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119죠?"
‘불침번’이라는 말은 아빠들에게 익숙하다. 모두가 잠자는 시간에 일어나 부대를 살피는 근무다. 군필자라면 안다. 불침번과 야간 근무 경험이 육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이가 아플 때, 특히 열이 날 때는 더욱 그렇다. 육아를 하며 가장 힘든 순간을 꼽자면 아이가 아플 때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건 ‘열’이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자주 열이 나고, 열은 보통 2~3일 동안 오르락내리락한다. 우리 아이도 돌 전 무렵 갑자스레 열이 났다. 돌발진이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고열로 치달았고 온몸에 열꽃이 폈다. 치료 방법은 없었다. 해열제로 열을 내리는 것뿐이었다. 낮에는 병원에 갈 수 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막막하다. 야간 진료는 보통 저녁 10시에 끝난다. 그 이후에는 도리가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정보가 많아 오히려 혼란스럽다. “38도에 먹인다”, “38.5도에 먹인다”, “39도까지는 괜찮다”. 도대체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해열제를 먹이고, 30분마다 체온을 재고, 미온수로 몸을 닦아주고, 다시 체온을 재고. 밤새 눈을 뜨고 있었다. 온몸이 뜨끈해진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이때 마음 하나 기댈 곳이 없다. 혼자 판단하기 어렵다. 이때 우연히 인터넷에서119 의료상담을 처음 알게 되었다. 365일 24시간, 119로 전화를 걸면 의료상담이 가능하다고 했다. 불이 났을 때만 119에 전화하는 줄 알았는데 의료상담도 가능했다. 처음 전화할 때는 망설여졌다. “이런 걸로 전화해도 되나?” 하지만 더 이상 혼자 판단할 자신이 없었다. “119입니다. 화재인가요, 응급환자인가요?” “저… 의료상담 가능한가요? 아이가 열이 나서요.” “네,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차분하고 안정적인 목소리였다. 아이의 나이, 현재 체온, 해열제 복용 시간을 물었다. 그리고 지금 상태를 설명해달라고 했다. “지금 38.7도인데, 해열제 먹여야 할까요?” “아기가 칭얼거리나요? 아니면 잘 자고 있나요?” “그럼 조금 더 지켜보세요. 잘 자는 건 몸을 회복하는 시간이에요. 39도 넘어가거나 칭얼거리면 깨워서 먹이시고, 지금은 30분마다 체온만 체크하세요.” 전화를 끊었다. 특별한 해결책을 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이후로 딸이 열이 날 때마다 119에 전화했다. 38년 인생에서 119에 이리도 많이 전화한 건 처음이었다. 가끔은 너무 사소한 걸 물어보나 싶어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친절하게 답변해주셨다.
119 상담과 함께 도움받은 게 ‘열나요’ 앱이었다. 처음에는 언제 얼마나 먹였는지 헷갈렸다. 종이에 적어봤지만, 새벽에 졸린 눈으로 보면 시간이 잘 안 보였다. 앱을 열면 간단하다. 아이 나이와 몸무게를 입력하고, 체온을 기록하면 된다. 해열제를 먹인 시간도 터치 한 번으로 기록된다. 그러면 앱이 자동으로 계산해서 “다음 해열제는 ○시 이후에 가능합니다”라고 알려준다. 가장 유용했던 건 그래프였다. 체온 변화가 한눈에 보였다. “아, 2시간 전보다 0.5도 떨어졌네. 해열제가 효과 있구나.” 이런 식으로 확인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하루 해열제 총량도 자동으로 계산해줘서 “너무 많이 먹이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도 줄어들었다. 해열제는 열을 싹 낫게 하는 약이 아니다. 몸의 온도를 1도에서 1.5도 정도 낮춰준다. 먹는다고 바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보통 1시간 정도 시간이 걸린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조급함이 줄었다.
가장 무서웠던 건 열경련이었다. 그날도 새벽 내내 119와 통화하며 아이 상태를 체크했다. 열이 조금씩 내려가는 것 같아 안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 열이 확 치솟았다. 39.7도. 119에 급히 전화했다. 구급차를 보내주셨다. 구급차가 오는 사이 아이가 갑자기 열경련을 일으켰다. 눈이 뒤집히고,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불침번 서는 동안 열경련에 대해 공부했었다. 열경련은 생각보다 흔하다. 고열이 급격히 오를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대부분 1~2분 안에 멈춘다. 열경련이 왔다면 아이를 옆으로 눕힌다. 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확인한다. 5분 이상 지속되면 위험하므로 시간 체크가 중요하다. 몸을 흔들거나 억지로 펴지 않는다. 이름을 부르며 눈 맞춤을 시도한다. 그리고 1분도 안 되어 경련이 멈췄다. 아이는 엉엉 울었다. 살아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구급대원이 도착했다. 아내가 아이를 안고 구급차에 올랐다. 나는 구급차 뒤를 따라 운전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열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해열제 효과는 1시간 정도 걸린다는 점이다. 영유아 때 열경련을 겪은 아이들은 열이 일정 수준 오르면 다시 경련을 보일 수 있다. 우리 딸도 총 3번의 열경련을 겪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38도만 넘어가도 해열제를 먹이라고 권고했다. 열경련을 예방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5살이 된 지금도 열이 무섭다. 하지만 이제는 열이 나기 시작하면 2~3일이 지나야 한다는 걸 안다. 그리고 열과의 사투 끝에 남은 습관이 있다. 바로,이마를 수시로 만져보는 일이다. 밤에 잠을 자다가도 아이 이마에 손을 올려본다. 손 체온계로 열 나는 순간을 여러 번 감지했다.이 또한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아이 이마를 내 이마처럼 자주 만지는 일. 부모가 되었다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