실로 옮겼다. 환자분을 보호실 침상에 눕히고 혈압을 다시 쟀을 때 100/80mmHg가 측정되었다. 나는 조금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환자분께서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셨다. 나는 환자분의 몸을 세게 두드리기도 하고 꼬집어도 보았으나 환자분은 "어어.... 어..."라고 할 뿐 깨어나질 못하셨다. 나는 곧바로 스테이션으로 달려가 당직의 에게 콜 해 상황을 설명했다. 당직의는 곧바로 병동으로 올라오셨고 환자분을 다시 세게 두드렸더니 환자분께서 갑자기 화들짝 놀래 눈이 동그래지면서 나와 당직의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당직의는 환자의 기동력과 감각이상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고 (뇌에 손상이 있는지 어디 신체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간단하게 확인) "제가 누구인지 아세요?", "여기가 어디인가요?", "오늘 몇 월 몇일인지 아세요?"와 같이 orientation을 확인하였다. 환자분은 더듬더듬 느리게 대답을 하였다. 나는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환자분께서는 심장내과약을 드시는 분이고, 고혈압과 부정맥과 같은 기저질환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 아침에 혈압이 150/80~180/80mmHg까지 올라가시는 분이었다. 이는 절대 좋은 sign이 아님이 분명했다.



환자분에게 수액을 달고 코로나 간이 검사를 한 후 곧바로 응급실로 후송을 보냈다. 이후 해당 병원에서는 72시간의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이 와서 나는 바로 퇴원처리를 했다. 그제야 나는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처음 환자분께서 쓰러져있으신 걸 보았을 때 나는 나의 심박수가 올라가고 손끝부터 차가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환자분을 보내고 나서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환자분을 보내고 나서 나는 "와...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주네"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왔다. 이곳은 만성 조현병 환자분들이 많이 입원해 계신 곳이라 대체적으로 연세도 많으시고 그렇기에 다양한 기저질환을 가지고 계신 분도 많다. 어떤 분은 최근에 관상동맥(심장 근육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동맥혈관) 협착증이 와서 스텐트 시술을 하고 오셨다. 이분은 고혈압이 있어 약을 드시는데 아침 혈압을 재니 80/50mmHg가 나왔다. 곧바로 내과에 컨설트를 내 환자분의 고혈압약 조절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으나 내과에서는 이 환자분의 심장이 부담이 되지 않도록 혈압이 낮더라도 고혈압약을 계속 드셔야 된다고 답변이 왔다. 또한, COPD(만성 폐쇄성 폐질환)가 있어 아침마다 간호사가 흡입기를 적용시켜 드리는 분도 계시고, 전신 홍반성 루푸스라는 만성 자가면역 질환을 가져 고용량 스테로이드제와 소염제, 면역 억제제를 드셔야 하는 분 등 다양한 분이 계신다. 단순히 정신과라 해서 정신질환만 다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과적인 질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게다가 정신과에서는 낙상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데 절대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 최근에도 환자분들께서 흡연 후 산책을 하다 넘어져 안면부에 미세한 골절이 생기신 분, 이마가 찢어져 3cm 열상이 생겨 꿰매고 오신 분 등 낙상을 하는 것은 결코 우스운 것이 아니다.



두 밤을 남기고 마지막까지 낙상을 보게 되다니...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환자안전사건보고서를 쓰고 퇴근을 했다. 마지막 날인 오늘 밤! 오늘은 제발 스테이블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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