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사람을 알아보기
혹시 애착(attachment)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실까요? 여러 분야에서 인용되는 단어이다 보니 흔하게 들어보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반적으로 애착은 아이가 양육자와 형성하는 친밀한 정서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아이가 엄마를 믿고 사랑하는 것, 엄마도 아이를 믿고 사랑하는 것,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을 서로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그 관계가 모두를 뭉클하게 만드는 것이 전부 애착관계에 해당합니다.
짐작하시겠지만 건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인 존 볼비(John Bowlby)는 어린 시절에 경험하는 애착 형성이 인간 성격의 중요한 기본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애착이 건강하게 형성되지 않으면 어린 시절뿐 아니라 성장한 이후에도 여러 가지 정서적인 어려움은 물론, 더 나아간다면 정신건강의학과적 질병까지 생길 수도 있다는 겁니다. 볼비의 이론은 이후 에인즈워스(Mary Ainsworth)의 연구로 이어지게 되는데, 볼비와 에인즈워스는 서로 교류를 계속하며 애착이론을 정립하게 됩니다.
애인즈워스는 1963년 그 유명한 낯선상황실험(Strange Situation Experiment) 실험을 계획합니다. 이 실험에서 생후 12개월의 유아들은 엄마와 함께 장난감으로 가득 찬 방으로 안내됩니다. 아이들이 방 안에서 마음껏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으면 낯선 사람이 방에 들어오기도 하고, 엄마가 갑자기 방을 떠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엄마와의 이별이나 낯선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애착의 정도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애인즈워스는 엄마와 안정적으로 애착된 아이들은 엄마가 있을 때는 안심하여 놀지만 엄마가 떠나면 고통스러워할 것이라고 보았고, 불안정한 애착의 유아들은 아이들은 엄마와 헤어지는 상황에서 안정된 애착의 아이들보다 더 불안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상은 매우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험의 결과는 예상을 상당히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실험 결과, 가정에서 안정적인 애착을 가졌다고 보였던 아이들은 대부분 예측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애인즈워스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불안정한 애착을 가진 많은 아이들 중 상당수가 실험기간 내내 용감하게 탐험하는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엄마가 없을 때도 불안해하기는 커녕 개의치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유아들은 엄마가 돌아왔을 때 엄마를 피하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이 유형의 유아들은 회피형(avoidant type)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전체의 약 25%를 차지했습니다.
부모와 가까워지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히 아이들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행동은 그 본능과는 아주 반대로 보입니다. 이 아이들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많은 후속 연구들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아이들의 부모에 대해 조사해 보니, 부모들은 아이에게 적절히 반응하지 않고 냉담하게 대한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이 아이들에게 스트레스의 지표가 되는 혈중 코티솔(cortisol)의 농도를 측정해 보니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더 높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것은 아이가 용감하게 탐험하는 중에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했다는 뜻입니다. 이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한 상황에서도 엄마에게 다가가지도 않고 위안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이 아이들은 냉담하게 대하는 부모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무척 힘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이 혼자 모든 것을 견뎌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할지라도요. 여기까지 생각해 본다면 아이들의 속마음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다가가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으니까요. 반응하지 않는 부모에게 끊임없이 다가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자 참는 것이 아무래도 낫다는 것이겠죠. 아이들의 얼굴은 평온하지만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는 적응하기를 어려워합니다. 부모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아이들이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가갈 수 있을까요? 혹시 특별한 관계에서 복잡한 애증의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면 어떨까요? 낯설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들어 아무래도 관계에서 물러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직접적으로 물러나지는 않더라도 감정적으로 물러나 생각과 논리, 그리고 놀이에만 집중하는 쪽으로 노력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연인관계든 친구관계든 친밀한 사이에서는 반드시 감정이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감정적으로 물러나 있다면 어떨까요? 같이 일할 수 있고 놀이는 할 수 있지만 친밀한 관계는 글쎄요. 쉬울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자신은 정신적으로 강하다고 생각하고 관계와 감정 속에서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허약하다고 치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고 혼자 남겨지기를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아무도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혼자 남겨지기 싫지만 동시에 감정적으로는 혼자이고 싶은 복잡한 감정의 갈등 속에서 사는 것은 역시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