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어휘력을 찾아서
“너 T야?” “럭키비키!” “폼 미쳤다.” “킹받네.” “점메추.”
얼핏 들으면 외계어 같지만, 오늘날 아이들이 거실과 교실에서 숨 쉬듯 내뱉는 일상 용어들이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암호 체계에 당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기성세대인 우리에게도 줄임말과 신조어는 있었다. “헐랭”, “쩔어” 같은 단어들이 우리의 학창 시절을 채웠고, 어른들은 그때도 혀를 찼다. 하지만 지금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자고 일어나면 쏟아지는 신조어의 홍수 속에서 부모는 아이의 언어 세계에서 점차 소외되고 있다.
이러한 언어 현상의 중심에는 스마트폰이 있다. 유튜브, 숏츠, 틱톡 등 아이들이 탐닉하는 숏폼 콘텐츠는 오직 ‘재미’와 ‘자극’을 위해 설계된다. 6살 딸아이를 웃기려 온갖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마다치 않는 아빠의 마음처럼, 수많은 콘텐츠 제작자가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언어를 파괴하고 비튼다. 드라마 《스믈다섯, 스믈하나》의 대사처럼, “우리는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말을 하며 살았다. 어른들은 이해 못 할 우리들만의 언어가 곧 우리의 전부였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이들에게 신조어는 소속감의 증표이자 그들만의 문화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재미’에 매몰된 사이 아이들의 어휘력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모든 감정을 ‘킹받네’ 혹은 ‘대박’이라는 단어 하나로 퉁치는 습관은 내면의 섬세한 결을 무너뜨린다. 《어른의 어휘력》의 저자 유선경은 이렇게 경고한다. “어휘력이 부족하면 감정의 해상도가 낮아진다.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뭉뚱그려 표현하는 습관은 내면의 섬세한 무늬를 지워버리는 일과 같다.” 슬픔, 서글픔, 애잔함, 애틋함이라는 명확한 감정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줄임말 속에 갇힌 아이들은, 결국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언어의 빈곤’ 상태에 놓이게 된다. https://www.threads.com/@paparanger_?igshid=NTc4MTIwNjQ2YQ==
많은 부모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교육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논술학원 간판마다 ‘어휘력 강화’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하지만 강제로 책을 읽히고 생각을 쥐어짜 내게 하는 방식은 한계가 명확하다. 사상 최저치의 독서율을 기록하는 시대에 책보다 재미있는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펼치지 않는다. 진정한 어휘력은 학원이 아니라 가정 내의 ‘자발적 읽고, 쓰고, 말하기’를 통해 자라난다. 국영수 점수가 아이의 마음이 움직일 때 오르듯, 어휘력 또한 아이가 언어의 즐거움을 스스로 깨달을 때 비로소 확장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아이들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부모의 태도 변화다. 아이가 신조어를 쓸 때 “그런 천박한 말 쓰지 마”라고 다그치기보다, 그 단어가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지 먼저 물어봐 주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이의 암호를 이해하려는 부모의 태도는 아이로 하여금 역설적으로 부모의 언어(바른 언어)에도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나아가 불필요한 줄임말과 자극적인 신조어를 풍성한 단어로 ‘번역’해주는 가이드 역할이 필요하다. 아이가 “아빠, 이거 진짜 폼 미쳤다!”라고 말할 때,“정말 정교하게 만들어졌네?”라고 화답하며 더 깊은 어휘의 세계로 아이를 초대하는 식이다.
이 모든 과정의 핵심은 분위기 조성에 있다. 아이의 단어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를 진단하기에 앞서, 부모 스스로 거울을 들여다보자. “나는 책을 읽는 부모인가?” “나는 매일 스마트폰을 보면서 아이에게만 독서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 아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재구성해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거실 서재화’는 단순한 인테리어의 변화가 아니라 가족 소통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TV와 소파가 주인 노릇을 하던 거실에서 TV를 치우고 작은 책장과 큰 식탁을 들여보자. 알고리즘에 갇혀 각자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가족이 다시 눈을 맞추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는 온 가족이 자리에 앉는 규칙을 세워야 한다. 처음에는 간식이나 칭찬 도장, 심지어 용돈이라는 당근을 활용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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