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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이 Dec 10. 2024

내 인생 다음 챕터 스포일러

홍양 실종 사건의 전말


매달 꼬박꼬박 찾아오던 홍양이 이번 달엔 감감무소식이었다.


설마…? 테스트기를 집어 들었다. 곧 선명하게 드러난 두 줄. "이거… 불량인가?" 반신반의하며 또 하나를 꺼냈다. 그런데 이번에도 두 줄. 이번엔 웃음 대신 머릿속에 커다란 물음표가 떠올랐다.


?????????


난임센터를 몇 번 들락거리다 내가 아이를 절실히 원하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어서 무서운 시험관 시술을 엄두낼 수 없다며 반 포기했는데, 마흔하나에 자연임신이라니. 게다가 지난 한 달 나는 매일 퇴근하고 맥주 없이는 잠들 수 없었는데 말이다.


의심스러운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 화면을 보며 의사가 말했다. "아기집이 보이네요." 나는 화면 속 점 하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니까… 진짜 임신이라는 거죠?" 몇 번을 되묻고 나서야 겨우 실감이 났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임신 5주 차이고, 내년 8월 8일쯤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와우.


임신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내 몸은 나보다 더 빨리 반응했다.
졸음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살다 살다 이렇게 잠에 무력한 건 처음이었다. 내 마음은 계속 '이게 무슨 일이야'를 외치고 있지만 내 몸은 이미 엄마 모드로 접어든 것 같았다. 커피 한 잔 없이는 시작조차 되지 않던 아침과, 퇴근 후 맥주로 마무리하던 하루를 내려놓는다는 게 생각보다 힘들지만 이상하게도 손이 가지 않는다.


실감이 안 난다고 말하면서도 불안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혹시 아기집이 사라지면 어떡하지?"
주말을 겨우 버티고 월요일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아기집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아니, 단 5일 만에 크기가 두 배로 커져 있었다.
의사가 초음파 화면에서 생명의 흔적을 하나하나 짚어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내 안에서 생명이 자란다고?"


'내가' '인간'을 만들어낸다고? 내가??


'인간의 탄생'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며 엉엉 우는 나를 발견한다.

진짜 엄청난 일이구나. 나도 저렇게 태어났고, 나도 지금 내 안에 있는 너를 저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데려오겠구나.

와, 진짜 엄청나다.


태명은 '토토'다.
얼마 전, 토토가 꿈에 삼일 연속 나타나 내 품에 안겼다. 혹시 토토가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건 아닐까?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다시 만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오다니.

김토토, 너 참 성격 못 말린다. 정말 네가 돌아온 거라면…아니, 그렇게 믿고 이번엔 더 잘해볼게. 이젠 언니가 아니고 엄마로서.


작디작은 너를 품에 안을 날을 상상해 본다.
그때도 나는 서툴고, 어설플 것이다.
하지만 괜찮아. 엄마도, 아빠도, 너도 모두 서툴 테니까.


나는 좀 덤벙거리지만, 해야 할 일은 꼭 해내는 사람이야. 그러니 너를 이 세상에 무사히 데리고 나올게.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래도 자궁 안보다는 나을지도?

(아닌가? 암튼 그냥 나와. 나도 잘 모르고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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