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부추기는 삶

by 꿈에서본시인

최근에 애플의 신제품이 출시되었다. 구매할 생각도 없으면서 나는 물끄러미 어떤 신제품이 나왔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제품 종류를 살펴본다. 소프트웨어로 경쟁사를 따라갈 수 없다 판단했는지 그들의 판매 전략에 맞지 않은 가성비(언제부터 대중의 눈높이에 256G 기준 1,290,000원은 적절한 물가가 된 것일까)와 색다른 모델, 그리고 하드웨어 변경으로 노선을 선회한 제품으로 올해의 키노트를 채웠다. 매년 비슷한 시점에 가을의 풍요로운 곡식과 같이 영근 과실을 수확하는 농부처럼 그들은 한 해 동안 심사숙고해서 출시한 그들의 상품을 연신 매력적인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자랑했다. 갑자기 잘 쓰고 있던 내 손에 놓인 단말기가 초라해 보인다. 늘 전화랑 문자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나는 사실 그것보다는 더 다양한 기능을 쓴다) 갑작스레 다가온 신상품에 대한 사람의 물욕은 주체할 길이 없다. 이런 고객들의 마음을 아는지 키노트에서 신제품을 소개하는 직원의 얼굴에는 만족감과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로 매년 그들의 상품이 그 어느 것보다 혁신적이며 대단한 것임을 강조해 마다하지 않는다. 매년 똑같은 뉘앙스의 문장을 뇌리에 박히듯 단어 나열 순서만 변경해서 똑같은 연설을 듣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만큼 매력적이고 설득력이 높은 달콤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저 반짝이는 제품을 내 손에 쥐게 된다면 나는 더욱 완벽해지겠지'. '나의 삶은 더 풍요롭고 윤택하겠지'. '훨씬 더 효율적이고 충만한 삶을 살게 되겠지'. 가상의 현실이 이성적인 진실이 되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자라난다. 나는 신뢰할 어느 한 조각도 보증받지 못하는 내일의 모습을 그들이 선사한 가상에 내 미래를 내맡겨버리는 것이다. 현재의 지금을 부정하고 도태시키면서까지.


명동, 광화문을 걷다 보면 시야의 폭을 넘어서는 대형 전광판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빼앗는다. 가뜩이나 시선을 빼앗는 신경 쓸 것들이 넘치는 도심의 한 복판은 대형 미디어월의 현란한 조명과 화려한 영상으로 어느 순간 가득 채워지고 있다. 국가는 행안부의 자유표시구역이라는 대단한 과업아래 도시의 빌딩을 광고판으로 채워 넣는 실험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옥외광고판의 규제가 사실상 제약이 사라지는 이 실행 안은 국내 광고시장의 확대와 지역경제 활성화 및 랜드마크 조성이라는 멋들어진 명목아래 실시되어 특정 도심지역에 조금의 수익이 나지 않는 공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시각 폭력을 선사하며 수익을 우선한 불편함은 광고판 속 웃음짓는 멋진 모델과 함께 애써 포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부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1904), 일본 오사카의 도톤보리(1935), 영국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1908)*처럼 세계적인 옥외광고판 설치로 유명한 사이트처럼 단순한 광고판을 넘어 관광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복합 공간을 의도한다 하였다. 하지만 예시로 들은 각각의 도시들이 지금까지 시대를 통해 쌓아 온 옥외광고물의 고유한 특징과 역사가 만들어낸 성과이기에 이들 도시들의 특성을 무차별적으로 따라잡으려는 급작스러운 시도는 오히려 우리가 가지고 왔던 고유의 특성을 저해하면서까지 도심의 랜드마크로써 대체될 수 있는 의미를 확고히 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든다. (진정성 없는 따라 하기가 복합적으로 조합된 모양이 이 도시가 추구하는 하나의 본질이라 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반복되며 쏟아지는 새로운 상품들, 그것들을 판매하는 도시의 시끄러운 정보들이 빈틈없는 일상의 정보로 채워진다. 삶은 이렇듯 하루에 어디에 돈을 썼는지가 나를 살아가는 이유와 증거가 되며, 소비하지 않는 삶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 없이 보낸 하루가 되어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비이상적인 태도로 치부된다. '이 제품을 구매하세요"라고 노골적으로 소비를 재촉한 업체는 아무도 없지만, 0.5초 만의 힐끔거림을 방해하는 도심 속의 방해물들과 무료서비스를 가장하여 손바닥 스크린에 펼쳐진 작은 팝업창들, 개인정보를 긁어모아 기업에게 알맞은 타깃정보를 제공(판매)하고 의사소통이라는 소셜네트워크를 기만한 광고피드는 '너만 아직 몰라', '아직 이게 없어서 네가 완벽하지 않다', '지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너의 취향을 존중하고 너의 스타일을 찾으라'라는 그들을 위한 수익구조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사람들이 소비에 동참하라고 지갑을 빼앗는 피동적인 사고의 삶을 강요받고 있음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스멀스멀 익숙해진 사고가 자리 잡은 상태에 무엇이 무엇인지 조차 인지하기 구분하기 어려운 이것이 사기이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합법적인 가스라이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는 자본주의로 경제가 움직이고 소비가 촉진되며 삶을 더 윤택하게 이끄는 시스템을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나는 좀 더 사람들이 각자의 명확한 기준아래 스스로가 결정 내린 소비(과연 그게 가능한가?)를 하기 원한다. 의도하지도 않은 사고를 강요받아, 혹은 과도한 광고에 노출되어 선택하고 싶지도 않은 결정에 영향을 받아 고려하지도 않은 과잉 소비를 하는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적어도 한 개인으로서 소비를 할 때, 나는 무엇을 진짜로 원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꼭 필요한지를 스스로 묻고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자각을 흐리게 만들고, 개인의 이익과 욕망을 교묘하게 조작하려는 철학, 마치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광고를 거부할 권리는, 최소한 우리에게 있어야 하지 않는가?


진심으로 소비하는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가장 우선적인 존재의 이유가 되며 삶을 살아야 할 궁극적인 목적이 되고 있다. (라고 쓰면서 오늘도 나는 온라인 쇼핑 사이트의 장바구니를 뒤적거린다)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판 역사는 1904년 «뉴욕 타임스» 본사 이전으로 «타임스퀘어»가 명명된 후, 같은 해에 전기 사인(전자 광고판)이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1944년에는 «광고 천재» 더글러스 리가 제작한 담배 광고가 브로드웨이를 밝혔으며, 1980년대부터는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타임스퀘어에 대형 광고판을 설치하면서 상업적 광고의 중심지가 되었다. 오사카 도톤보리의 유명한 글리코맨 광고판은 1935년 에자키 글리코에서 처음 설치한 이후 여러 차례 변천을 거쳐, 현재의 모습은 1972년경 완성되었으며 2014년 LCD 화면이 추가되는 등 기술적인 발전을 거듭해 현재까지 도톤보리의 랜드마크이자 일본의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의 광고판 역사는 1890년 세계 최초의 네온사인 광고 등장으로 시작하여, 1908년 피카딜리 라이트(Piccadilly Lights)의 첫 광고 송출을 거쳐, 현재의 디지털 빌보드 형태로 발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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