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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T Nov 21. 2022

오늘 콩깍지 제대로 깠습니다

서리태 콩 수확 스토리

만나지도 못하고 스쳐 지나갔을 인연


아이들 저녁 준비로 분주한 저녁시간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우리 엄마가 너 콩 안 가져가냐고 물으시는데?"

"응? 뭐라고? 똥?"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똥'이라는 존재에 참 익숙해집니다. 그래서 제 머릿속에는 콩이라는 존재감보다 똥의 존재감이 훨씬 컸죠. 그래서 였을까요?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아니, 콩 말이야. 콩 수확 안 하면, 쥐가 다 먹는데. 가져가라고 하시던데?"

"아! 그 콩?"


그 찰나에 타임머신을 타고, 기억을 거슬러 지난여름을 회상했습니다. 햇볕이 한창 따사로운 여름날, 서리태 콩을 재미로 심어보았죠. 자리도 없는 텃밭에 서리태콩을 심어보겠다고 밭고랑 모퉁이에 콩을 한 줌을 심었습니다. 가뜩이나 조금 심어서 존재감이 없던 서리태를 저희 아빠께서 고구마 수확하면서 상당수 뽑아 버리셨죠. 아빠 말에 따르면 서리태가 죽은 줄 알았답니다. 제 기억 속에서도 서리태는 사실 죽어있었고요. 죽었다기보다, 살아는 있었지만 콩 수확은 어렵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존재감이 정말 콩만 한 작물이 바로 서리태콩입니다. 콩을 똥으로 알아들은 게 이상하지 않을 법합니다.


올해 여름에 심은 서리태콩과 새싹


그런데 이 녀석, 제가 신경 써주지도 못한 지난 몇 개월 동안 혼자서 꾸준히 자라고 있었나 봅니다. 가끔씩 지나가면서 관심을 좀 흘려주면 '나 아직 살아있어' 티 정도나 내던 서리태 녀석이, 서리태 콩 결실까지 잘 맺어서 수확이 가능할 만큼 큰 거죠. 저는 수확도 하지 않고 텃밭에 비료나 되게 버려야 하나 콩을 업신여겨왔는데, 그걸 친구 어머니께서 친히 찾아서 수확하도록 알려주신 겁니다. 이 추운 겨울까지 끈질기게 자란 서리태 녀석도 기특하지만, 그 콩을 눈여겨보시고 챙겨주신 친구 어머니께도 참 감사합니다.



정상이 만드는 비정상


우선 1차 작업으로 콩줄기에서 콩깍지를 떼어내는 작업을 텃밭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2차로 집으로 콩깍지를 가져가서, 대망의 '콩깍지 까기'를 할 계획입니다. 서리태 콩은 이름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이, 서리를 맞고 수확을 하는 콩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추운 계절에 수확을 하죠. 비록 제게 존재감은 콩만 했지만, 서리태는 초겨울까지 견뎌내는 강한 친구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해서일까요? 수확을 하기 위해 자리 잡고 앉아서 자세히 들여다본 서리태는 털로 뒤덮인 콩깍지 이불을 덮고 있었습니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극세사 이불로 단단히 무장한 듯했죠. 이렇게 준비성도 철저한 녀석을 돌봐주지 않았다니, 수확 내내 서리태콩에게 미안한 마음을 씻어낼 수 없었습니다.


털로 뒤덮힌 서리태 콩깍지


콩줄기에서 콩깍지를 떼어내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하나 있더군요. 대부분의 콩깍지에 콩이 두 알씩 들어있기에, '아 이게 정상인가 보다'라고 은연중에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곧 알 수 있었죠. 콩깍지에 콩이 한 알일 수도 있고, 세 알일 수도 있구나라는 걸요. 순간 두 알씩 들어있는 콩깍지를 '정상'이라는 포장지로 포장해버린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제가 두 알 콩깍지를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버리는 순간, 한 알 콩깍지와 세알 콩깍지는 비정상이라는 의도치 않은 이름으로 포장되어버렸으니까요.


콩 알의 갯수가 다양한 콩깍지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비교적 흔한 케이스와, 흔치 않은 케이스들이 혼재되어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그걸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버리는 순간, 흔치 않은 소수의 케이스들이 소외되기 쉬워지는 무서운 곳 역시 바로 이 사회이지요. 얼마 전 저는 넷플릭스에 나오는 텔레토비를 저희 아이들에게 보여주다가 아주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텔레토비 속에 나오는 노래 영상에 많은 꼬마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그중에 다양한 인종은 물론이고, 경증의 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함께 뒤섞여서 등장합니다. 다양한 모두가 뒤섞인 교실의 모습이 당연한 건데, 이 영상이 모습은 사실 제게도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제 자신조차도 사실은 100% 순수하다고 할 수 없겠네요. 확실한 건 이 영상은 우리 아이들이 봐오던 국내 어린이 영상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영상이었습니다. 덕분에 앞으로 텔레토비를 당분간 더 보여주고 싶어졌고요.



콩깍지 제대로 깠습니다


1차 작업을 마치고, 콩깍지 가득 채운 봉지를 들고 친한 이웃집에 차 한 잔 하러 갔습니다. 분명히 먼지가 한 바가지 날릴게 분명한데도, 흔쾌히 콩깍지를 가지고 간다는 저는 반겨주는 제 이웃도 참 괜찮은 분임이 틀림없죠? 약 3시간을 쉬지 않고 노동요를 벗 삼아 콩깍지만 깐 결과 그래도 적지 않은 서리태 콩을 수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 양의 서리태 콩을 그냥 텃밭에 버릴뻔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아까울 뻔했네요.


이웃집에 앉아서 까는 콩깍지


수확한 콩을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렸습니다. 그리고 엄마로부터 '바보'라는 소리를 또 한 번 듣게 되었죠. 지난번 빨간 감자 수확 후 감자를 모두 씻어버렸다고 '바보' 소리를 들었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또 한 번 듣게 되었네요. 저는 그저 먼지가 많아 깨끗이 씻어서 보관하고 싶었을 뿐인데, 서리태도 씻어서 보관하면 보관성이 떨어지나 봅니다. 그동안 마트에서 깨끗한 서리태 콩만 사 먹어본 제가 어찌 거기까지 헤아렸겠어요. 씻어 말린 서리태 콩은 물기 없이 냉동실에 넣었고, 콩밥 지을 때마다 조금씩 꺼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엄마로부터 욕한 바지 먹고 짓는 콩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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