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싫으면 기어서라도
어젯밤, 나는 꿈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었다.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고, 결국 나는 그곳 한가운데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가 뻐근하고 온몸이 지쳐서 더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앞도 뒤도 온통 어둠뿐이었다. 터널의 끝에서는 빛 한 줄기조차 새어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반대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놀랍게도 그곳엔 꽃밭이 있었다. 내가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가꾼 꽃밭이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애타게 기다렸던 시간들 끝에 비로소 피어난 그 꽃들. 하지만 나는 그 꽃밭에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터널 끝에 다다르지도 않은 채, 그저 그 어두운 공간 속에서 주저앉아 있었다. 앞뒤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꽃밭은 너무 멀었고, 터널 끝은 아득히 닿을 수 없는 곳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깬 뒤,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야, 왜 멈췄어? 왜 그냥 앉아 있었냐고. 끝이 있는지 없는지는 걸어봐야 알잖아. 주저앉아 한탄만 하면, 너는 영원히 이 터널 속에 갇힌 채로 머물 거야."
꽃밭이든, 빛이든, 결국 내가 다시 걷지 않으면 아무것도 손에 넣을 수 없으니 터널을 빠져나가든, 꽃밭으로 돌아가든, 모든 선택의 시작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시 걷기로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더딘 발걸음이어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믿으며. 내 길을,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어가기로 했다. 터널 속 어둠을 이겨내고 빛을 찾는 여정은 바로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