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채식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묻는다. "왜 비건 하세요?"
그중에는 앞서 "실례지만~"이라고 서두를 여는 사람도, 자신의 기준에 맞춰서 신기하다는 듯 의아함을 한 껏 담은 표정으로 질문을 하는 이도 있다. 질문이 어찌 되었든 유별나게 보이는 채식주의자가 되어버린 나는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식습관을 가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육식을 안 할 뿐 계란과 생선을 섭취하는 나는 비건도 아니다. (우유는 체질상 맞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검색하면 쉽게 계급도 처럼 분류되는 채식의 종류와 단계는 (누가 이런 걸 설정했는지 조차 모르겠지만) 여덟 종류로 나뉘어 우유, 계란, 생선, 닭과 같은 식품에 따라 프루테리언, 비건, 락토, 오보, 락토오보, 페스코, 폴로, 플렉시테리언(상황에 맞게 육식도 섭취하는 것도 채식인가?)으로 구분된다. 나는 이런 개념조차 몰랐을뿐더러(비건이라면 당연하게 여덟 가지의 분류법을 신성한 계명처럼 줄줄 읊어 내야 할 것 같다) 이렇게까지 식습관을 구분 지어 타인에게 세세하게 나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그 분류유형이 낯설게 보였다. 심지어 생선과 계란은 먹는 채식주의자는 그 어떤 항목에도 포함되지 못한다는 나의 애석한 상황이 우습기도 했다. (그럼 나는 생선을 먹는 오보인가? 우유를 마시지 않는 페스코라고 해야 하나?) 더군다나 여덟 종류나 되는 이상한 분류법에 거부감이 느껴지는 건 마치 계층으로 분류화된 집단의 차별성으로 타자와 우리를 구분 지으려는 노력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비건이세요?"라고 묻는 타인의 질문 안에서 나는 함축된 무언의 감각을 느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환경을 생각한다는 우월성, 도덕적인 의무감에 주변을 살피고 지구를 위한다는 무언의 압박감. 물론 내가 그와 같은 사회문제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의도는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판단된 개인의 결정이 모든 이들의 기대를 담아내는 일은 미연에 없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그게 언제부터인지 궁금했을 법도 한데, 어머니의 식습관은 이미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자연스러운 집안 규칙처럼 되어있었기에, 당돌한 질문이 되었을 의문은 이미 어머니가 내 어머니이듯이 정해진 습관처럼 당연한 존재였다. 때문에 집안에서 요리는 늘 선택적으로 해산물 친화적인 메뉴가 구성되었다. 가정에서 육식요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재료는 의도적으로 회피되거나, 과장되게 준비되는 어떤 특성이 있어서 늘 입버릇처럼 어머니는 말했다. '내가 간을 볼 수 없는 음식이라서.." "엄마는 해산물만 먹을 수 있으니까" 혹은, "일부러 준비한 거니까 먹어야 해"라는 조건이 붙었다. 더군다나 입이 짧은 편인 나는 늘 부모님의 걱정거리였지만 육식 친화적이지 않은 편식의 메뉴 구성에 오히려 어떤 반기도 들지 않으며 평탄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자녀들의 발육과정에 피해가 없도록 어머니는 본인 외에 가족의 식습관의 균형감을 지키려 했으나(진심으로 신선한 재료들과 다양한 육식 요리로 식사준비에 조금도 소홀하지 않으셨다: 그녀는 심지어 조리사 자격증도 있다)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이상하게도 어머니 본인 식습관에 맞지 않는 어색한 요리가 겹쳐 보여 나의 불안한 감성을 자극했는지 모른다. (본인이 먹지도 않을 음식을 왜 준비하는 거지?)
또한 나는 유년기 내내 학급에서 의무적으로 마셔야 하는 흰 우유에 스트레스를 달고 살았으며 (늘 처치 곤란한 우유팩을 학교 화단에 던져버렸다..) 키를 커야 한다는 마법과 같은 주문 때문에(애석하게도 키는 크지 못했다: 분명 화단의 저주를 받음에 분명하다) 억지로든 마셔야 했던 강압적이며 부당한 기억이 이제 와서야 주체성을 갖으려는 자아와 대응하려는 마음이 커졌는지도 모른다고 추측해 본다. 지금에 와서야 인간이 소젖을 마셔야 할 이유가 없다는 각종 이론과 부정적인 이유가 드러난 상황이 애석하지만, 우유에 강요된 흰색 액체에 대한 인간들의 격렬한 신뢰는 한 시대를 보낸 것으로 흘려버리고 앞으로의 나와는 더 이상 결부시키지 않으려 한다. (대체제로 두유는 마신다)
최근에 와서야 공장식 축산업이 기후변화에서부터 인권침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회문제와 세계 환경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가축의 배설물들이 이산화탄소보다 28배 더 강력한 메탄가스를 배출하며 열대우림을 파괴하여 가축 사료생산을 위해 경작지로 변경되며 채식에 비해 50배나 많은 토양이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뒤로하고서라도 (사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모든 환경파괴의 원인이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냥 육식에 흥미가 없을 뿐이다.
뭔가 대단한 몇 가지 이유들을 언급하면서 타인과의 차별점을 기대한 대답을 원했다면 나는 당신에게 실망을 전할 뿐이다. 한편으로는 내게도 세계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도덕적인 개인의 식습관의 중요성이 무시된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 앞에서 훑어낸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나를 대변할 근거를 전면에 내세우며 남들과는 다른 우월한 착각을 즐겼다. 나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오만하게도 타인과는 다르게 주입된 사고에 반기를 들 수 있다는 선택을 할 수 있음을 긍정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농장을 뛰놀며 자유롭게 목장을 돌아다니는 닭과 소들이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사람이 만들어낸 가공된 이미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택적인 현명한 소비를 하고 있다 강요하는 자본주의의 강압성이 불쾌했으며, 그나마 도축이 없고, 비명과 피가 튀기지 않는 식물들을 먹는 편이 그나마 낫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 대량으로 채소를 키우는데 환경파괴가 전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차라리 왜 비건을 하느냐는 의문 섞인 의아함에 "제가 힌두교라서요"라고 깔끔하게 답변해 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힌두교는 소를 숭배하여 소고기만 안 먹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30~40%의 힌두교도들은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다. 인도의 인구가 12억 명이니 인도에는 채식주의자가 4, 5억 명이나 있다) 모든 상황은 그렇게 간결한 이유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명확한 이유가 전달한다면 그것은 내가 당신과 더 이상 대화를 하기 싫거나, 의미 없는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로 해석해 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삶은 보이기에만 단순할 뿐 답변하기에 복잡하고 애매하며 어떤 인과도 명확하지 않은 듯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