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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r 24. 2024

나를 키운 순간들, 내가 그려갈 세상

13년차 장애통합 교사의 갱년기 해방(극복, 탈출) 프로젝트


어느날 불면이 찾아오고 나잇살이 늘고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설마했던 불청객 ? 갱년기가 훅 다가온 것이였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매일  삶의 찌꺼기가 쌓여 갔다. 급기야 왼쪽 팔과 허리통증으로 병원쇼핑이 시작되었다. 

통증은 삶의 질을 떨어뜨렸고  답답하고 힘든 마음은 출구를 찾지 못해 버둥거렸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씨앗 하나로 출발해서 햇빛, 바람, 물과 영양분이 필요하듯이 사람도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라는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갱년기를 관리하며 시작한  돌봄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인생은 늘 출렁인다. 살아있으므로 겪는 일들이다. 출렁임 속에 중심을 다잡는 노력은 자기 몫이다.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이유가 있었고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은 내 선택이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는 해야 할 일들만을 우선으로 하고 살았다. 부모님들처럼 열심히만 살면 행복한 삶인 줄 알았다. 엄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희생과 사랑이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맛있는 건 자식에게 다 내어주며, 늘 괜찮다고 말하는 엄마, 나도 그런 엄마를 가졌었다. 엄마와의 시간을 떠올리다 엄마 인생에 엄마가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엄마도 꿈이 있었을까?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엄마도 딸이었다는 생각을 못 했었다. 엄마는 오로지 우리 엄마로서의 시간만 있을 뿐이었다. 그저 자식을 잘 양육하고 뒷바라지하고 남편 내조에 충실한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삶이었다. 


 엄마의 헌신과 희생이 갑갑하고 싫어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던 내가 엄마가 되었다. 외롭고 억울했던 마음들,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세상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들 때마다 엄마의 유전자와 함께 모성애를 이어받은 나를 발견했다. 아이들이 만 세 돌이 될 때까지 내 손으로 키우고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워킹맘의 하루는 출근부터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어린이집과 초등 돌봄으로 엄마 없는 자리를 메꿀 수 있었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을 씻기고 먹여야 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람으로 삼고 견뎠다. 어느 순간부턴가 아이들은 혼자 나고 자란 것처럼 굴었다. 작은 아파트건만 휴일에도 밥 먹을 때가 아니면 얼굴을 마주칠 수 없었다. 제 인생을 살아가느라 바쁜 아이들을 보며 공허함을 느꼈다.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견딜 수 있을까. 더 이상 엄마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삶의 소명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라는 인간의 쓸모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오후부터 온다던 비가 온종일 내리던 날이었다.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 참기 힘들 만큼 피곤했다. 평소에는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이 드는데 이상할 만치 잠이 오지 않았다. 겨우 잠들었나 했는데 깨보니 새벽 한 시였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마그네슘을 챙겨 먹고, 눈 마사지기를 사용해 봐도 아무 소용없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세던 것을 백 마리를 넘기고 거꾸로 몇 번을 돌려가며 셌는데도 여전히 말똥말똥했다. 자고 나면 잔걱정들은 씻은 듯 사라졌었다. 잠은 내게 만병통치약이었다. 이제는 마음이 복잡하거나 걱정이 생기면 잠이 오지 않는다. 어렵게 잠들어도 꿈을 자주 꾸고 깊게 잠들지 못한다. 피로가 피로를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나의 갱년기는 불면과 함께 왔다. 언젠가는 올 테지,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남의 얘기로만 여겼었다. 

 

 처음에는 변화를 받아들이기 싫었다. 하지만 이대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일상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았지만, 방법을 몰라서 고민하다가 밴드 검색을 시작했다. 도전해 보고 싶은 목록을 작성해서 새벽 기상 인증, 만 보 걷기, 매일 공부하기, 인문학 밴드, 독서 밴드, 정리 밴드, 영어 일기 등에 가입했다. 밴드를 개설한 리더들이 제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도전은 늘 설레고 희망찼다. 밴드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면서 좋은 습관을 만들고, 나에게 맞는 삶들을 하나씩 찾다 보니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불편했던 증상들의 빈도가 점차 줄어들고, 수면의 질도 조금씩 나아졌다. 고갈되었던 체력과 에너지가 회복되어 일상을 견딜 정도가 되었다. 설마 했던 갱년기가 왔지만 꽃이 떨어져야 열매 맺는 이치를 깨달았다. 괜찮지 않은 나를 안아주는 법을 배웠다. 나를 사랑하는 일로 채우기에 지금보다 좋은 때는 없었다.      

 

 "만남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달라지고 싶다면 만나는 사람과 환경을 바꾸라"는 말이 있다. 돌아보니 나를 키워준 것은 인연이었다. 곁에 있어 너무나 당연한 인연들, 성장으로 이끌어 준 인연, 스친 인연들까지도. 강력한 끌림으로 지금 내가 되었다. 처음 일상글을 쓰기 시작했던 나인여밴드, 글쓰기를 함께했던 오나이쓰 밴친들과 공저 작가들, 출간을 도와준 인독기 이주희 리더와 글쓰기 코치 송유진, 몽클 라이팅에서 글쓰기를 가르쳐 준 김민 작가, 공모전 도전 실패는 배움을 지속하게 하는 반면교사가 되어주었고, 책 나들이 밴드와 책 나들이 독서 모임은 선한 영향력을 베푸는 장이 되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김민 작가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말이다. 그는 평범한 이들의 반짝임을 찾게 해줘서 꿈길로 안내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 막연했던 꿈길에서 그를 만났고 글쓰기는 소망에서 현실이 되었다. 일상 글로 3년을 이어왔지만 감정들을 끄적여 놓은 일기에 불과했었다. 몽클 라이팅에서 김민 작가를 만나면서 공모전 도전과 공저 준비를 시작했다. 고비를 만날 때마다 괜한 일을 벌였다는 자책감에 숨고만 싶었다.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허둥대고 있을 때 작가는 괜찮다며 다정한 위로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진심은 사람이 낼 수 있는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기적을 일으킨다. 드디어 공저가 출간되었고 수익금은 모두 기부로 이어졌다. 처음으로 경험한 재능기부였다. 꿈꾸는 중년을 살고 있는 요즘은 매일이 기대되고 설렌다. 글쓰기를 떠올리기만 해도 콩닥이는 걸 보면 사랑에 빠졌을 때 그것과 닮아있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지금 읽거나 쓰고 있는 것들일 것이다. 지금을 꿈처럼 살 수 있었던 힘도 사람 덕분이었다. 

 사랑만큼 이별도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만남과 이별은 양면의 동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간 것이니 이젠 그만 놓아주자. 그들이 떠난 빈자리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다시 채워졌다. 하지만 그것들 역시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내 사전에서 미련이나 집착 같은 단어들을 지우기로 했다. 엄마로서의 사명과 여자로서의 역할을 내려놓으면서 나의 삶과 이름을 되찾았다. 지금 내 곁의 사람들을 다정히 껴안을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되었다.     

 

 성장, 이별, 사랑.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낱말들이다. 살아보니 당연한 관계는 없었다. 서로 노력할 때 사랑도, 신뢰도 따라오는 이치다. 아름다웠던 순간도 많은 이들의 사랑과 응원 덕분이었다. 돌아보니 살면서 겪게 되는 고단함은 그저 웃어넘겨도 되었다. 스치는 이들보다 내 삶에 더 집중하면 그만이었다. 꾸준함의 힘이 가져다줄 달콤함을 상상하면서부터 내 세상은 온통 꿈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과 일들로 채워졌다. 끌어당김의 힘 덕분이다. 비로소 나만의 속도로 걸어도 충분하단 걸 알게 되었다. 매일 꿈꾸듯 이어가는 일상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천천히 내 삶을 오롯이 누리며 사는 지금이 참 좋다.         

꿈꾸는 지금 내 모습을  그려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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