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사람만의 마음이 있고 동물에게는 동물만의 마음이 있다. 이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고 사람의 마음으로 동물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는 것처럼 동물의 마음으로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다.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서로에게 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냐고 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한 일이다. 서로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다른 가치 판단을 두고 비난하지 않는다. 동물은 동물만의 살아가는 법이 있고 사람은 사람으로서 살아야만 하는 법이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우가 서로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인간이기에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래야 함께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자신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동물처럼 행동하면서(동물에게 미안) 다른 사람들의 존중을 당연하게 여기고 자신을 신처럼 생각한다. 그들의 가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배척한다. 자신만이 특별하고 자신만이 가능성이 있으며 자신 이외의 존재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가치 있는 인생이란 물음은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못한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가치 추구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한 노력 따위는 한 적도 없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사람으로서 행동하는 것에 대한 책임에 대한 물음이 늘 따라다닌다. 사람이라면 그 물음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과 고찰 없이 계속해서 살아나간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냥 매일, 매 순간 자신이 사람임을 잊지만 않으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 동물처럼 굴지 말고 약육강식이니 생존의 법칙이니 하는 동물의 규칙을 들이대지 말고, 사람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의 일상생활은 큰 깨달음과 엄청난 반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소한 친절과 따뜻함, 다정함, 배려 등으로 채워지고 변화된다.
사람의 마음은 연약하지만 강하고 동물의 그것처럼 무자비할 수도 있지만 신처럼 너그러울 수도 있다. 사람은 나약하고 외로우며 상처를 쉽게 받는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지닌 누군가의 도움으로 오늘을 지탱할 수 있고 행복할 수도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그저 직업이나 돈, 물질, 외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사람이 아니게 되는 그런 순간 나를 지켜줄 질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내가 동물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이 왔을 때 좀 더 용기를 가지고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