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지 않는 걸까?
덥고 습하고 숨 막히는 밤이 추석까지 이어졌다.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뻔한 명절이 다 지나가는 밤, 산책길에 찍었는지 작은 보름달 사진이 카톡 메시지로 도착했다. 짧은 글과 함께.
“사진이지만 달 보고 소원 빌어.”
동생이 보내준 보름달 사진을 보자, 매년 보는 뻔한 그 달을 실물로 보고 싶어졌다. 집을 나와 뜨거운 햇빛으로 여름 내내 무성히 자란 나무들 사이를 걸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둘러봐도 달은 보이지 않고, 빈손으로 집에 들어가기는 싫어 편의점 문을 열었다.
편의점에 들어가자마자 음료 냉장고 쪽으로 갔다. 탄산음료와 맥주가 빼곡히 들어찬 칸마다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습관처럼 세일하는 제품으로 눈이 갔다. 몇 개는 2+1 행사였고, 몇 개는 1+1 행사였다. 무엇을 살까, 고민하는데 큰 소리가 들려왔다.
“1+1이니까 하나 더 주셔야죠.”
남자는 격앙된 목소리로 항의했다. 그의 뒤로 들려온 목소리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재고가 없어요.“
말투가 어눌한 노인의 대답에 남자 손님은 짜증스럽게 몰아붙였다.
“재고가 없는 물건을 왜 거기 둬요? 1+1인데 하나만 가져가면 우리가 손해를 보는 거죠? 안 그래요?”
나는 음료를 고르지 못하고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중년의 남자들이었다. 4명의 남자들은 친구로 보였고, 계산대 위에 놓인 두 개의 봉투 안에는 맥주와 안주로 가득했다. 그 네 명 중 한 명이 맨 앞에 나서서 할아버지에게 계속 항의했다.
“그럼 그것만 사지 않을게요. 취소해 주세요. “
“물건이 너무 많아 카드로 취소하는 게 어려운데.“
“그럼 그거 50% 할인해 주세요.”
40대로 보이는 남자는 자신이 꽤나 합리적인 사람인 듯 방법을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남자가 원하는 것을 어느 것도 해결해 주지 못했다. 앞에 나선 남자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뒤에 서서 한 마디 끼어들지 않고 보고만 있었다.
뒤에 서서 눈치를 줄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난처해지는 건 그 남자들이 아니라 계산대 안의 할아버지일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향한 네 남자의 눈빛이 에어컨 바람보다 차가웠다.
남자 손님의 말은 다 맞는 말이다. 편의점을 이용하는 손님 중 대다수가 1+1 제품에 손이 갈 것이다. 나조차도 먼저 손이 가고 그런 제품을 사게 되면 공짜로 생긴 행운처럼 좋아했다. 시금치 한 단이 9900원을 하고, 무 하나가 5000원인 것을 보며 그럴 수 있겠다 싶다가도 인상이 찌푸려졌다.
70이 넘을 것 같은 아버지뻘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 편의점의 주인은 60대의 아주머니고, 오늘 본 할아버지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말투로 보니 몸이 불편한 분인 듯했다. 그런 분이 추석 명절에,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에 편의점에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편의점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을 노인에게 40대의 남자 손님은 자신이 누리지 못한 혜택을 억울해했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로 보이는 세 남자는 방관하고 있었다. 누구도 지나가는 말로
“됐어. 그냥 가자.”
“그만해. 그럴 수도 있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네 명의 남자는 그저 한 명의 노인을 향해 ‘다 늙어서 일도 제대로 못 하는 늙은이가 왜 남에게 피해를 주냐?’라는 의미의 비난을 하고 있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뒤에서 지켜보는 타인의 눈에는 참 멋이 없는 사람들로 보였다.
1+1을 만났을 때 왠지 행운인 거 같고 꼭 사야 할 것 같다면, 자기 스스로도 1+1이 되면 좋지 않을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부분이 있다면, 하나 더해서 따뜻함이라든가, 배려라든가, 넉넉함 같은 것을 갖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의 눈에 행운처럼 보이고 그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계산대에 서 있던 할아버지의 배경은 모르겠다. 돈이 많은 노인이든 편의점 주인과 어떤 관계이든 상관없다.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을 보면 드는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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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이 되는 방법은 어떨까?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1에 하나를 더해서, 타인에게 조금만 다정해지자. 무더운 달밤에 서로에게 조금만 다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콜라 한 개보다 더 가치 있을 것 같다.
우리 동네에 뜬 보름달은 보지 못했다. 재개발로 높아만 가는 아파트 뒤에 가려진 게 아닐까 하며 집으로 돌아오다가, 동생이 보낸 사진을 다시 보았다. 사진에 담긴 동생의 다정한 마음에 나는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