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각해 보면 나는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남들이 보기엔 그다지 큰 목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름 나만의 목표를 세우는 것을 좋아했고, 항상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 과정이 험난한 비탈길 같고, 중간에 잠시 다른 곳으로 새는 적이 있었다고 해도, 나는 나만의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30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앞으로만 나아가던 것을 멈추었다.
'이제는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게 정말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일까?'
5년 전, 나는 중간에 방황을 했었다. 하지만 젊은 나이의 패기답게 금방 훌훌 털어내고 금방 5년 뒤에 무엇을 할지 마인드 맵을 그려보고, 가장 현실적이고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일을 찾아 5년짜리 플랜을 세워 바로 실천을 했다. 정확히 4년째에, 나는 내가 계획했던 곳으로 왔다. 하지만 나는 그 시점에 머물러 있고, 후회는 하지 않지만 이 길이 내가 생각한 만큼 내가 원하던 길이 아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을 돌아볼 새도 없었고, 나는 내가 가고 있는 길을 확신하며 바쁘더라도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나는 무조건 서른이 되기 전, 앞으로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정착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30을 앞두고 몇 개월 남지 않은 나는, 5년 전과 같이 다시 방황을 하게 되었다. 또한, 서른이 되기 전에 정착을 하겠다는 나의 목표는 바보 같은 목표였음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서른이 넘어도, 마흔이 넘어도, 아직도 방황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끝없이 방황하고, 나아가고, 넘어지는 것의 연속선상에 놓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이 방황은.
나는 크나큰 상실감과 공허함을 느꼈다. 나의 주변은 나처럼 직장을 그만두며 계속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지 않고, 한 직장에서 오래 다니며 소중한 인연을 쌓았고, 어느덧 차곡하게 돈을 모으며 결혼을 하며 제2의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나'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을 잃었고, 아직도 너무나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과 남들이 생각하는 '평균적인'것에 도달하지 못해 '불량품'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남들이 가장 기피하는, 하지만 내가 가장 관심이 많고 사랑했던 '정신과'를 도전했던 나는 내 일을 사랑했다. 병원을 떠나 지역사회로 나아가면 어떨까 싶어 들어간 곳에서 나는 '나와 맞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잘 맞물려있는 기계 부품들 사이 '불량품'이 껴서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지역사회에 있는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대상자들(조현병, 중증 우울증, 조울증 등)을 만나며 면담을 하는데, 그들이 내게 '죽고 싶다', '왜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를 이야기할 때, 솔직히 말해서 공감이 되었다. 나 또한 어느 정도의 우울감은 가지고 있었고, 각박하고 살아가기 힘든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주 특별히 많은 노력을 기해야 한다. 조금만 달라도 '특별한'이 아닌 '기이한'과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찍히게 되며, 조금만 느려도 '뒤떨어진'사람으로 되어버리는 이곳에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하는 것이 너무나도 재밌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몇 시간 만에 두꺼운 책을 후루룩 읽어버리던 나를, 가볍게 글을 쓰거나 그림만 그리면 몰입하여 다른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내가, 항상 누굴 만나든 자신감을 잃지 않고 하하 웃으며 넘겨버리던 나는, 언젠가부터 책을 등한시했고, 집에 오면 피곤해서 어두운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자극적이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유튜브 시청이나 넷플릭스를 보며 시간만 때우다가 스트레스가 극에 달아 술로 하루를 금방 넘겨버렸다.
나처럼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 거지?'
너무 답답한 마음과 스트레스로 인해 나는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일이 끝나면 PT를 가는 등, 나는 나를 계속해서 괴롭혀왔다. 그 어떠한 공백도 주어지지 못하도록.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망가지고 있음을 느꼈다.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내가 많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언젠가 거울을 보았는데, 너무나도 지치고 '나'를 잃어버린 그 얼굴과 마주쳤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다.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나를 버려가면서, 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하게 사는'삶을 위해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생각조차 사치임을 너무 잘 안다. 30살이 넘으면 재 취업도 힘들고, 나를 불러주는 사람도 현저히 없을 것이며, 나는 남들보다 더욱더 뒤처질 것이다. 하지만 '나'를 잃어버린 채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나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이 내게 있어 또 한 번의 과도기임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번 크게 뒤틀려 새로운 인생의 챕터를 쓰는 시기인 것이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유튜브로도 찾아보고, Chat GPT로도 찾아보았다. 30대나, 40대에 새로운 인생의 전향점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 좌르륵. 다양한 사람들이 나왔다. 단 한 줄의 글로 그들을 요약해 내었지만, 그들도 얼마나 나처럼 많은 고민을 하고, 좌절하고, 노력했을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나처럼 인생의 방황기에 선 사람들에게 함께 힘을 내자고, 용기를 주고 싶다. 인생에는 답이 없으니깐.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걸 찾아가는 것 또한 잘 살고 있는 인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