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백 마리 양과의 전투

by 곽오리



눕자마자 자던 것이 언제 적일까. 꿈도 꾸지 않고 깊게 자던 것은 또 언제고?



잠에 들려면 최소 1시간은 필요하다. 양을 세는 건 효과가 떨어진 지 오래다. 아니, 효과는 커녕 부작용이 생겼다. 양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까진 멀쩡하게 울타리를 건너는데 네 마리부터 색이 달라진다. 열 마리째부턴 갑옷을 입고 스무 마리째부턴 무기를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십이 됐을 땐 형형색색의 양들이 말을 타고 무기를 들고 내 수면의 성벽을 향해 돌진해 공격해댄다.


‘누구 맘대로 자냐!’

‘불러내 놓고 너만 자겠다는 거냐!!’


침대에 누워 눈만 감으면 망상이 끊이질 않는 거다. 자고자 불러낸 양마저 내 의지를 벗어나 머릿속을 마구 헤집고 다닌다.


11번, 스토리의 양.

‘어제 회차, 여주인공이 울면서 끝이 났죠. 남주인공 반응은 어떻게 해야 하지?’


12번, 차기작의 양.

요즘 날이 춥더라. 눈 내리겠어, 곧. 첫눈 내리면 만나자던 첫사랑 때문에 기상청에 다니는 남자 얘기는 어떨까.


13번, 외양간의 양.

‘난 찌질이야. 10회 차 때 왜 내용을 그렇게 그렸을까. 접시물 찾아와, 접시물!!! 코 박고 죽자!’


14번, 15번, 15번 양양양. 끝없는 음메에에에에-아리.



원래도 망상이 많은데 일을 하면서 더욱 그 양이 많아졌다.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만드는 건 말 그대로 만드는 거다, 갑자기 떠오르는 게 아니라.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지치기를 하며 마인드맵을 한다. 날씨 어플을 보다가 기상청을 떠올리고, 첫눈을 떠올리고. 첫눈을 기다리는 헤어진 연인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그리고 낮동안 한 그 상상을 저녁에 누워 복기시키며 정리한다. 그래서 잠이 안 오는 거다.


… 직업병 탓을 하며 좀 있어 보이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잡생각이 80%다. 머리에서만 생각을 돌리다 보면 삼천포로 잘 빠지고, 금방 까먹어서 같은 구간 계속 리플레이하고 그러거든. 흠흠.


다행히 요즘은 이를 줄일 방법을 찾았다. 첫 번째로 자기 전에 노트에 쫙 정리하는 것. 상상들, 그리고 잡생각이나 일정 같은 것도 눈에 보이게 글로 적으면 안개 같았던 양들이 종이 안에 잡혀 들어와 얌전히 줄을 서게 된다. 쓴 글을 보고 확인하고, 수정하고 싶음 수정하면 되니까 안도감도 들고 좋다.

두 번째는 asmr이나 백색 소음, 자연의 소리 같은 걸 듣는 거다. 백가지 생각에 괴롭힘 당하느니 한 가지 소리에 집중하는 게 낫다.


그리고 마지막 번외 포인트. 웹툰에 대한 망상이 아니라 나에 대한 망상이나 땅파기를 할 때가 있는데 이건 병원의 도움이 효과 직방이다.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자는데 3시간 이상이 걸리기도 했었는데 이를 물리치는데 전문적인 양치기 용병이 필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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