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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Dec 05. 2021

13 치노

고양이 합사에 관하여


 새 집에서 몇 달 동안 레오와 함께 살며 분리불안증이 생긴 나는 펫 CCTV를 구매해 설치했다. 그리고 내가 출근 후에 레오가 한동안 현관 앞을 떠나지 못하고 구슬피 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떠난 지 한참 후에야 집을 돌아다녔지만, 수시로 현관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게다가 퇴근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이면 항상 현관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당시엔 근무시간이 불규칙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어서 퇴근시간이 늦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나를 기다릴 레오가 생각나 마음이 급해져도 일이 터지면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퇴근을 하곤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본가에서 가족들과 살 때에는 집에 한 명 정도는 상주해있었는데, 이젠 내가 외출하면 레오는 홀로 집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마음에 걸렸다.


 물론 둘째를 이렇듯 쉬운 이유로 덜컥 들이면 안 된다. 고양이가 외롭다고 둘째를 입양하면 외로운 고양이가 둘이 된다는 격언을 되새겼다. 게다가 나는 크림이와 프레즐을 입양하고 싶었다. 분리형 원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마리 고양이에게 적당한 공간이었고, 두 마리 이상부터는 비좁게 느껴질 수 있는 크기였다. 아무리 둘째, 셋째로 찜해둔 고양이가 있다지만 거주환경이 이래서야 아이들을 데려온다면 애니멀 호더의 첫걸음이 될 것 같았다. 때문에 꾸준히 합사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도 집 평수 넓히기와 레오 외로움 달래주기에 관해 다른 방도를 모색하고 있었다.


'임시보호를 해볼까?'


 그런 생각이 한 번 들자 임시보호에 대한 생각이 계속됐다. 완전히 입양을 하지는 않되 집고양이가 되어 변한 레오의 성향도 알아볼 수 있고, 외로움도 덜어주며 다른 고양이에게도 집을 제공해 줄 수 있다. 한 번 꽂히자 임시보호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당장 포인핸드와 고양이 관련 카페, 인스타그램에서 임시보호가 필요한 고양이들을 찾아 나섰다. 임시보호라고는 하지만 만약 입양 보내는 것에 실패할 경우엔 내가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 때문에 아무리 마음에 드는 고양이라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며칠씩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그러던 중 포인핸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뇌진탕을 겪고 있다는 아기 고양이의 사진을 보았다. 갈색의 털을 부스스 빛내며 애달픈 눈빛으로 사진 찍힌 그 고양이가 자꾸 눈에 밟혔다. 일주일 동안 고민해보다가 용기를 내어 뭐가됐든 전화를 먼저 해보기로 했다.


"공고번호 00000의 아기 고양이를 보러 가고 싶은데요."


 떨리는 목소리에 대답을 해주신 것은 남자 직원이었다.


"아, 그 고양이는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현재 다른 집에서 임시보호 중이에요. 대신 다른 고양이를 임시 보호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분이 설명해 주신 다른 아기 고양이는 하수구에 빠져 몇 날 며칠을 살려달라고 울었다고 한다. 지하주차장 구석에 갇혀 사람 손으로도 도구로도 빼지 못해 덫을 놔서 구조했다는 작은 고양이, 먹은 것도 없이 며칠 동안 울다가 진흙투성이로 구조되어서 탈수 증세가 있지만 밥도 잘 먹고 똥도 잘 싼다는 아기 고양이. 일단 와서 보고 결정해도 된다는 말에 나는 홀린 듯이 옷을 챙겨 입었다. 생김새도 모르는 아기 고양이를 향해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갔다. 무더운 20년 6월 17일이었다.








집사와의 첫 만남


 도착한 병원은 아주 작고 비좁았다. 여름이라 무더운 날씨에 열린 병원 문 안쪽에는 파리가 날렸고, 3평도 되지 않아 보이는 작은 스테이션에는 응급환자들이 계속해서 실려오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고양이에 대한 문의전화가 걸려오고, 길에서 출산을 하다가 탈장되어 쏟아진 내장과 함께 실려온 고양이가 들이닥쳤다. 전화를 받아주셨던 남자 수의사 선생님과 여자 테크니션 선생님은 바쁘게 뛰어다니셨다. 임시보호 전화를 했던 사람이라고 말씀드리자 테크니션 선생님이 간신히 짬을 내어 고양이를 소개해주셨다. 토끼 철창 같은 장에 있는 아기 고양이는 민들레 홀씨같이 부숭부숭한 검은 털을 가지고 있었다. 고생을 했는데도 기죽지 않고 철창 안에서 삐약삐약 우는 것이 대견하고 마음 아팠다.


 아직 손바닥만 한 아기였기 때문에 큰 공간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았다. 화장실에 남은 타일 매트를 깔아 격리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병원은 너무 바쁘고 나는 얼른 나가 주는 게 도와주는 것 같았기 때문에 황급히 임시보호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물론 그동안 임시보호를 위해 물품들을 준비해놓았기에 가능한 빠른 결정이었다. 당장 피를 철철 흘리는 고양이가 수술실로 실려 들어가는 것을 봐서인지, 이 검은 아기 고양이에 대해 자세히 묻고 싶어도 그럴 타이밍이 없었다. 내 인적사항과 핸드폰 번호 등을 적고 병원에서 빌려준 이동장에 아기 고양이를 담아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다른 병원에 들렀다. 레오와 이 고양이 모두를 위해 다시 한번 건강검진을 받았다.




아기 고양이가 있던 작은 철창. 식욕과 변 상태 모두 좋았다.
분유에 사료 혹은 습식을 뭉근히 말아주는 법을 배웠다. 사료와 분유를 나눔 받았다.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되어있었다. 레오가 가던 동물병원은 모두 문을 닫아 근처 24시 동물병원을 찾았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아기 고양이는 푹 잠이 들었다. 이렇게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넉살 좋다고 해야 할지. 택시 안에서 이 작은 생명체를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끝내 지켜주지 못했던 블랙 팬서 형제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너는 꼭 지켜줄게. 다짐했다.


 다행히 병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금세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가장 무서운 범백 바이러스는 음성이었다. 검진 상 다른 질환도 모두 음성이었고, 다만 하수구에 있느라 눈곱 등 허피스 증상이 약하게 보였다. 혀를 내밀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기도 했다. 안약처방을 받았다. 이 날 잰 몸무게는 440g이었다.




성깔이 좀 있는 아기 고양이
너무 어려 성별을 알 수 없었다
입가와 가슴의 흰 털이 매력적







레오와의 첫 만남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기 전에 그 떨리던 마음이 생생하다. 레오가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었다.


 귀가한 집사를 맞아주러 여느 때와 같이 신나게 달려 나온 레오는 잠시간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신발을 벗는 동안 내려둔 이동장에서 아기 고양이가 삐약 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다른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레오는 귀를 뒤로 눕히며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새로운 장소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아기 고양이는 아깽이 특유의 겁 없는 호기심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다행히 우리 집 방묘문은 현관을 막을 수도 있고, 반대로 밀어붙이면 화장실도 막는 것이 가능하다. 아기 고양이를 얼른 화장실에 밀어 넣고 방묘문을 닫았다. 거처를 꾸미기 위해 물건들을 꺼내는데 이 민들레 홀씨는 벌써부터 꺼내 달라고 난리가 났다. 안쪽을 탐색할 거란 생각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체온을 좋아하는 이 작은 고양이는 집사에게 닿기 위해 아우성이었고, 낯선 개체가 삐약 삐약 우는 것을 들은 레오는 잔뜩 긴장해 루돌프 코가 된 채로 하악질을 해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레오다. 그래서 레오의 생각, 레오의 마음이 가장 중요했다. 아기 고양이를 데려온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레오에게 굳이 이 녀석과 친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레오를 최대한 달래 보려 했지만 "언니, 나와 봐." 한 마디로 나를 제지시킨 레오는 이 겁 없는 아깽이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눈을 떼지도 못한 상태로 온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빠르게 들어가서 방을 꾸며주고 나오기로 결심했다. 혹시 모를 전염병 전이 방지를 위해 옷을 갈아입고 물품을 챙겨 들어갔다. 레오의 시선을 의식해 아예 화장실 문을 닫아버렸는데, 역효과였다. 눈앞에서 집사와 처음 보는 고양이가 사라지는 것을 본 레오는 더욱 흥분해서 나오라고 울기 시작했다. 반면 아기 고양이는 내가 들어가자 기분이 좋아져서 무릎 위에도 올라오고, 등 위에도 올라오며 잔뜩 애교를 부렸다.


 동물병원 원장님이 부탁하셨던 포인핸드에 올릴 사진을 찍는 것이 급선무였다. 포인핸드를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사진의 중요함을 알 것이다. 다들 똑같이 예쁘고 매력적인 동물이지만 사진 한 장 잘 찍고 못 찍는 것의 차이로 입양을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 책임감이 막중했다. 최대한 예쁘게 찍어주려고 일부러 화장실을 선택한 것도 있었다. 사진빨을 잘 받게 해 주려고 안 쓰는 수건에 둘둘 말아 핸드폰도 아닌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마저도 하도 반항해서 쉽지 않았다. 마음은 급한데 나를 포함한 누구도 따라주지 않고, 그런데도 그 상황이 마냥 부담스럽고 싫지만은 않았다. 눈앞의 작은 고양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기도 했고, 이 모든 것이 좋게 변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갈래~!"


포인핸드 업로드를 위해 찍은 사진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단정하게 흰 양말을 신은 아기 고양이. 입가에는 뭐를 묻히고 먹었는지 흰 자국이 남아있었다. 마치 커피의 거품을 묻히고 먹은 것 같다 하여 '(카푸)치노'로 이름을 결정했다. 하지만 어차피 임보하는 고양이. 정이 들까 무서워 이름을 한 번도 불러주지 않았다. 병원에서 배운 대로 몇 시간마다 분유에 습식을 말아주거나 불린 사료를 으깨 섞어주었다. 치노는 식욕이 있었지만 밥을 잘 먹진 않았다. 깨끗이 비운 적 없이 항상 밥을 남기기 일쑤였다. 적정량을 급여하는데도 남기는 것이 안타까워 먹어보라고 계속 들이밀었지만 치노는 먹는 것보다는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첫 똥은 사진 찍을 때 자신을 둘둘 말았던 수건에 누었다. 감히 자신을 꽁꽁 감싸 못 움직이게 했다는 응징의 의미였을까? 박스를 잘라 만들어준 간이 화장실은 그 이후로는 잘 써주었다.







 처음에는 치노를 경계하고 화를 내며 하악질을 해대던 레오.


'이 쪼끄만 걸 때릴 수도 없고!'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지만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겁만 주던 레오지만 안타깝게도 그 협박은 치노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치노는 꽤나 당찬 성격이어서 오히려 레오를 때리며 먼저 공격했다. 조그만 꼬마 고양이가 다 큰 고양이를 겁주는 것은 웃기고도 슬픈 장면이었다.


 치노는 방묘문 사이로 나오지는 못했지만 내가 밥을 주러 들어갈 때 열리는 1초를 활용해 틈을 잘 비집고 나왔다. 한 번 탈출하면 잡기가 힘들어 온 집안을 쫓아다녀야 했다. 궁금한 게 뭐가 그리 많은 지, 이것도 냄새 맡아봤다가 저것도 먹어봤다가, 여기에 올라가 봤다가 저기 구석에 들어갔다가. 그렇게 치노가 집안에서 활개를 치는 동안 레오는 통제구역이 된 화장실에 들어가 치노의 냄새를 맡았다.


 하루가 지날수록 레오의 경계심이 옅어졌다. 처음에는 하악질이 줄었다. 그다음엔 치노의 냄새, 특히 항문 냄새를 맡으려고 하며 더 알고 싶어 했다. 물론 너무 어려서 고양이 사이의 예의를 모르는 대신 궁금한 게 넘쳐나던 치노는 가만히 항문 냄새를 맡게 해주지 않았다. 폴짝거리며 사방으로 돌아다녀 레오는 물론 나도 자신을 쫓아다니게 만들었다. 그 후에 레오는 치노에게 그루밍을 해주려고 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치노가 위험한 곳(손이 닿지 않는 캣휠 옆 공간)에 들어가면 걱정되는 울음소리로 치노를 불렀다. 치노를 꺼내려고 팔을 넣어 휘둘러도 닿지 않자 그 앞에서 치노를 기다리며 잠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던 레오는 5일째 되는 날 치노가 탈출하자 자신의 배를 보여주며 친하게 지내자는 시그널을 보냈다.



 치노가 무시하고 폴짝 뛰어갔음은 물론이다.









뜻밖의 격리


 이대로라면 합사는 거의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생겼다. 집에 온 지 이틀째부터 치노의 변 상태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는 길고 통통하게 황금똥을 누던 치노가 갑자기 물 설사를 보기 시작했다. 출퇴근을 하며 지켜보던 나는 결국 3일째 되는 6월 22일 병원에 갔다.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치노는 지알디아 원충 양성이었다. 천만다행으로 설사 증상이 대표적인 가장 무서운 질환, 범백은 음성이었다. 아마 하수구에 있는 동안 오물을 섭취해 감염된 것 같다고 하셨다. 집에서 편히 지내며 마음이 놓였던 걸까? 한번 시작한 설사는 계속됐고 다시금 철저한 격리가 필요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삐약삐약 우는 치노를 격리하는 게 마음 아프고, 레오도 치노를 꺼내 주라고 매일 그 앞에서 부탁했었다. 둘이 노는 것이 보기 좋고 귀여워 탈출왕 치노가 탈출하면 조금은 느슨한 마음으로 놀게 해 줬던 지난 며칠이 그렇게 후회될 수 없었다. 그나마 원충이기에 다행이지, 범백같이 전염성 높고 치사율도 높은 질환이었더라면? 레오의 생명마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의 안전불감증으로 레오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뻔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죄책감이 몰려왔다.


원충도 옮기 때문에 모든 것을 소독해야 했다. 치노가 밟았거나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은 모두 폐기하고 새로 구매했다. 버릴 수 없는 것은 모두 소독했다. 환기를 했는데도 갑자기 많은 소독약을 사용해서 그런지 레오가 구토를 했다. 원래 사료토를 종종 하는 레오지만 그 모든 것이 크게 다가와 힘들었다. 작은 치노를 살며시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죽도록 미안했다. 그 하수구에 빠져도 작은 것이 살겠다고 아등바등 버텼는데, 내 선택으로 데려왔으면서 불쌍한 치노를 원망하다니. 내 인간성은 정말 최악이구나. 죄책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편 더 큰 병이 아닌 것임에 감사하며 집을 소독했다. 22일 치노의 몸무게는 550g이었다.




(아래에는 변 사진이 나오니 스크롤에 주의 바랍니다.)








범백은 음성이지만 설사가 계속된 치노






 다행히 치노는 식욕도 컨디션도 건재했다. 레오도 전염이 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3일 치 약을 모두 먹은 후에도 설사가 계속되어 병원에 방문해야 했는데, 이전 병원비가 10만 원 정도 나왔기에 조금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기에 앞서 임시보호를 맡겼던 병원에 문의전화를 했다. 아직도 그 선택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었는데, 혹시 임시보호 중 병원비 지원 같은 건 어려울까요?"


 고민 끝에 어렵게 전화한 나와는 달리 수의사 선생님은 흔쾌히 대답하셨다.


"임시보호를 하면서 개인 사비를 쓸 필요가 전혀 없어요! 다시 데려오시면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혹시라도 안락사를 당한다거나 그럴 경우는…."


"안락사라뇨!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전문가니까 임보자님보다 더 잘 치료할 수 있죠."


 입양을 가지 못하는 동물들의 공고기한이 끝나면 안락사 당한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왔다. 포인핸드 어플을 보며 별이 된 아이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혹시라도 안락사 당할 확률이 1%라도 있으면 내가 얼마를 부담한대도 절대로 돌려주지 않으려던 마음이 흔들렸다. 나는 한낱 일반인인데 비해 동물을 진료하고 치료하는 수의사니까 더 잘 치료할 수 있다는 근거 있는 그 자신감 있는 태도도 한 몫했다.


 6월 25일, 왔던 것처럼 갑작스럽게 치노를 보내게 되었다. 올 때는 치노만 달랑 왔었는데 갈 때는 치노가 썼던 물품과 좋아하는 장난감을 모두 챙겨주느라 바리바리 두 짐이 나오게 되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치노가 어땠더라? 가만히 누워 나를 바라봤던 것 같다. 집에서는 그렇게 장난꾸러기던 치노. 뭘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조용해진 치노와 눈을 마주하며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보내는 것 같다는 죄책감, 짧은 시간 동안 벌써 정이 들었는데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 그래도 뒷바라지에서 벗어나고 다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안도감. 치노를 보살피는 동안은 화장실에서 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매일 퇴근하며 부모님 댁에 들러 샤워를 해결했던 것이다. 치노가 어떻게 자랄지 상상해보았다. 그 작은 택시 안에서 작은 치노의 눈을 바라보며 치료가 끝나면 내가 입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그 병원이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얼른 문을 닫고 다른 병원에서 열리는 큰 수술을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에 치노와 제대로 작별인사를 나누지도 못했다. 그래도 치료가 끝나면 꼭 제게 알려달라는 말씀은 드리고 나왔다.











안녕, 치노


 치노를 맡긴 다음날인 26일 전화가 두 차례 왔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근무 중이었던 나는 받지 못했다. 그다음 날인 27일 연락을 드렸는데, 치노의 입양자가 전해졌다고 했다. 당일인 27일 데려가실 거라고, 포인핸드 사진을 보고 문의가 많이 왔었다 하셨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다시 내가 데려가고 싶다고 한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셨나? 생각해보면 치노의 치료가 끝나면 연락 주시라, 제가 데려가고 싶다고는 했어도 입양을 하겠다고 확실히 말하지는 않았다. 이미 입양자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으니 입이 막혔다.


 부족한 우리 집보다 더 좋은 가정에 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제 와서 내가 데려가겠다고 말하면 치노 입양 예정자분께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나는 일주일 남짓 데리고 있으면서도 부족함이 많았는데, 다른 집에 가는 것이 치노한테도 더 좋은 기회 아닐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네, 잘됐네요."


 결국 내 입에서 나온 것은 축하의 말이었다. 하다못해 SNS 등을 통해서라도 치노의 일상을 알면 좋으련만, 당시에는 너무 당황해서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아니, 생각은 했지만 일주일 임시 보호한 게 뭐 대단한 거라고 커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SNS를 알고 싶다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타인의 사적인 영역에 침범하는 것 같았다.


 급하게 만나 급하게 보내느라 작별인사도 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치노. 소리 내어 이름을 한 번도 불러주지 못한 치노. 다시 데려올 때는 따뜻하게 이름을 불러주며 공주님처럼 어화둥둥 모시고 오겠다고 다짐했는데, 혼자만의 약속은 영원히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좋은 집사를 만나 떵떵거리고 정말 왕족처럼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당차고 발랄한 치노라면 분명 그럴 것이다.


 레오가 하악 질 하면 지지 않고 몸집 부풀려 뛰어가서 레오가 한 수 접게 하던 치노, 사람을 좋아해서 주위에서 맴돌면서 놀고, 무릎 위로도 등 위로도 잘 올라오던 치노, 순해서 안약 넣을 때도 잘 참아주던 치노. 치노야, 잘 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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