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게 들릴 수 있지만, 분명히 해야 할 말이 있다.
12살 어린이라면 지금의 삶이 자기 선택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아직 어려서 충분한 자유를 갖지 못했고, 많은 결정이 타인의 손에 있었다.
하지만 30살의 성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론 여전히 과거의 환경과 상처는 현재의 나에게 여전히 영향을 준다.
그러나 지금 이 삶의 모습은, 분명히 나 스스로의 선택들이 작용해 온 결과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어쩔 수 없었어요.”
“모든 건 나 때문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건 환경 탓이에요.”
이런 말은 당장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지금의 고통을 정당화해준다.
그래서 위로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일말의 진실도 섞여있다.
하지만 이런 얕은 위로는 더 큰 비극의 문을 열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앞으로도 어쩔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 말은 곧 자기 삶을 스스로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말이 된다.
‘나의 삶은 정해진 궤도 위에서 굴러가는 운명’이라는 믿음 속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말의 감옥 속에 갇히게 된다.
물론, 선택할 수 없는 환경과 트라우마는 분명 존재한다. 누구도 모든 삶의 조건을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걸 ‘어쩔 수 없었음’으로 정리해버린다면 그건 삶의 방향타를 놓아버리는 일이다.
지금이 고통스럽고, 부끄럽고, 후회스러울지라도 그 안에 내 선택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달라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선택한 결과다”라는 인식만이 앞으로 “다르게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