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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겨울 햇살

거친 돌무지 황야에서 당당하게 

겨울햇살 (2016), 100 x 80 cm, 캔버스에 아크릴

겨울과 완연한 봄 사이의 애매한 시간. 꽃샘추위와 함께 찾아온 비는 한 겨울에 내리는 비보다 유독 더 차갑게 느껴진다. 얼음같이 차가운 비가 지나간 자리엔 새싹들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인생도 이와 같을까. 새로운 것을 시작하거나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결실을 맺으려면 겨울비와 찬 바람, 아니 ‘겨울’이라는 시간 그 자체를 반드시 감내해야 하는 건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미션일 것이다. 


환쟁이로 살기란 생각한 것보다 더 녹록지가 않다. 모든 직업들이 그렇겠지만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만으로는 세상을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살아왔던 온실의 출입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다보니 세상은 생각보다 많이 험난하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모랫바람이 불고 자갈들이 굴러다니는 거친 황야다. 마음 같아선 온실 문을 빨리 닫아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문을 연 순간 이미 나는 새로운 황무지 모험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다시 살기 시작하면서 생을 영위하고 본업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일들을 해보고 있다. 이유야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뻔하다.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는 재료를 사야 하고 다른 직장인들이 하루에 9-6 일할 동안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림을 그릴 공간도 필요하고 생활비도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본업으로는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아 다른 일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언젠가는 나의 본업으로 생을 영위할 수 있고 그림 작업에만 매진할 수 있길 바라는 희망을 조금 품어보며 다시 '일'을 하러 나간다. 


첫 전시 때 지나가던 어느 누군가가 어린 작가가 인생을 얼마나 알면 추상화를 그리느냐는 말이 이 모든 일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다양한 일들을 해 볼수록 그만큼 각각의 서로 다른 삶의 양식을 배워나간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온 내겐 참 귀중한 시간이다. 첫 전시 때 지나가던 어느 누군가의 '추상화는 인생을 담아야 한다'는 귀한 가르침대로 나는 내 그림에 인생을 담아내고 사회를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내년이면 첫 개인전을 한 지 십 년이 되는 해이다. 어찌어찌 여기까지 버텨온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내년에 개인전을 하게 되면 7회 개인전이다. '7'이란 숫자가 마치 그동안 지나온 10년이란 시간과 앞으로 또 펼쳐져 있는 길에 행운이 있길 바라는 것 같다. 이런 의미라면 놓칠 수 없지! 내년엔 꼭 개인전을 할 수 있길 바라본다. 미술적인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첫 전시회 때 보단 인생이 조금이나마 담겨 있길 조심스레 바라본다. 그리고 욕심을 더 가져보자면 나의 색감이 나의 생의 호흡을 담아낼 수 있는 그런 깊이가 있는 그림이 나왔으면 한다.


황무지를 걷다 잠시 차디찬 겨울 벤치에 앉아 따뜻한 겨울 햇살을 가만히 즐겨본다. '나에게도 봄은 오겠지!'란 마음으로 다시 내일을 살아가볼까 한다. 10년이란 시간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다시 열심히 돌무지 황무지를 개척하며 앞으로 나아가봐야겠다. 겨울의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완연한 봄이 하루빨리 오길. 그리고 '고뿔'걸리지 않고 건강한 겨울을 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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