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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Sep 02. 2024

노력만이 정답일까?

지긋지긋한 능력주의

능력으로 인한 서열주의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잘은 모르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현실일 것이다. 가끔 아닌 경우가 발견되게 되면 사람은 그동안 동물의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던 의외성에 놀라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의 사회가 동물들의 사회와 점점 차이가 없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느낄 때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인간의 역사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대를 지나 현재의 발전된 사회로 변화되어 왔다고 배웠다.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적어도 법이란 어떤 기준의 테두리 안에서는 인간은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고 함부로 남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는 정상적인 인간인척 보이는데 신경 쓰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겉으로나마 사람의 얼굴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얼굴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현대 사회는 고대의 사회보다 그 무엇과 비교하여도 월등히 뛰어나고 발전되어 왔다. 사람의 기대 수명은 늘어났고 생활 수준과 환경은 분명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노력만 하면 과거의 힘든 생활을 벗어나 조금 더 희망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계급이나 계층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지만 누구나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길 바랄 뿐인 것이다.


먹고사는 것이 어려운 사람은 그것이 해결되어 더 이상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는 삶을 원하는 것이 전부일 수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일을 열심히 하고 집에 와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수 있는 것이다. 가끔 맛있는 것을 사 먹을 수 있고 가끔 여행을 떠날 수도 있길 바라는, 아프면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삶을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죽어라 노력하는데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답답한 나머지 주변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게 되면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더 답답한 답변을 듣게 된다. 사람은 모두 다 제각각의 능력을 타고난다. 그 능력을 알아주는 사회를 만났을 때 양지바른 곳에 심어진 식물처럼 꽃을 피울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행운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현재의 사회는 이런 행운을 의 존재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모든 노력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개인에게만 있을 뿐이다. 


물론 노력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노력은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 주는 데 있어서 중요한 방법이 된다. 노력을 통해서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의지를 가지고 노력한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에는 배울 점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력한 사람들에게는 행운도 함께 했다는 사실이다. 타고난 재능은 분명 행운에 속한다. 다정하고 따뜻한 부모님도 행운이다. 당연히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도 행운이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정확한 타이밍에 구인광고를 발견한 것도 행운이고 건강하게 태어난 것도 행운이다.


언젠가 TV를 보면서 자신의 행운은 부정하고 노력만을 강조한 사람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그 인터뷰를 보면서 불편했던 기분을 그때는 알지 못했으나 지금은 확실히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노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으며 행운은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위치와 비슷한 곳에 있지 못한 이들은 노력을 게을리한 사람이므로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고 의지가 약한, 혹은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이기에 자신은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자신의 행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평등한 것에만 그토록 매달리고 공정한 것이 평등한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노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미 주어진 양질의 환경의 가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그 어떤 노력도 들어가지 않은 당연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운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다른 사람의 불행은 그저 그 사람의 몫일뿐이다. 자신의 행운과 타인의 불행을 같은 선상에 놓고 노력의 결과만을 평가받기 원한다. 그것이 그들이 바라는 공평함이다. 


노력만이 최고인 사회라면 그만큼의 지능이나 건강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능력을 갖지 못하고 태어난, -어떤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행운이 약간은 부족할 지도 모르는 그런 환경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불행한 환경을 조금이라도 공평할 수 있도록 자신의 행운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인간다움이 존재하는 사회가 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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