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진단명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by 열혈정신과

정신과 진료를 하다 보면 많은 내담자들이 자신에게 내려진 진단명을 일종의 ‘정체성’처럼 여기는 모습을 자주 본다.


“저는 ADHD예요.”

“제가 경계선성격장애(Borderline PD)라서 그래요.”

“우울증은 원래 이런 거죠?”


이런 말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이자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마치 그 진단이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이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특히 신경증(Neurosis) 분야의 많은 정신과 진단은 본질적으로 ‘이해의 도구’이자 ‘임시적 명명’일 뿐이다. 정체성도 아니고, 운명은 더더욱 아니다.


정신과 진단의 대부분은 syndrome, 즉, 특정 증상들의 패턴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우울, 불면, 자살사고, 무력감 같은 증상들이 일정한 양상으로 지속될 때, 우리는 그것을 우울장애라고 부른다는 식이다.


즉, 진단명은 하나의 분류 체계이며, 임상적으로는 치료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실용적 약속이다.


물론 여기도 예외는 있다. 양극성장애나 조현병처럼 정신증(Psychosis)에 들어가고 병태생리와 임상양상이 비교적 명확하고, 약물치료가 치료의 핵심인 질환들에서는 정확한 진단 그 자체가 곧 치료 전략의 중심축이 된다. 이런 경우에는 진단명이 곧 질병 모델이며, 생물학적 치료와의 연결고리가 분명하다. 신경증(Neurosis)에서는 강박증이 이런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이 ‘신경증 스펙트럼’에 속하는 문제들. 우울장애,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적응장애, 성격장애들 같은 것들은 삶의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면 증상도 진단도 변화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경우, 진단은 그 사람의 고통을 완전히 설명해줄 수 없다. 실제 치료도 진단에 따라 결정된다기보다 현재 증상, 감정, 관계 패턴에 따라 조정된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진단명을 ‘이해의 종착역’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싶은 인간적인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설명되지 않던 고통에 ‘이름’이 붙으면, 그 자체로 조금은 안심이 된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이건 병이구나.”

“내가 이렇게 힘든 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이 진단 때문이구나.”


이런 해석은 처음에는 위로가 된다. 고통의 책임을 온전히 자기 탓으로만 돌려왔던 사람들은 오히려 진단명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조금 덜 미워하게 되고, 이해할 수 있는 틀 안에서 현재의 어려움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해석이 고정되고 절대화될 때다.


진단명이 자기 이해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 존재의 본질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 오히려 변화 가능성이 닫힌다. “나는 우울장애인 사람이다”라는 인식은 “그래서 나는 이렇게밖에 못 산다”로 이어지고, “나는 경계선선격장애 (Borderline PD)라서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은 결국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믿음으로 굳어지기 쉽다.


그래서 치료자는 중요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진단은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출발점일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치료가 깊어질수록 진단명은 뒷자리에 물러서고, 그 사람의 삶과 감정, 관계, 그리고 선택이 전면으로 올라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이건 우리가 지금 붙인 이름일 뿐이에요.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설명하려는 방식 중 하나죠. 하지만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되는 것은 진단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이 느끼고 있는 진짜 고통입니다."


병을 낙인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자주 들려온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병이 ‘자기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진단명은 설명이지 정체성이 아니다. 나는 이 진단명이니까 반드시 이래야 한다. 이런 인과관계를 만드는 말은 오히려 우리의 행동을 제약한다.


치료는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름 너머의 그 사람, 이름 없이도 존재하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가 치료에서 진짜로 만나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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