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디화제를 지나 천천히 걸어가니, 단수이강이 흐르는 다다오청이 나를 맞이했다.
단수이와 함께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일몰 명소라지만, 이미 단수이를 다녀온 터라 '굳이?'싶었던 곳이었다.
그래도 디화제와 고작 도보 5분 거리인데,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돌아가기엔 아쉬웠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긴 다다오청에서,
나는 뜻밖의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다다오청마터우(大稻埕碼頭)는 단수이강에 있는 선착장으로 예전에는 대만 북부 무역의 핵심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시절의 흔적보다는 버스커, 푸드트럭, 그리고 맥주 한 잔의 여유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만약, 단수이까지 갈 시간이 없다면, 여기서 일몰을 즐기는 것도 정말 좋은 선택이다.
그리고 그 순간, 두 여동생을 만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예쁜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곳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다가 옆에서 놀고 있던 여자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들에게 사진을 부탁했더니, 한 아이가 내 휴대폰 속 한글을 보며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네, 한국인이에요!”
그 한마디 이후, 갑자기 분위기는 소위 '급친 모드'로 돌변했다.
아이들은 내 사진을 수십 장 찍어주기 시작했고,
“언니, 다른 포즈도 해봐요!”
“언니, 이렇게~ 이렇게 하면 더 예뻐요!”
라고 하며 나를 센터에 세워 열정적인 릴스 촬영을 이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나름 인간 대문자 E라고 자부해 왔는데…
이 아이들은 대만 E의 최강자였다. 그 에너지에 내가 밀려버렸다. 완전 KO.
아이들과 함께 릴스를 찍었다.
릴스는 한 번도 찍어본 적 없었지만...
그렇게 나는 MZ 여동생들의 손에 이끌려 생애 첫 릴스를 찍어보았다.
요즘 애들 따라가려면,
정말 쉽지 않다. 나란 어르신...(웃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이 친구들은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러면서 본인들이 디자인한 제품들을 보여주며, 최근 본인들이 전국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려주었다.
한 아이는 타이중이 고향이라며,
“언니, 다음에 타이중 오면 꼭 연락해요! 같이 놀아요!”
라고 말해주는데…이 말을 듣는 순간,
‘그래… 나 타이중에 또 가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스쳤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순식간에 소중한 여동생이 두 명이나 생긴 날이었다.
조금 더 단수이강을 바라보다가
Muyun발레학원 선생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어서 다다오청을 떠나기로 했다.
옛 정취를 가득 느낄 수 있었던 디화제를 다시 지나갔다.
조금 지쳤지만, 디화제가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거리를 구경하며 천천히 숙소로 걸어갔다.
디화제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숙소에 놓고 바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네이후로 출발했다.
사실 지난번 발레 수업 후에 수강료를 깜빡하고 안 내고 와버려서…
뒤늦게 라인으로 “선생님! 저 수강료 안 냈어요! 죄송해요!”
라고 연락을 드렸더니,
“괜찮아요. 오히려 선물을 드리고 싶었어요. 한번 들러주세요.”
라는 따뜻한 답장을 받았던 터였다.
그렇게 다시 방문한 네이후.
선생님께서 수업 하나 듣고 갈래요?라고 제안하셨지만,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이건 대만 국민 라면이에요!"라며 라면 선물을 건네셨다.
한국에는 라면 반입이 안 된다고 알고 있어서 순간 당황했지만, 선생님의 마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일단 공항에 가져가 보고, 만약에 반입이 안된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려야지.
오늘은
다다오청에서 두 여동생을 사귀고,
발레 선생님께 따뜻한 마음까지 받은 날이었다.
대만을 여행하며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예쁜 풍경도, 맛있는 음식도 아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이 짧은 만남들이 앞으로도 SNS로 이어져, 오랫동안 인연이 유지되길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가,
이 친구들이 한국에 오게 된다면---
오늘 내가 받은 이 다정한 따뜻함을 천 배, 맨 배로 돌려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