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로맨스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찾아보지도 않을뿐더러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나오면 그냥 티브이를 꺼버리고 만다.
그 이유는 참 단순하고도 비겁한데, 그건 바로 내가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질까 봐 하는 두려움이다.
나는 겁이 정말 많은데, 평소에는 얼마나 힘을 주며 살아가는지 뭐든 익숙한 척하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날 만만하게 볼까 두렵고 또 무능력해 보일까 두려워한다. 하루 내내 느끼는 감정의 온도도 0도에서 100도를 아우르면서도 하루 종일 40도에 머무는 척하는데 온 힘을 다 쓴다.
그렇게 겁이 많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다름 아닌 관계에서 받는 상처다.
아무렴 나쁜 소식은 수천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는 상처는 날 무방비로 무너뜨려버린다. 시간이 지나며 무뎌지길 바랐지만, 아닌 척 가면을 쓰는 게 자연스러워질 뿐 마음은 여전히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학창 시절 때는 그런 상처받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더 숨기지 못해 그대로 아파하곤 했다. 아직도 그날들을 생각하면 몇몇 잊히지 않는 장면이 떠오른다. 마음이 극도로 불안해질 때면 손발이 차갑게 얼어 떨렸다. 그러면 혼자 책상에 앉아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손을 맞잡고는 한참을 그대로 붙들고 있었다. 가장 친하던 친구가 심한 소문을 퍼트리고 다녔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던 날도, 학원을 떠난다는 말에 원장이 내게 심한 말을 하던 날도, 만나던 친구가 해선 안 되는 말을 하는 걸 그대로 들은 날도. 전부 너무 버거웠다.
시간을 흘려보내며 마음에 보호막을 씌워나가는 법을 알았다고 생각했다.
한 겹 한 겹 마음을 단단히 만들려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우울한 노래나 로맨스 영화는 유독 피하려는 내 모습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달라진 건 없는 채로 도망쳐오기만 한 건가 싶어서.
관계에서 받는 상처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가 가장 두렵다. 얼마나 두려우면 그 두려움을 들키는 게 가장 두렵다.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품어줄 수 있는 관계를 바라면서도, 언제나 적정한 거리두기에 최선을 다한다. 사랑하는 사이에 실망하고, 밀어내고, 상처받으면서도 그걸 넘어서는 더 큰 사랑이 있다는 그런 환상을 믿어버릴까 봐 무섭다. 그래서 로맨스 영화를 항상 미워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 같아서 멀리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항상 이런 물음이 남아있다.
언젠가 로맨스 영화를 편히 보는 날이 올까. 그런 환상들과 가까워지는 날이 올까.
언젠가 정말 내가 나다워지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