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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Feb 15. 2022

동대문 아주머니의 덤, 영동 할아버지의 요구르트 그리고

항상 멀리서 안부를 물어요.

평생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그런 기억의 조각들은 꼭 적어두곤 한다. 


동대문 아주머니가 주신 덤,

충북 영동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주신 요구르트,

그리고 어린 사촌동생의 인사.


1. 

어느 날 천을 사러 동대문 도매상에 들린 적이 있다. 워낙 무섭고 소리가 큰 상인분들이 많은 곳이라 온갖 센 표정을 다 지은 채로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 그날은 테스트용 천을 사러 간 거라 안까지 둘러볼 필요 없이 입구 근처에 자투리 천을 파는 상점으로 갔다. 빠르게 눈을 움직여 천 종류를 스캔하고는 몇 개 골라 계산을 하려는데, 아주머니가 내 옆으로 오셨다. 


"아가씨, 찾는 색이나 패턴이 따로 있어요?"


"아, 아뇨. 그냥 테스트용이라 다양하게 사서 만들어보려고요."


내 대답을 들은 아주머니는 곧바로 위에 쌓여있던 천을 몇 개 집으시더니 건네셨다.


"이건 덤이에요. 예쁜 거 많이 만들어봐요."


예상치 못한 친절에 내가 당황하며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니 

아주머니가 작게 미소 지으며 말하셨다. 


"예뻐요 참. 꼭 행복해요 아가씨."


급하게 계산한 뒤 상점에서 나오는데 자꾸 눈물이 흘렀다. 

어쩌면 그저 평범한 인사인데, 그때 내게는 정말 필요한 말이었다. 간절한 말이었다. 


행복하라는 말이, 아주머니가 맥락 없이 건넨 그 응원이 맘 속에 따뜻하게 번졌다. 

누군가 나의 행복을 바란다는 게,

이유 없이 나의 행복을 빌어준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2. 

재작년 여름에는 충청북도 영동으로 선교를 다녀왔다. 

선교지에서 지낸 지 이튿날, 수현이와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파란 대문이 있는 예쁜 집을 발견했다.

파란 대문 옆에는 들꽃도 많이 피어있었는데, 그 풍경이 너무 예뻐서 우리는 연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대문 앞을 서성이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며 한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남의 집 앞에서 노는 우리를 보고도 할아버지는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되려 반가워하시며 집으로 초대하셨다. 얼떨결에 집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할아버지가 걸어두신 가족사진, 정갈하게 놓인 식기, 구석에 놓인 방석들과 같은 것들이 만드는 온기에 금세 편안함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두 개 꺼내 우리에게 건네셨다. 우리는 할아버지와 잠깐 담소를 나누다 숙소로 돌아갔는데, 이 만남을 계기로 우리가 참여한 작은 합창 공연에도 할아버지를 초대하게 됐다. 


합창 공연은 작은 시골마을에 딱 하나 있는 영화관을 빌려 진행했는데, 노래가 끝날 무렵 뒤에 앉아계신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계셨다. 기도를 하고 계셨던 걸까. 수현이와 나는 공연이 끝나고 사진을 찍으려 공연석으로 돌아가 앉았는데, 운 좋게도 할아버지 양 옆이 비어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공연 날이 선교 마지막 날이라 인사를 드리는데, 할아버지가 정면을 그대로 바라보시며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인연이란 게 다 스쳐 지나가는 거란 걸 알면서도, 헤어지는 건 항상 슬프네.

함께하는 동안 덕분에 참 행복했네."


항상 조용하시던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를 듣자마자 왈칵 눈물이 떨어져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똑같이 눈물이 번진 수현이의 눈과 마주쳤다. 어쩜 그런 서로를 마주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멈출 줄을 몰랐다. 둘 다 고개를 푹 숙이곤 한참을 머금었다. 


헤어짐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건 아마 백 년을 더 살아도 변치 않는 사실이 아닐까. 


3.

나에겐 아주 어린 사촌동생이 하나 있다. 나와는 무려 16살 차이가 나는데, 단아는 어린아이 치고 너무 철이 빨리 들었다. 단아는 볼 때마다 낯을 가리면서도 몇 시간만 함께 놀고 나면 금세 경계를 풀고 해맑게 웃어 보인다. 단아가 때를 쓰거나 우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뭐든 상대가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금세 눈치를 채곤 뒤로 물러난다.


단아를 생각할 때면, 앞으로는 그 어떤 불행도 이 아이를 피해 가길 바라곤 한다. 이 아이가 처음 마주했던 슬픔을 이겨낸 대신, 뭐든 퉁 쳐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곤 한다. 


한 번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가는 길에 숙모네 집에 잠깐 들렀다. 그날은 숙모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갈 계획이라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단아와 놀아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떠날 준비를 하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데, 단아가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또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보러 오지 못할 게 뻔해 미안한 마음에 단아를 꽉 안아주었다. 이제 정말 집을 나서려는데, 단아가 날 다시 부르며 말했다.


"언니, 언니랑 있는 며칠이 가장 행복한 날들 중 하나였어. 

또 놀러 와서 나랑 놀자. 너무 행복했어."


어린아이가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나. 조금 벙찐 상태로 단아를 바라봤다. 행복이란 말을 누군가에게서 듣는 게 너무 낯설어 한동안 멍해 있었다. 한참 걸으며 단아의 말을 몇 번씩 곱씹는데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단아의 어여쁜 말이 되려 날 위로했다. 행복하지 않았던 나를 통해 행복을 느꼈다는 그 말이 위로가 되어 내 마음에 고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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