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사고는 흔히 우울증의 증상으로 설명되지만, 진료실에서 만나보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물론 우울증과 호르몬의 영향이 중요한 배경이 될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우울했던 분이 죽고 싶은 마음을 1년 전도 아니고, 한 달 전도 아니고, 바로 오늘 느꼈다는 사실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정신적 현상에는 우연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흔히 만나는 한 가지는 선택지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인 것 같다. 나갈 수도 없고, 버틸 수도 없는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 죽음이 출구처럼 보인다는 거다.
예를 들어,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는데 매일 출근이 고통일 때, 시험에 계속 떨어지지만 그만두면 가족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같아 그만둘 수 없을 때, 결혼생활은 견딜 수 없지만 이혼은 불가능하다고 믿을 때, 갚을 수 없는 빚이 쌓여 도망갈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고 느낄 때. 이런 순간에 내담자들은 “그냥 쉬고 싶었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죽고 싶은 마음은 이런 상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의 힘이 바닥날 때도 위험이 커진다.
잠 못 자고, 밥 못 먹고, 운동도 안하고 즐거운 일도 없을 때, 몸이 아플 때, 조언을 부탁할 사람도, 도와줄 사람도 없을 때, 감정을 나눌 친구가 없고 고립되어 있을 때, 이런 조건들이 겹치면 사람들은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자살은 한 가지 이유보다는 여러 조건이 겹쳐서 나타난다.
그런데 이렇게 분명한 맥락이 있어도, 많은 사람들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잘 모르겠어요.”, “그냥, 우울증 때문이에요.” 라고 대답한다. 물론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 때문에 스스로 이유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알아차림을 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죽음을 피하는 방법으로 선택하면서, 동시에 그 이유를 직면하는 것까지 피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이중 회피라고 생각한다.
알아차림(mindfulness)은 고통스럽고 버겁다. 그래서 차라리 알아차리지 않는 쪽(mindlessness)을 택할 수도 있다. 이유를 떠올리는 순간 막다른 현실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당장은 더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내담자들은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제 우울증만 치료해주세요.”
“약을 더 주세요. 힘든 이유를 떠올리지 않게 해주세요.”
“힘든 기억을 지워주세요.”
그런데 그런 치료는 한계가 있다. 물론, 약물은 증상을 완화하고 버틸 힘을 회복시켜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갇힌 현실과, 피하려는 마음까지는 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치료자는 단순한 역할에 그치지 말고, 환자가 다시 출구를 찾을 힘을 회복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회피가 항상 나쁜 건 아니다. 가끔은 도망가는 것도 필요하다. 회피는 우리를 지켜주는 임시 방패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피하는 것만으로는 결국 한계가 온다.
중요한 건, 그 한계에 다다랐을 때 혼자가 아니라 함께 출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피하지 않을 용기는 혼자보다는 함께할 때 훨씬 더 쉽게 나온다. 치료자는 그 지점에서 환자와 나란히 서야 한다.
p.s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마음챙김(mindfulness) 훈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