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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프리트 May 09. 2024

삼국지 이야기 8

 등갑군이야기: 공리주의 or 인종주의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성어 중 하나가 칠종칠금이다.

공명이 촉나라의 후방을 괴롭히는 남만을 정벌하러 가서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줬다는 이야기이다. 상대편을 힘이 아닌 마음으로 굴복하게 만드는 게 진정한 승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곱 번 잡혔으니 일곱 번 싸웠다는 말이기 때문에 일곱 번의 요란한 전투가 있었다. ‘요란한’이란 말을 붙인 이유는 삼국지에서 남만 군을 야만인처럼 그렸고 그들과의 싸움이 중국입장에서 보자면 정통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 중 일곱 번째 전투가 오과국 등갑군과의 전투이다.

낯선 상대와 전투를 벌이느라 촉군은 힘들었지만 등갑군과의 전투는 특히 힘들었다.

등갑군에 관한 묘사를 보자.


“여기서 동남 편으로 향하여 칠백 리쯤 가면 한 나라가 있는데 이름을 오과국이라 합니다. 나라 임금은 올돌골이라 하는데 신장이 이장이나 됩니다. 평생에 오곡을 먹지 아니하고 항상 뱀과 맹수로 밥을 대신합니다. 몸에는 비늘이 돋아서 칼과 살도 능히 뚫지 못합니다. 그의 수하 군사들을 모두 다 등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었소이다. 등이란 나무는 산간가에 나서 석벽에 휘감기는 식물이올시다. 오과국 사람들은 등나무 껍질을 기름에 담갔다가 반년 만에 꺼내서 바람에 쐬었다가 마른 후에 또다시 기름에 담갔다가 반년 만에 꺼내서 바람에 쐬었다가 마른 후에 또다시 기름에 담가 두고 또다시 말립니다. 이러기를 무릇 십여 차를 되풀이해서 비로소 갑옷을 만듭니다. 입으면 강물을 건널 때 물에 젖지 아니하고 칼과 살에 맞아도 뚫어지지 아니합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의 군대 이름을 등갑군이라 부릅니다…...”

-박종화 삼국지에서 인용-


위의 묘사처럼 칼에 맞아도 뚫리지 않고 물에 가라앉지 않는 갑옷을 입은 등갑군에게 촉군은 고전한다. 삼국지에서는 등갑군의 규모가 3만 명이라 한다. 공명은 등갑군 갑옷이 기름으로 만든 것에 착안하여 반사곡 계곡으로 유인하여 지뢰로 태워 죽인다. 지뢰는 공명이 개발한 무기이다. 아무리 전쟁이야기를 좋아하던 시절이라도 등갑군이 타 죽는 장면은 끔찍했다.


… 홀연 바라보니 양편 산마루에서 횃불이 비 오듯 쏟아지면서 땅으로 떨어지자 천지를 진동하는 큰소리와 함께 화약선에 불이 붙었다. 땅속에서는 철포가 터졌다. 까맣게 하늘로 치솟았다.

지뢰포화였다! 하늘땅은 금방 천지개벽이 되는 듯했다.

산천이 거꾸로 박히는 듯 이곳저곳에서는 화약 터지는 폭음과 함께 초연은 하늘을 까맣게 덮고, 불길은 대지위에 핏빛으로 붉었다. 연달아 일어나는 맹렬한 폭음 소리와 함께 불길은 등갑 입은 군사를 휩싸 안고 포탄 깨지는 조각은 등갑군의 목과 다리를 끊었다.

만왕 올돌골을 위시하여 3만 등갑군은 서로 껴안고 반사곡 골짜기 속에서 죽었다. 껴안고 죽는 아비규환이 임종 소리는 차마 귀로 들을 수 없었다.

이때 공명은 산상에서 아래를 굽어보니 만병들은 불에 타서 손발이 오그라져 죽고, 포탄에 맞아서 허벅지와 목이 끊어져 죽고, 턱이 떨어져 죽는 놈, 두개골이 뻐개져 죽는 놈 참혹한 정상은 끔찍끔찍해서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더운 곳이라 시체에서 나는 피비린내와 살 썩는 냄새는 차마 코로 맡을 수 없었다.

공명의 눈에 눈물이 가득 넘쳐흘렀다. 

-박종화 삼국지에서 인용-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낭만적인 전쟁은 없다. 삼국지는 이를 말해주는 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이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건 다음 부분이다.

위의 글 다음에 대한 서술이 삼국지마다 다르다.


공명의 눈에 눈물이 가득 넘쳐흘렀다.

“내가 국가 사직엔 비록 공이 있다 하나 반드시 손수損壽를 하겠구나!”

-박종화삼국지-


공명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한다.

“내 비록 나라에는 공을 세웠으나 이런 끔찍한 짓을 했으니 내 명대로 살지는 못하겠구나!”

-황석영삼국지-


공명은 눈물을 흘리며

“내가 비록 사직에는 공이 있으나 필시 수(壽)는 못하리로다. “

-박태원삼국지-


이렇게 공명은 비록 적이지만 끔찍하게 전투를 벌인 부분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요시카와 에이지삼국지와 방기환삼국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첨가된다.


   다음 날, 공명은 그곳에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탄식했다.

  “종묘사직을 위해서는 공을 세웠지만 이런 무참한 살육을 벌이고도 내 어찌 수명을 다하기를 바라겠는가.”

    주위의 사람들도 비통해했다. 하지만 오직 조자룡만이 그런 공명을 꾸짖듯 말했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흘러가고 변하기 마련이고, 형상을 이루고는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이는 천고의 생명의 모습이 아닙니까. 황하의 강물이 한 번 넘치면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지만, 그들이 죽어 땅에 묻혀 벼가 익고 그 벼로써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황하의 강물에는 천의가 있을 뿐 사람의 덕이 없지만, 승상의 대업에는 왕화의 사명이 있지 않습니까. 저들의 죽음으로 이곳 만국의 땅에 천년의 덕을 남기게 되었으니 어찌 슬퍼만 할 일이겠습니까.”

-요시카와 에이지삼국지-


공명은 이튿날 이곳에 와 보자.

“사직을 위하여는 다소의 공은 있을지 모르나 나는 반드시 수명이 짧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목숨을 많이 없앴으니.”

하고 탄식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절하게 하였으나, 조운만은 오히려 공명에게 소극적인 말이라고 나무라듯 하였다.

“생생유상, 명명전상. 나타났다가는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나고 수만 년 변함없는 대생명이 아닙니까. 황하의 물이 한번 넘치면 수만 목숨이 없어집니다만, 또한 푸른 이삭이 익어가고 바람이 불지 않습니까? 황하의 거친 물은 하늘의 뜻이 있을 뿐 사람이 덕은 없으나 승상 대업은 왕화의 대업이 있을 뿐이 아닙니까? 만민 백만을 죽이더라도 만토천재의 덕을 심어 놓는다 하면 어찌 살상을 두려워할 일이겠습니까?“

-방기환삼국지-


이렇게 공명의 슬퍼함으로 끝나지 않고 위처럼 조운의 문장이 추가된다. 여기에 위의 황석영, 박태원, 박종화삼국지에서는 공명이 전투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금번에 내가 쓴 계교는 만부득이해서 쓴 것인데 크게 음덕을 덮었다고 생각한다. 적은 숲이 무성한 곳에 우리가 군사를 매복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숲이 없는 곳에 기를 세워서 적으로 하여금 병마가 없는 듯이 현혹시켜 놓고, 위연으로 일부러 십오 진을 패하라 했으니, 이것은 적의 마음을 안심시키게 한 것이다. 내가 당초에 산에 올라 보니, 반사곡은 다만 한줄기 길이 있을 뿐 양편 산이 모두 다 석산이요, 나무가 없는 데다가 땅은 모두 사토다. 그러므로 마대로 흑유차를 골안에 배치시켜 놓았던 것이다. 흑유차 안에는 화포를 만들어 두었으니 그 이름은 지뢰라 하는 것이다. 한 포 속에 구 포가 감추어져 있고 이것을 삼십 보 간격으로 땅 속에 묻어 두었다. 땅속에는 죽간으로 약선을 연통시켰으므로 한 곳에 불만 붙이면 지뢰는 연달아 폭발이 도어 산을 뭉기고 돌을 뻐개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조자룡에게 마량초 실은 수레를 골 어귀에 배치해 놓고 산 위에는 큰 나무와 돌 무더기를 어지럽게 쌓아서 뒷길을 끊은 후에 위연으로 거짓 십오 진을 패해서 적을 유인하여 화공법으로 소탕한 것이다. 대저 물에서 잘 싸우는 군사는 불로써 치는 법이다. 등갑이란 것은 비록 칼과 화살이 뚫지 못한다 하나 기름에 담근 물건이다. 더욱 불에 붙기 용이하다. 만병이 완강한데 화공이 아니었던들 어찌 승리를 거두었으랴. 그러나 오과국사람들의 씨를 남기지 아니했으니 나의 죄가 크구나!” 

-박종화삼국지-


박종화, 황석영, 박태원 삼국지에서는 이처럼 어쩔 수 없이 사용한 계책이라고 강조하면서 마지막에 ‘오과국사람들의 씨를 남기지 아니했으니 나의 죄가 크구나!’라는 말로 자책한다.

반면 조운의 말을 덧붙였던 요시카와 에이지와 방기환 삼국지에서는 위의 말이 다음과 같이 변한다.


“조운은 매우 좋은 이야길 하여 나의 전략을 위로해 주었으나 이번 대살상을 한 것은 크게 덕을 잃을 일이오.”

하고 흐린 표정으로 여러 장수들을 둘러본 다음

“열다섯 번 퇴각하여 적의 교만을 유인하여 반사곡에 이끈 계책은 이미 여러 장군들이 보았을 것요. 이번 섬멸전은 약관 시절부터 공부해 온 지뢰 전차 약선을 썼으나 종래의 싸움에 비하여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싸움이란 언제나 사람 그 자체이지 병기가 위주는 아니오. 그런 고로 이러한 병기들로 하여 촉군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장래를 위하여 미리 말해 두는 바요.” 

-방기환삼국지-


황석영, 박태원, 박종화삼국지에서 공명은 어쩔 수 없이 비윤리적인 전략을 수행했음을 인정하면서 상대편을 말살시킨 것에 대해 자책한다. ‘오과국사람의 씨를 남기지 못해 나의 죄가 크구나!’라는 표현에 이런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요시카와 에이지와 방기환 삼국지에서는 ‘오과국사람의 씨를 남기지 못해 나의 죄가 크구나!’라는 표현이 없다. 

어쨌든 공명이 이기고 등갑군이 패했다는 큰 틀은 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번역가의 입장차이가 매우 커 보인다.

요시카와 에이지와 방기환 삼국지는 전반적으로 닮아있다. 아마도 요시카와 에이지가 1890년대생으로 2차 대전 이후에 삼국지를 펴낸 것으로 보기에 방기환 삼국지는 그의 삼국지를 번역하지 않았나 하는 추정을 감히 해본다. 반면 박태원, 박종화, 황석영 삼국지는 원본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보니 조운의 말과 공명의 말이 서로 차이가 있는 점은 군국주의 일본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백만 명을 죽이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라 조운의 입을 빈 요시카와 에이지의 사족(?)은 히틀러가 우생학을 통해 유대인을 학살하고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수탈하면서 위안부, 징용, 세균실험 등을 하면서 내세웠던 논리와 아무리 이해해주고 싶어도 무척 닮았다. 요시카와 에이지와 방기환삼국지에서 다른 삼국지와 다르게 공명이 병기보다 사람을 강조한 부분은 2차 대전에서 일본군이 수행한 전쟁방식과 같은 맥락이라고 추정한다면 내가 너무 비뚤어진 것일까?


내 짧은 가방끈으로 생각해 보기에 공리주의와 인종주의는 무척 혼동되게 사용된다.

아마도 요시카와 에이지에서 나오는 조운의 말은 공리주의적으로 해석되기 쉽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사회전체의 행복의 질과 양을 늘리는 것이지 누구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 같진 않다. 공리주의 제1 공리는 행복이고 제2 공리는 1 공리를 위해 불법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질적공리주의를 주창한 존 스튜어트 밀은 말한다.


“공리는 행복의 추구뿐만 아니라 불행의 예방 및 완화도 목표로 삼고 있다"

“개인의 행복 총합이 사회의 행복이 된다"

"행복을 도덕의 제1원리라고 보았을 때, 그 행복을 얻기 위해 행위자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억제하는 외부적 제재와 내부적 제재는 제2원리가 된다"


누구를 죽여 달성되는 것이 공리주의가 아니란 말로 읽힌다. 만일 조운의 공명에 대한 충고가 공리주의로 규정된다면 일본의 조선식민지화 히틀러의 유대인 제노사이드 그리고 고엽제 살포와 같은 갖가지 전쟁범죄 등이 모두 정당화된다. 따라서 요시카와 에이지와  방기환 삼국지에서는 원본에 없는 조운의 말을 덧붙임으로써 공리주의를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사실은 인종주의에  가깝다. 깊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인종주의는 타 인종을 차별 배제하는 것이다. 멀게 볼 것도 없이 흑인 백인 갈등 및 한국에서도 벌어지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는 인종주의이다.

인종주의를 실행함에 있어서 제일 먼저 진행되는 작업은 대상에 대한 전형화이다. 이를테면 죽여도 되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 히틀러의 광기로 단순히 벌어진 일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내부에선 '배후로부터의 역습'이라는 담론이 퍼졌다. 독일의 패전이 내부의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 유대인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논리이다. 한마디로 희생양 만들기였다. 이를 통해 유대인은 당연히 죽어도 되는 존재로 각인되었다.

율리우스 슈트라이허의 사례가 있다.

 

1946년 10월 16일 율리우스 슈트라이허라는 남자가 2차 세계대전의 전범재판인 뉘른베르크에서 ‘반인도주의 범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교수형을 당했다. 그런데 그는 누구를 죽이거나 전범국의 고위직에 있지도 않았다. 그가 한 일은 전범국이 집단 학살을 하기 전인 193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바이에른주에서 “슈튀르머”라는 이름의 타블로이드판 신문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했다는 것뿐이다.

그는 장기간에 걸쳐 유대인을 심하게 모욕하는 만화와 그림을 곁들여가며 독살스러운 반유대 사설과 뉴스를 썼다. 유대인을 비인간화 함으로써 독일 국민들에게 유대인을 쓰레기로 여기도록 만들었다는 점을 들어 법정은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 것이다.

그리고 법정은 그에게 집단학살의 공범이라고 규정했다.

-그들이 온 이후: 토착민이 쓴 인디언 절멸사에서 인용-


'칠종칠금'은 멋진 고사성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힘이 아닌 마음으로 움직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멋진 의미가 내가 보기엔 쓸데없는 사족으로 인해 요시카와 삼국지와 방기환삼국지에서는 변질되어 버렸다. 아무리 번역이 창작이라지만 원작에 담겨있는 의미까지 바꾸어버리면 그건 왜곡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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