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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루씨 Jul 16. 2023

우리의 첫 번째 동해안 캠핑 라이프

그날의 기억 -장사해수욕장-

청록의 돗자리 위로 호박등 하나가 불쑥 솟아올랐다.

동해안 캠핑 라이프의 시작을 알리는 장엄한 일출이었는데, 기대보다는 우려가,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시작이었다.


나는 캠핑과 낚시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의 오랜 고질병인 허리디스크 덕분에 한동안 이 좋은 것을 놓고 살았었다. 병세가 조금 나아지고 이 좋은 것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니, 좋은 것이 무서운 것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무섭다고 망설일 필요는 없다. 이제 혼자가 아닌 둘로 새로운 캠핑 라이프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항과 영덕을 잇는 '7번 국도(동해대로)'의 짠내 가득한 바람이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동해바다의 짠내는 서해와 남해 그리고 제주도의 짠내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짠내가 무겁다"


곧 뛰어나갈 듯 조수석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수학여행 가는 초등학생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단짝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보았다. 그녀가 이 뜻을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부부는 이심전심이라고 하니 잔뜩 기대를 해보았다. 그러나 역시 돌아오는 답변이라고는 캠핑장에 언제 도착하냐라는 말뿐이었다.


파랗게 일렁이는 물결들을 스치듯 지나 영덕에 있는 장사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동해바다의 푸른 파도가 아닌, 해변에 정박되어 있는 회백색의 군함 한 척 이었다.

<장사해수욕장에 외롭게 정박되어 있는 군함 한 척, 사실은 장사상륙작전을 기념하는 전승기념관이다.>

아직은 차가운 파도를 피해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있는데, 그녀가 궁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왜 해수욕장에 배가 있는 거야?”


단짝의 물음에 '장사해수욕장'에 담긴 이야기를 얘기해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텐트 설치를 얼추 끝내고 낚시 장비를 정비하는 동안, 그녀에게 '장사해수욕장'에 담긴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장사상륙작전에 대한 영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

2019년, 할리우드 스타 메간 폭스가 출연하여 잠시 화제가 된 영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이 개봉했었다. 이 영화는 동족상잔의 역사인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펼쳐졌던 '장사상륙작전'의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그 배경이 바로 '장사해수욕장'이었다.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그녀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엄지손톱만 한 낚싯바늘에 꿈틀거리는 갯지렁이 한 마리를 정갈하게 꽂으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한 양동작전으로 극비리에 실행되었다. 북한군의 주의 분산과 보급로 차단을 위해 772명의 학도병들이 투입이 되었는데, 전투에 참전했던 학생들의 나이는 불과 14세에서 17세였다. 북한군과 학도병들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결국 전사 139명, 포로 39명, 실종 다수라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지만 작전에는 성공하였다. 인천상륙작전이 대성공을 하였기 때문이다.


갯지렁이의 미끈거리는 살결 위로 바늘과 함께 체액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비릿하고 불쾌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였다.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녀는 외면하듯 바다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낚싯대를 들어 바다로 세차게 휘둘렀다. 지렁이가 달린 봉돌이 포물선을 그리며 파도 위로 떨어졌다. 마치 그날에 포탄처럼 수면 위로 낙하하였다.


‘장사상륙작전’은 극비리에 수행한 작전이었던 만큼, 전쟁이 끝난 뒤에도 기밀에 부쳐져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우리가 있는 장사리 해변에서 작전 중 사용되었던 ‘문산호’와 희생자들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47년이라는 기나긴 인고의 시간 동안 잊혀 버린 영웅들이 바닷속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리기 위하여 전함 모형으로 전승기념관을 만들고, 추모탑과 추모광장, 상륙작전을 재현한 동상 등을 세워 전승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

<장사해수욕장에는 군함으로 만든 기념관 및 추모탑, 추모광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장사해수욕장에 얽힌 이야기를 모두 마치자, 그녀가 발가락 사이로 스며든 모래알을 만지작거렸다.


“여기에 있는 모래알은 그날을 기억하고 있겠다.”


그녀의 얘기를 듣고, 내심 첫 번째 캠핑 장소로 장사해수욕장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의미 없이 놀며 쉬다가는 그런 장소가 아닌, 역사가 담겨있는 캠핑장은 우리나라에서 장사해수욕장을 포함하여 몇 없을 것이다.


낚싯대를 모래 위에 곧게 꽂아두고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휴대용 버너를 설치했다. 오늘의 점심은 ‘장사라면’, 일반 라면과 다른 바가 없지만 장사해수욕장에서 먹는 캠핑의 첫 끼인 만큼 그에 알맞은 이름을 붙여 보았다.


냄비에 물을 붓고 있는데, 낚싯대의 방울이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걸음에 달려가 낚싯대를 낚아채며 줄을 한참 감아올렸다. 몇 분 뒤 수면 위로 화려한 색깔을 지닌 물고기 한 마리가 올라왔다. 나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며 물고기를 들고 단짝에게 뛰어갔다. 그녀도 재밌는지 웃어 보이며 물고기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 물고기 이름은 ‘성대’였다.


어쩌면 새롭게 시작하는 캠핑 라이프의 성대한 성공을 위해 ‘성대’가 우리에게 잡혔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이후로 성대만 잡혀서 재미가 반감되기도 하였지만, 우리의 첫 번째 동해안 캠핑 라이프는 역사와 재미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었다.



본 글은 2023 여행스케치 청연(시인보호구역)에 

기고 및 수록되어 있는 글을 조금 각색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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