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 안태원 이인전
고해상도의 이미지는 그것이 내가 실제로 본 것에 대한 위상이나 가치가 떨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 기억의 풍화를 막아줄 것만 같은 착각을 선사한다. 어린 시절 전시를 보러 가면, 작품의 사진을 찍곤 했다. 내가 본 이미지들이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언제든 나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그런 기록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요즘처럼 해상도가 좋은 핸드폰 카메라. 혹은 커다란 화면이 흔하지 않던 시기에 사진을 찍고 보는 것은 상당 귀찮고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비싼 가격을 주고, 고해상도의 이미지가 프린트된 도록을 모아나갔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한두 번 본 도록들은, 쌓여만가고 정리되지 않는 핸드폰 앨범 속 사진처럼 내팽개쳐진다.
이처럼 무용한 듯 보이는 고해상도 이미지에 대한 탐닉은 어린 시절부터 존재하던 욕구였다. 현재에도 360p의 영상보다는 720p를, 그것보다는 HD 영상을 보고자 한다. FHD, 2K, 4K로 나아가며 고해상도, 원본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욕망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영상과 이미지의 해상도의 단계는 퀄리티, 소비의 선호도 등을 통해 위계를 형성한다.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만들고 소비하는 것은, 자본의 크기와 비례한다. 더 좋은 카메라와, 더 많은 인력, 시간의 투자, 더 비싼 디스플레이 등, 자본을 토대로 이미지의 해상도는 몸집을 불려 간다. 고해상도에 대한 욕심은 자본의 힘을 빌려 원본에 가까워지고자 한다. 더 높은 위계를, 더 많은 권력을 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확히 이러한 욕망에 반대되는 방식 역시 몸집을 불려 나간다.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이미지가 유통되고. 짤, 밈이라는 형태로 확산되며,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각자의 흥미를 끄는 이미지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고해상도에 대한 욕구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원본성, 저작권 등에 신경 쓰지 않고, 재밌는 이미지들을 만들어 공유함으로써, 더 많은 시선을 갈구하고, 다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길 원한다.
인터넷을 향유하는 세대들은 자본력도, 인력을 모을 인프라도 부족한 이들이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문화, 주류 문화에 반하는 <밈>이라는 서브 컬쳐를 만들어낸다. 권력의 구도를 변화시키는 전복을 꾀한다. 지도, 위성이 가지는 수직적인 시각의 권력은 이미 구시대의 권력이 되었다. 수평적인 네트워크의 너비가 권력을 구성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가’가 권력이고, 그러한 네트워크의 구성이 권력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러한 방식으로 기성세대에 대항하는 힘을 만들어낸다. 확장에 목적을 둔 저용량의 이미지들은 고화질에 대한 강박을 점점 무력화한다. 자본의 힘으로 만들어진 고화질 이미지에서 파생된 작은 밈들은 아버지 격인 고화질 이미지의 위계를 갉아먹는다. 거대한 바위를 깎아내는 바람처럼, 디지털 풍화 작용을 일으킨다. 지도가, 위성이 세계의 판도를 바꾼 것처럼, 위계의 질서를 수직의 높이에서 수평의 너비로 전복시킨다.
<picren>은 작가들의 세대가 보면서 자라왔던, <강철의 연금술사>를 축약해서 부르는 일본식 제목 ‘히가렌’과 ‘picture’를 혼합한 제목이다. 이들이 보는 자신들의 소통 방식은 자신들의 시대를 함께 보낸 이미지들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 안에 포섭된 대상들은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로 인식한다. 인터넷 상의 빠른 속도는 공통된 서사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것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문자 언어보다는 이미지 언어였다. <picren>에서 한지훈, 안태원, 이 두 작가는 그러한 네트워크의 형성 알고리즘을 보여준다.
한지훈 작가는 우리가 어디선가 보았던 윈도우 배경화면, 텔레토비 등의 이미지를 픽셀은 연상시키는 작은 정사각형의 종이접기 파츠를 연결하여 그려낸다. 픽셀로의 환원에서 해체를, 종이접기를 만드는 재구성을 통해, 익숙한 이미지를 만들어나간다. 기존의 위계 안에 안착한 상징적인 이미지를 해체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환원하는 것, 전시장을 통해 온라인의 공간을 현재로 가져오며, 이것을 본 사람들이 다시금 이미지를 온라인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을 끝말잇기 하듯이 보여낸다. 이는 수직적 위계의 이미지를 수평적 위계로 전환하는 과정이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은 그래피티라는 서브 컬쳐의 발을 담그고 있던, 한지훈 작가의 인터넷 그래피티처럼 보인다. 자본의 지역 점유 체계를 자신의 점유 방식으로 치환하는 그래피티라는 서브컬쳐를 인터넷에서 위계를 구성하는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자신의 공간으로 만드는 한지훈의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형식의 인터넷 그래피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지훈 작가가 위계를 변환한다고 한다면, 안태원 작가는 그러한 변환된 위계 생성 알고리즘을 이어받아 자신의 네트워크의 너비를 넓혀나간다. 그는 ‘자신의 고양이가 락스타다.’라는 명제에 대한 위상을 원하고, 실현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위계를 만드는 방식이 이전에는 화려한 영상미가 넘쳐나고, 진짜 같은, 현실성에 기반한 거짓말이었다면, 안태원은 위트와 흥미로 퍼져나가는 밈의 알고리즘 속에서 이미지의 확산성을 통해 얻고자 한다. 인터넷 밈의 특징인 아마추어틱한 부조화와, 낮은 해상도에서 나오는 부조화 등, 웰 메이드라고 보기에는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빼앗는 시각을 탐한다. 옷 위에 보푸라기 같은 불편함을 만들기 위해 현실세계에서 어딘가 부조화를 일으키는 듯한, 어색한, 세그먼트가 부족해 보이는 모델링 같은 형태 위에 이미지를 맵핑한다. 작가는 부조화가 잡아채는 이러한 시선들 마저 끌어 모아, 자신의 고양이를 락스타로 만들고자 한다. 인터넷과 현실 공간 모두에서.
이미지의 생성과 소비가 디지털화되는 세계에서 자라난 이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고, 위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한 이러한 프로세스는, 새로운 방식의 위계를 만들어낸다. 다른 차원의 위계이기에, 풍화처럼 천천히 이전 시대의 위계를 파먹으며, 자리를 차지한다. 자신의 네트워크 속으로,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연대성으로 하나둘 포섭해 나가며, 다수의 힘을 만들어나갈 때, 이것의 파급은 얼마나 거대할까. 신화 속의 오이디푸스처럼 왕좌를 차지할 수 있을까? 자신의 손을 물어뜯는 귀여운 고양이가 정말 락스타가 될지도 모르는 이러한 새로운 위계의 프로세스를 <picren>이라는 전시를 통해 이들은 보여주는 동시에 이용한다.
한지훈 작가 insta. @hvnchi
안태원 작가 insta. @ppuri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