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 물방울 같은 기도 3
“사이비 어떤 게 있는지 알아요?”
나란히 서서 설거지를 하다가 그녀가 물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한참 이야기를 하고는 사이비 같아요? 하고 묻곤 했다. 자꾸 사이비를 입에 올리니 좀 어리둥절했다. 내가 잠자코 있자 그녀가 이런저런 종교를 열거하던 끝에 코로나로 화제가 된 종교를 아느냐고 했다.
왜 모르겠는가. 사실 아는 건 이름뿐이었지만. 어떤 종교인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방치한 나에 대한 앎이 커질수록 종교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졌으니까.
불광동 거리를 걷던 오래전 어느 날. 복이 많으시네요? 하고 한 쌍의 남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복이 많다는 말이 듣기도 좋아서 나는 멈춰 섰다. 스스로 격려하고 칭찬할 줄 모를 때였으니 빈말이라도 위로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덕담 뒤에 조상을 들먹이는 말에 솔깃해 그들이 모이는 선방이라는 곳에 발걸음을 했다.
내가 무엇을 믿었는지 알게 되기까지 여름이 두어 번 지나가고. 사이비에 현혹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바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탓이었다. 진실을 알아채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은 무엇을 믿더라도 믿는 대로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믿고 있는 신앙의 대상이 참이든 거짓이든 관계없이 효과는 동등하다. 따라서 성 베드로 자체를 믿어야 할 사람이 성베드로의 상을 믿었다고 하더라도 성 베드로에게서 기대되는 영험을 얻게 된다. 이것은 미신이지만, 신앙은 기적을 낳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사실을 믿든 그릇된 것을 믿든 신앙은 언제나 무수한 기적을 낳게 한다.”
스위스의 유명한 연금술사이자 의사이며 치료사인 파라겔사스의 말이다. 조셉 머피는 파라겔사스가 잠재의식에 대한 명백한 과학적 사실을 깨닫고 이를 간파했다고 말했다. 확신하면 잠재의식에 부여된 강력한 암시의 힘에 의해 영험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무튼 사이비를 운운하는 그녀의 말에 지난날이 떠올랐으나 말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녀가 코로나로 화제가 된 종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데, 나는 별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해 되물었다. “사이비예요?” 그녀는 그릇을 헹구다가 내 말에 그릇을 내려놓았다. 개수대에서 쿵 소리가 크게 났다. 손을 재빨리 씻고 홱 돌아서는 게 아닌가?
갑자기 왜 저러지? 돌아보았다. 그녀는 벽장으로 가서 젖은 손으로 얇은 책을 한 권 꺼내 내 눈앞에 들어 보였다.『아름다운 ○○○』. 책 제목을 본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거기 다니세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없이 웃었다. 어떻게 시종일관 저렇게 해맑은지 생각던가. 그녀의 표정을 멍하니 보다가 허둥거렸다. 설거지를 얼른 끝내고 짐을 챙기고 그곳을 벗어날 준비를 했다. 같이 있으면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하는 듯이.
전날 밤 그녀는 새 양말이 든 바구니를 내밀면서 신고 싶은 양말을 고르라고 했다. 흰색과 회색 양말이 가득한 바구니에서 회색 양말 하나를 골라 소파 위에 올려 두었으나 그 양말은 그대로 둔 채 전날 신은 양말을 다시 신었다. 그러고는 그녀가 막 꺼내 놓은 책자를 넘기다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이내 무색해져서 그만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선크림을 바르며 코로나 때문에 타격이 크지 않은지 그녀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코로나를 퍼트린 것처럼 말하는데 이번에도 십만 명이 교육을 수료했어요. 그리고 헌혈을 가장 많이 하지만 그런 건 알려지지 않잖아요. 왜 그런지 생각해봐야 해요. 편견 때문에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나는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나야말로 감염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편견이라는 전염병에. 나갈 채비를 마쳤을 때 그녀가 휴대폰 번호를 물었다. 한밤에 일어난 기적은 깡그리 잊어버린 채 전도하려고 계속 전화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에 휩싸여 내 번호는 알려주지 않고 그녀의 번호를 저장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번호를 불러주었다. 내가 그녀의 번호를 입력하자 자기한테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다. 내 번호를 저장하겠다고.
그녀가 전화를 했을 때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피한다는 인상을 줄 것 같아 전화를 잘 받지 못하는데 괜찮으세요? 하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돌변하거나 말거나 한결같은 그녀. 의림지에 가지를 드리운 소나무처럼 경탄스러웠다.
그녀의 번호를 손으로 꾹 눌렀다. 아, 전화가 왔네요 하면서 반가운 표정으로 휴대폰 위에서 손을 움직였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현관문으로 종종거리며 가 신발을 신고 꿈을 꾸듯 함께한 그녀에게 눈길을 주는데, 그녀 뒤로 어젯밤 마트에서 사 온 두유 두 병이 그림처럼 보였다. 좀스럽게 구는 나에게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복도를 걸어 나와 초록색 계단으로 내려서기 전에 뒤돌아보았다. 현관문에서 상체를 문밖으로 뺀 채 그녀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한 계단 두 계단 내려서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산 안 가져갔어요.”
전날 오후 제천역에 내렸을 때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서 비가 쏟아질 것 같아 편의점에서 산 투명한 비닐우산이었다. 계단을 도로 올라가 아파트 복도 창 너머로 밖을 내다보았다. 가까이 보이는 산은 선명한 초록색이었다. 푸른 하늘에 햇볕이 금방 내리쬘 것 같았다. 매미는 벌써 울고 있었다. 날씨를 검색하니 전국이 맑은 날이었다.
“오늘 비 안 오네요. 우산 두고 가도 될까요?”
“가지고 다니다가 잃어버리기도 하니까요.”
그녀는 우산을 그대로 든 채 말했다. 계단을 다 내려와 아파트를 빠져나올 때 그녀한테서 전화가 왔다. “양말 놓고 갔어요. 소파 위에 있어요.”
올려다보았다. 아파트 복도 창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를. 환한 웃음을. 그날 아침의 태양이 내 등을 비추고 있었다. 비가 내린 뒤 떠오른 해맑은 태양이 아파트 창에서.
제천에서 돌아온 후, 그날 그녀가 건네준 ○○○ 안내 책자는 슬쩍 보고 우편함 위에 올려두었다. 종종 영화 포스터 같은 것들을 그 위에 올려두면 필요한 누가 가져가 바로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그 책자는 며칠이고 그대로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해가 쨍하게 내리비치는 날이면, 한결같이 웃던 그녀 생각이 나곤 했다. 자기 앞에 있는 나를 가장 소중하게 대해주던 사람. 처음 만난 사람이고 곧 헤어질 사람이고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을.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여름이 겨울이 되도록. 루미의 시집을 펼치던 한겨울 밤. 시집을 읽다가 덮는 순간. 시집 띠지에서 발견한 시구. “내가 신에게서 찾고자 했던 것을 오늘 한 사람 속에서 만나네.” 구절을 읽자 여름비 내리던 밤 내 앞에 나타난 그녀, 한동안 잊고 있던 그녀가 번개 치듯 생각났다. 신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과 내가 속으로 길게 했던 말들도.
“기억하시나요? 홀연히 나타나 저를 보살펴주신 그날을. 저는 신을 만나고 돌아왔어요. 아시나요?”
계절이 몇 번 바뀌고서 카톡으로 문득 날아든 카드와『루미 시집』을 선물 받고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거기 두고 온 우산을 들 때마다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말을 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얼음 아래 흐르는 물소리처럼 들렸다.
외출하기 두려울 만큼 강추위가 찾아온 날. 수도가 동파될까봐 자기 전에 수도꼭지에 물방울을 똑똑 떨어지게 하면서 무심코 물방울을 보다 기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 덕분에 밤새 수도가 얼지 않듯이, 한 방울의 물방울 같은 기도가 삶 속으로 흘러들어와 어둠이 다가서지 못하는 순한 날을 맞기도 했으리라. 어떤 하루도 그저 오는 게 아닌지 모른다.
꿈결에 만난 것처럼 하룻밤을 함께 보낸 이를 위해 기도해주는 마음에 순식간에 마음이 장밋빛으로 물들고. 때때로 내 마음속에 찾아와 정박하는 이들이 자신의 드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항해하도록 물방울 같은 기도를 몰래 흘려보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