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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r 25. 2024

나를 키운 순간들, 내가 그려갈 세상

다시 청소를 시작합니다.

  이틀 전 어깨 시술을 받고 병원 침대 신세를 졌다. 때마다 밥을 갖다 주면 먹고 약을 먹으라면 먹었다. 하릴없이 수면과 치료만을 반복하는 이틀이었다. 

남편에게는 이런 호사를 언제 누려보겠냐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혼자 있으면 금세 우울해지곤 했다. 

4개월 전 헬스장에서 덤벨 숄더 프레스 운동을 하는데 왼쪽 어깨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근육통 젤만 바르고 며칠을 견디다 허리랑 목까지 아파져 와서 한 의원을 찾았다. 

침 몇 대만 맞으면 될 줄 알았다. 한의사 면담 후 사혈침으로 피를 뽑고, 부황에다 약 침까지 맞느라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한의원을 나서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렇게 4개월 동안 이틀에 한 번씩 침을 맞고 한약까지 먹었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잠을 자다가 뒤척일 때면 왼쪽 어깨와 팔이 아파서 깼고 옷을 입고 벗을 때는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팠다. 

나날이 더해지는 통증에 어쩔 수 없이 전문 병원을 찾았다. 

어깨 힘줄이 끊어지고 염증이 심해 시술이 급하다 했다. 


 간단한 시술이라는 의사 말에 가볍게 생각했다. 

시술 전 기본 검사와 목, 어깨, 허리 MRI 검사를 받았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검사를 묵묵히 견뎠다. 

귀마개를 썼지만, 기계음은 거슬렸고 차가운 금속이 닿자 소름이 끼쳤다. 

하는 수없이 눈을 감고 좋은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따스한 기억에 빠져들 때 즈음 검사가 끝이 났다. 환자복을 입고, 남편의 염려를 뒤로한 채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실 냉기에 바들바들 떨다가 졸리면 자라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니 수술실 밖이었다.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도 잠시, 심한 통증이 몰려들었다. 

누군지 모를 이에게 원망하듯 속으로 웅얼거렸다. ‘간단한 시술이라면서요?’ 진통제를 맞고도 한동안 끙끙댔다. 


인간은 통증 앞에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조금 있으면 나아질 거라는 위로도 소용없고 짜증만 났었다. 그러다 한 시간이 지나고, 통증이 견딜 만해지니까 비로소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이느라 고단할 텐데. 점심도 거른 채 수술실 밖을 서성였을 텐데. 아프다는 불평까지 참고 견뎌준 그 마음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괜찮으니 집으로 가서 쉬라 했더니 내가 좋아하는 단팥빵이랑 토마토주스를 사놓고 물병에 물을 가득 채운 다음에야 돌아갔다. 

시술후 회복중에 병원 창밖으로 보였던 일몰 풍경


 물리치료를 받은 후 침대에 누웠지만 잠들지 못하고 늦게까지 뒤척였다. 

플래시 불빛에 돌아보니 야근 중인 간호사가 환자의 혈압과 열 체크 중이었다. 

새벽 세 시, 피곤할 텐데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상냥했다. 

직업의식이 돋보이는 그녀들 덕분에 안심한 날 새삼 나를 돌아보았다. 


출근도 하지 않았는데 퇴근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언젠가는 출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때가 올 거야."라고 했는데 그 날이 이렇게 일찍 올 줄이야. 

나이는 일할 자유마저 빼앗는구나. 씁쓸한 마음 한 편으로 일할 수 있음이 행복임을 새삼 깨달았다. 

퇴원하고 3개월에 한 번씩 주사 치료를 받게 되었다. 

오후 반 차를 내고 병원으로 가는데 난데없이 비가 쏟아졌다. 

바람까지 몰아쳐 우산도 소용없었다. 겨우겨우 발걸음을 내디뎌 병원에 도착했다. 

바깥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병원에는 아픈 사람들로 넘쳐났다. 

여전히 적응 안 되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비에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욕실에서 머리를 말리다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물에 빠진 생쥐 꼴에 쓰러질 듯 창백하다. 그 순간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허물어지듯 잠이 들었다가 답답한 느낌에 새벽 두 시에 깨고 말았다. 거실로 나와 억지로 잠을 청했다. 어지러운 꿈들이 이어지다 다시 깨어난 시각은 새벽 5시, 더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화장실을 찾았다가 청소를 시작했다. 그동안 마음을 내지 못해 소홀했던 공간이었다. 솔을 꺼내 들고 세제를 묻혀서 세면대부터 화장실 바닥까지 구석구석 문질렀다. 

변기 뒤쪽의 찌든 얼룩과 벽타일 틈새 사이 곰팡이까지 말끔히 씻어냈다. 

마른 수건으로 물기까지 닦아내고 청소를 끝냈다.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사는 것은 매일 수고가 필요한 집안일 같다. 내버려 두면, 수고는 배가 되는 이치다. 청소를 마치고도 병원 예약 시간이 남아 있기에 글을 쓰며 나를 다독였다.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정성을 들이는 만큼 삶을 사랑할 수 있음을 이제는 알겠다."  글을 마무리하자 아침 해가 밝아왔다. 


허리 시술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마음이 불안했던 탓일까. 고작 1박 2일을 비우는 데도 자꾸만 집이 돌아다 보였다. 어깨 시술한 지 1년 만이다. 미루면 나중에 수술까지 가게 된다는 말에 서둘렀다. 남편 차에 타고 병원으로 가는데 깜빡이를 켜지 않고 불쑥 끼어든 차량 때문에 깜짝 놀랐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남편이 차창 문을 내렸다. 험한 말이 쏟아질 듯해 이러다 늦겠다며 남편을 재촉했다. 다행히 큰 소란 없이 병원에 도착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체한 듯 답답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검사받는 동안도 몹시 피곤했다. 


시술 준비가 끝나고 병실에서 주사를 맞자마자 일은 벌어졌다. 항생제가 들어갈 때 갑자기 쓴맛이 나더니 식은땀이 나고, 숨이 가빠 왔다. 

언젠가 경험했던 호흡 곤란이었다. 그 상태로 침대에 쓰러졌고, 비닐봉지로 과호흡을 조절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내과 의사가 달려오고, 시술 준비는 중단되었다. 

산소 호흡기를 코에 달고, 주사기를 모조리 뺐다. 간호사의 정신 차리라는 소리와 병원이니 안심하라는 말에 희미해진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떨어졌던 혈압이 회복되고 호흡이 안정을 찾아갔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었다. 

어지럼증에 휠체어를 타고 심장 초음파랑 추가 검사를 했지만 이상 소견은 없었다. 검사를 하고 병실을 올라오는 동안 몸이 회복되었지만, 시술은 거절되었다. 

대학병원에서 폐 정밀 진단 후 소견서를 제출하라는 말만 듣고 병원을 나섰다.


 어렵게 연차를 낸 탓에, 서둘러 당일 검사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해서 이대 목동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은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로 반짝였지만, 마음은 착잡했다. 

검사 영상 자료 CD와 진료 의뢰서를 제출했더니 호흡기 내과 담당의가 폐 문제는 아니란다. 다만 미주 신경성 실신일 가능성을 언급했다. 

과로,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시술 가능하다는 소견서를 써주었다. 추가 검사로 저 선량 폐 CT를 찍고 돌아왔다. 시술을 받고 싶다며 연락했지만, 한 달 더 지켜보자는 거절이 돌아왔다. 

병원에서는 당연한 조처지만 연차까지 냈다는 생각에 못내 아쉬웠다. 


 앞으로도 스트레스와 과로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것이니, 결국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의사가 언급했던 ‘미주 신경성 실신’에 관해 찾아보았다. 

원인은 장시간 과로, 불면, 피로, 정신적 스트레스 상황이나 복잡하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발생할 수가 있다고 씌어있었다. 

경험상 체기가 느껴지고 복통이 생기다가 식은땀이 나면서 호흡 곤란이 일어났었다. 외투를 벗고 비닐봉지를 이용해서 과호흡을 조절하기도 했고, 응급실로 향하던 차에서 회복이 된 적도 있었다. 전조증상은 그때그때 달랐지만 원인은 같았다.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수면의 질이 떨어져 피로는 쌓이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운동은 멈추고 글쓰기 욕심에 과로가 지속되었다. 

과호흡이 오기 전에는 늘 수면 부족과 체기가 잇따랐다. 

내버려 두니 몸에 먼지가 쌓이고 창문을 열어주지 않으니 마음에 곰팡이가 피는 건 아닐까. 세월에 흰머리가 내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건강관리는 내 몫이 아닐까.


 그래 청소를 시작하자. 소매를 걷어붙이는 마음으로 거실에 요가 매트를 깔았다. 

유튜브를 틀어서 다이어트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데스파시토 음악에 따라 줌바 댄스를 시작했다. 전주가 흐를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여졌고 반복되는 춤사위로 서서히 데워졌다. 춤 동작이 격렬해질수록 호흡은 가빠지고 땀범벅이 되었지만 힘든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은 가벼워졌다. 

전신 거울에 나를 비춰봤다. 비록 멈췄던 시간만큼 유연성이 떨어지고 실루엣은 무너졌지만, 땀에 젖은 모습은 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푸르렀다. 


연차를 냈던 5일 동안 미뤘던 병원 순례를 이어갔다. 증상은 달랐지만, 원인은 관리 소홀이었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날 저녁 노트북만 붙들고 있는 남편의 팔을 잡아끌고 저녁 산책을 나섰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이라 공원은 한적했다. 둘 밖에 없어서였을까. 남편이 속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회사 동료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일에 쫒겨 휴일도 반납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그렇게 끝나버리다니 삶이 너무 허망하다고 했다. 

그래,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 아니던가. 언제 어떤 식으로 마지막을 맞게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내게 주어진 기쁨을 즐기자고 마음 먹었다. 


 산책을 마치고 기분 좋게 잠들어서일까. 5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거실로 나와 고요한 풍경을 만끽한다. 눈만 마주치면 밥 달라고 온몸을 흔들어대는 거북이도 조용하고 벽시계만이 째깍째깍 초침 소리로 적막을 채운다. 느긋하게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카모마일 차로 맑아지는 시간이다. 

노트를 펼쳐 들고 끄적이다가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바람은 삶을 사랑하게 한다. 

돌아보니 몸이 하는 소리에 귀를 막고. 돌봄을 놓쳤다.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비싼 대가를 치른 깨달음이다.


 당장 출근길부터 바꿔보자 싶었다. 남편 차에 얻어 타는 대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도보로 35분, 걸으며 아침 풍경을 눈에 담았다. 

희뿌옇게 밝아오는 아침 햇살 속에서 걷거나 달리는 사람들, 훌라후프를 돌리는 사람과 근력운동을 하는 사람. 그들이 뿜어내는 생기가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내쉬는 들숨과 날숨, 서서히 데워지는 몸, 두 발로 대지를 누리는 기쁨에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마음의 일렁임에 발걸음마저 가볍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기분 좋은 온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외투를 벗어들고 지하철에 오른다. 뿌듯함이 가슴을 채우며 마음이 콩닥인다.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나는 더 이상 내 몸을 돌보는 일에 소홀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습관을 하나씩 만들어 갈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순간이 쌓여 더 나은 내가 될 것을 믿는다. 

나는 매일 쌓여가는 삶의 지꺼기를 청소하며 활기찬 삶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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