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답답하게 여긴다. 고집스럽다, 자기합리화한다, 남 탓만 한다. 틀린 건 분명한데,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모습은 불편하다 못해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 완강한 태도에도 이유가 있다. 누군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이 단지 고집이나 미성숙의 산물만은 아닐 수 있다. 때로는 그것이 누군가를 지키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가정을 생각해보자. 아이의 눈에 부모는 언제나 든든한 존재여야 한다. 그런데 부모가 자꾸 흔들리고, 매번 “내가 틀렸구나”라며 무너져 내린다면, 아이는 더 이상 안심할 수 없게 된다. 부모가 불안하면 아이는 두 배, 세 배로 더 불안해진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한 회사를 이끄는 최고 책임자가 자주 실수를 고백하고, 무능함을 드러낸다면 구성원들은 당장의 업무보다 더 큰 불안을 품게 된다. “이래서야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긴 할까?” 리더가 잘못을 부정하는 모습은 때로 구성원에게 "그래도 계획은 있나보다.”는 신호로 읽혀서 안심하게 하기도 한다.
옛날 왕조시대에는 왕이 잘못했다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왕의 실수는 곧 나라의 잘못이 되고, 나라의 존립을 뒤흔드는 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문제가 생기면 그 탓은 간신들에게 돌아갔다. 왕 곁에 아첨하는 자들이 나라를 그르쳤다고 했다. 불합리해 보이지만, 이것은 백성들에게 “나라의 기둥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메시지였다. 왕은 완벽해야 했고, 그것이 곧 나라의 안정이었다.
물론 이런 태도에는 그림자, 그것도 아주 큰 그림자가 있다. 부모가 완벽한 듯 행동하면 아이는 잠시는 안심할 수 있지만, 불통이고 답답한 부모의 모습 때문에 솔직한 소통을 해낼 수 없고, 결국 큰 혼란을 겪는다. 리더가 끝내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결국 그를 불신하기 시작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우리'를 안정시키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흑백이 아니다. 잘못을 무조건 인정하거나, 무조건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라면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도 보이고 사과도 해야하지만 그렇지만 보호자의 상징은 지켜야 한다. 리더라면 조직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은 단단해야 하지만, 때로는 고백함으로써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그 이면의 복잡한 사정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인간이 불안과 안정 사이에서 오래도록 이어온 줄타기의 한 방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