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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Jan 31. 2022

익어가는 향수의 취향에 대하여

묵직하고 화려하고 관능적인 느낌의 향수는 어릴 적 머리 아프게만 느껴졌던 '엄마 향수'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오늘 오랜만의 백화점 나들이에서 한 분이 물었다. '디자이너세요?' 모델이에요. '그러실 것 같았어요.' 그리고 또 다른 한 분께는 '이 향수가 어울리실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이미지와 어울린다는 그 향수는 내가 평소에 쓰는 향보다도 조금 무겁고 복잡한 잔향을 풍겨 오고 있다.


나의 향수 취향은 나이가 들면서 더 무거워진다. 이 변화는 한해 한해가 다르다. 2020년 1월, 남프랑스에서 딥티크의 롬브르단로를 목욕 후, 자기 전, 외출 전 내내 뿌리며 나만의 프랑스의 향취를 만들어갔다. 물에 푹 적신 장미 한 떨기가 된것마냥 나 자신을 생각했다. 비쩍 마르고 머리는 숏컷에, 목이 약간 따가운 울 터틀넥과 벨벳 통바지를 질질 끌며 남프랑스의 해변을 저벅저벅 걷던 그 때. 한겨울임에도 토플리스(topless)로 누워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토플리스까진 아니더라도 상의를 벗어던지고 브라차림으로 옆에 누워보던 그 때. Cannes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랑스어 인스트럭션에 따라 요가를 하고 호텔에서 배쓰솔트를 풀어 반신욕을 한 뒤 나른해진 몸으로 창으로 들어오는 강렬한 햇살에 취해 사그락거리는 호텔 침구에 몸을 뉘이고 전라로 일광욕을 하며 따가운 겨울 햇살이 피부 속으로 들어오는 걸 느끼던 그 때. 물에 푹 적셨다가 햇빛에 말라비틀어진 장미의 이미지와 나 자신을 '롬브르단로를 뿌리며' 동일시했다. 불과 2년 전의 일인데, 그 향수가 요즘은 왜인지 너무 달게 느껴진다. 산타마리아노벨라의 무스치오 오로를 손목과 목 뒤에 바르는 지금은 깊어진 향수의 향기만큼 내 삶도 깊어진 것만 같다.


언젠가는 오늘 나에게 어울린다는 그 복잡미묘하고도 중후한 향을 매일같이 입는 날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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