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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60. 예스허지 투어(4)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지우펀으로 향하는 길


허우통에서 고양이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슬슬 해 질 녘이 다가오는 듯, 하늘은 오렌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가이드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지우펀에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모두 저를 잘 따라오셔야 길을 안 읽으니 꼭 주의하세요."


그렇다.

지우펀은 대만 여행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대표적인 명소.

전 세계 여행자들이 타이베이를 방문하면 꼭 한 번쯤은 방문하는 곳이기에, 그만큼 관광객도 많다.

얼마나 북적일까? 우스운 이야지만, 사실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다.




지우펀에 도착하다.


버스에서 하차한 후, 가이드를 따라 지우펀으로 향했다.


줄지어 지우펀으로 가는 사람들
지우펀 가는 길에 본 멋진 풍경


멀리 바다와 겹겹이 놓인 산들이 보였다.

어릴 적 알고 지내던 스님께서, 산이 이렇게 여러 겹 겹쳐 있으면 명당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지우펀이 이렇게 유명한 땅이 된 걸까?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길을 걸었다.


지우펀 시장 입구에 다다르자, 가이드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저를 잘 따라오시고, 혹시라도 길을 잃어버리면 꼭 저에게 연락하세요.”


좁디 좁은 지우펀


사실 사람들이 지우펀을 ‘지옥펀’이라고 부를 때,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장이 아니었다.


좁은 골목길에 사람이 가득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도 평일이라 적은 편이라고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가이드가 말했다.

“지우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펑리수 가게예요. 제가 가이드하면서 먹어본 펑리수 중 이 가게를 가장 추천합니다. “




펑리수 쇼핑하기


펑리수 맛집, 수신방


가게 이름은 수신방.

워낙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가는 곳이라 그런지, 친절하게 한국어 안내문이 적혀있었다.

망고젤리부터 펑리수까지, 한국인이 좋아하는 대만 기념품 3종 세트가 전부 있었다.


펑리수의 원재료는 파인애플이다.

하지만 일부 저렴한 가게에서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파인애플 대신 식감이 비슷한 동과를 섞어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수신방의 펑리수는 파인애플의 함량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수신방의 펑리수는 파인애플 함량이 100%인 것과 70%인 것,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파인애플이 많이 들어가서 새콤한 맛을 선호하면 100%짜리를, 달콤한 맛을 좋아하면 70%짜리를 고르면 된다.


나와 서하네 가족들은 지금 펑리수를 구입하면 너무 무거우니, 관광을 마친 후 주차장으로 돌아갈 때 펑리수를 구입하기로 했다.




아름다운 야경 맛집, 지우펀


지우펀 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장면.

해 질 녘, 켜지는 시작한 홍등이 골목 곳곳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지우펀


가이드를 안내를 받아, 조금 들어가자 한적한 길이 나왔다.

이 한적한 골목은 앞으로 마주할 '진짜' 지우펀을 위한 작은 휴식처 같았다.


이곳이 바로 그 계단


그리고...... 쨔잔!


사람으로 가득한 지우펀 계단


좁고 가파른 계단길을 가득 채운 사람들.

드디어 내가 보고 싶었던 그 모습이었다.

'진짜' 지우펀, 바로 이거지!


이 좁은 길에 사람들이 이렇게 몰리는 이유는,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온천장의 모티브가 된 '아메이차루'를 보기 위해서다.


나 역시 이 인파에 휩쓸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곳은 소매치기의 위험이 높기에 가방을 꼭 끌어안고 조심스럽게 걸어 올라갔다.

(해외여행하다가 소매치기당해본 1인, 나...)


아메이차루


사실, 아메이차루를 보는 것이 목적이라면 꼭 계단을 다 오를 필요가 없다.

중간쯤 올라간 뒤, 옆 공간에서 재빠르게 사진을 찍으면 된다.


다시 골목을 내려오려는 순간, 갑자기 ‘이태원 참사’가 떠올랐다.

좁은 길, 과도하게 몰린 사람들, 서로 밀치며 오르내리는 모습들까지…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문득 회사에서 배운 ‘과밀 군중 속 안전수칙’이 떠올랐다. 서둘러 가방을 앞으로 메고, 팔짱을 끼어 가슴 앞 공간을 확보했다. 그리고 뒤에서 밀려도 넘어지지 않도록 다리와 복부에 힘을 주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그때 배운 것을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이야.


기왕 그 유명한 아메이차관에 왔으니, 차 한잔 마시면 좋겠지만,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아서, 일단 사람이 적은 골목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서하네 가족분들께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해 주셨다.




친절한 사람들과의 저녁 식사

서하네 가족과 먹은 저녁 식사


지우펀 골목길 식당에서 곱창국수와 루러우판, 어묵요리, 샤오롱빠오즈까지 푸짐하게 먹었다.

음식값을 지불하려고 하자, 서하네 가족분들께서 오늘 너무 즐거웠다며 저녁을 사주고 싶다고 하셨다.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서하가 곱창국수를 맛있게 먹어줘서 다행이었다.

어린아이이니 체력적으로 지칠 법도 한데, 밝게 웃으며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꿈 많고, 끼도 많은 서하.

항상 밝고 씩씩하게 자라나길...




지우펀, 즐기기


저녁 식사 후, 누가크래커로 유명한 미스티에 들렸다.

나는 이미 많이 샀기에 패스했지만, 서하네 가족은 이곳에서 누가크래커를 구매하기로 했다.


미스티


이제 각자 움직이기로 하고, 나는 아까 봐놨던 행복당으로 향했다.

시먼딩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 먹지 못했던 행복당 밀크티.

여기서는 대기 없이 바로 주문할 수 있었다.


드디어 마셔본다. 행복당!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맛은 전반적으로 무난했지만, 내게는 우유맛이 너무 강하게 느껴졌다.


집결 장소인 주차장으로 돌아가기 전,

다시 수신방에 들려 선물용 펑리수를 구입했다. 생각보다 무척 무거웠다.

지우펀의 수신방은 단체 투어 회사와 연계되어 있어서, 투어 차량 번호를 말하면 추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혼자 왔다면, 굳이 여기서 무겁게 들고 가지 말고, 타이베이 메인역에 있는 수신방에서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우펀에서 보는 야경


오늘 하루, 여행 짝꿍이 되어준 서하를 위해 작은 선물을 하나 구입했다.

주차장에서 다시 만난 서하에게 선물을 건네니, 무척 기뻐해줘서 나도 덩달아 기뻤다.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했던 나에게,

낯설지만 따뜻한 하루를 선물해 준 서하와 그 가족에게 참으로 감사한 하루였다.





내가 나아가야 할 길

안녕, 지우펀


예스허지 투어를 마치며,

내 여행이 점차 끝으로 향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서하를 만나고, 나는 아직도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전 직장에서 너무 힘들었던 탓에-

옆에서 나를 걱정해 주고, 바라봐줬던 아이들에게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그 날들.


작년 한 해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오늘, 하루 종일 서하와 함께 있으면서,

나는 교사의 삶이 내 '천직'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어쩌면, 내 정신연령이 아이들과 같아서인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들과 대화하고, 함께 어울리는 것이 편하고 좋다.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는데...

전 직장을 떠날 때,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줄 걸, 한번 더 웃어줄걸...

후회가 되었다.


나는 안다.

아이들에게는 다정한 말 한마디, 친절한 웃음 하나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그런데 정작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 그들을 외면해 버렸다.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지우펀에서 본 야경


여행의 끝자락에서,

나는 다시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씩 답을 찾아가고 있다.


고마워, 서하야.

네 덕분에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이 보였어.




여행을 통해,

감사한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여행이 끝나갈수록, 삶은 조금씩 다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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