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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Feb 22. 2023

요양 병원 금지 프로, 금지 도서

  엄마는 작년 1월 갑상선암 수술을 받으셨다. 남아있는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서 그해 6월, 1차 방사성요오드 치료를 받았다. 오늘은 2차 치료를 받고 병원에서 퇴원하셨다. 그 길로 근처 요양병원에 들어가신다. 봄방학이라 내가 요양병원까지 같이 갈 수 있다. 입원했던 날보다 얼굴이 많이 부은 모습이다.


"아~ 어제 잠을 3시간배끼 못 잤쪄게"

"무사? 방사선 수치 안 떨어질까봐?"

"불타는 트로트에 영웅이가 노래 완전 잘 불러라게. 그거 보당보난 잠이 안 왕."


  귀여운 엄마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를 잠 못 들 게 한 범인이 불안, 걱정 같은 녀석이 아니라 황영웅의 노래라 안심이다.   

"엄마, 요양병원에서는 불타는 트로트 그거 보지마랑 푹 잡써예."






  일주일간 계실 요양병원 입소 절차를 마치고 돌아서는 나에게 한마디 하신다.

"너 글 쓴 거 가졍 올껄"

앗! 안된다. 그건 요양병원 금지 도서다.


  지난 6월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엄마한테 전화드려봐. 누나가 쓴 글 읽으셨나 봐."

 1차 방사선 치료 후 입원했던 요양병원에서 엄마가 우셨다.


  내가 쓴 글이라면? 핸드메이드 '큰 글자 브런치북'이다. 브런치에 발행했던 글 중에 엄마와 돌아가신 아빠,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만 모아 인쇄해 드렸던. 엄마는 텔레비전 재미없을 때 읽으신다고 가방에 넣어 두셨다. 내내 별말씀이 없어 냄비 받침으로 쓰시나 했다.


  몸도 마음도 힘든 시기에 그 글을 읽으셨다니. 엄마 몸에 남은 방사성 물질이 눈물로 배출되었을 테니 요양병원이야말로 브런치북 읽기에 적합한 장소인지도. 어쨌든 이번에는 엄마를 눈물짓게 할 책이 없어 다행이다.





  집에 돌아와 엄마가 앉아 계셨던  뒷좌석을 닦았다.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는 방사성 물질이 혹시  몸에도 묻었을지 모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어냈다. 엄마를 만날  입었던 옷도 모두 세탁기에 넣었다. 어제 만들어 놓은 시지야채볶음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식탁 위에 핸드폰을 세워 놓고 불타는 트로트를 검색했다. '불타는 트롯맨'이었구나. 황영웅의 동영상이 제일 먼저 보인다.


<영원한 내 사랑>

날 알아보지 못해도 날 기억하지 못해도

당신만 곁에 있으면 난 행복해요 좋아요

젊어서 고생시키고 속 썩인 내가 미워서

당신이 나를 잊은 거 같아 눈물이 납니다

여보 미안해요 여보 고마워요

이 세상 저 세상까지 당신과 함께 하겠소

걱정하지 말아요 영원한 내 사랑



  돌아가신 아빠가 떠올랐다. 소시지야채볶음 위로 눈물이 떨어진다. 어젯밤 엄마가 잠을 설친 이유를 이제서야 알았다.


https://tv.naver.com/v/33352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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