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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이 고비

소심한 내 안에 용기를 꺼내보자.

by zejebell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고 전 그 속에서 다른 것들과 함께 뜨거운 불길 속에서 익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늘 차갑고 냉정한 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것이 제 바람이지만 전 누구보다 빠르게 불타올랐다 식어버리는 냄비와 그 기질이 비슷하여 그것은 바람으로 그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뜨거운 온도 속에서 누구보다 더 높은 체온으로 인해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봄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인 만큼 새로운 목표를 가지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입니다. 봄에 입사한 저는 지금의 일터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오래 버티는 것을 목표로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봄에 활짝 핀 개나리와 진달래가 벽처럼 길게 이어져 있던 길을 따라 흩날리는 벚꽃 잎을 뚫고 자동차를 운전하며 직장에 출근할 때는 봄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봄을 느끼면서 꽃구경을 가는 것보다는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목표는 직장에서 살아남기였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드라마 속 주인공이 아닌 까닭에 오랜만의 직장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저에게 있어서 직장에서의 시간은 매번 절체절명의 순간이었고 제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땀나고 긴장되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언제나 잠자리에 들 때에는 내일 제발 실수 없이, 그 어떤 사고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빌었습니다. 업무의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내일 제가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해 늘 불안한 시간의 연속이었고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의 업무를 알게 되면 또 다른 업무가 주어지게 되고 그런 것들이 쌓여 나름대로 요런 것들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또 전혀 다른 신세계가 펼쳐집니다. 내일 직장에 가서 일할 생각에 가슴이 뛰고 기대되면서 행복함을 느끼는 평범한 직장인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직장에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고 열심히 일할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지만 직장에서의 생활이 흥분되고 기대되는 순간의 연속은 아닙니다. 누구나 그렇듯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실 예전의 직장생활을 되돌아보면 별 것도 아닌 부분에 대해 지적받고 나서 한동안 의기소침해지고, 자책하면서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 소심하게 일을 대하게 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과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해 봐도 좋았을 것이란 깨달음도 내 안에 분명 있는데 현재 다시 비슷한 순간이 오면 움츠러들게 됩니다.


아이들의 동요 중에 뜨거운 프라이팬에 볶이는 것이 싫은 작은 콩에 대한(생각해 보니 현실적인 동요 내용이네요.) 가사가 얼핏 생각납니다. 우리 아이가 언젠가 신나게 불렀던 기억이 나는데 제가 그 콩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뜨거운 프라이팬에 어쩌다 들어가 정신없이 볶이고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좀 나아질까요? 업무는 디테일에 집중하는 것이 맞지만 제 마음이나 기분은 너무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 않도록 해야 오래 일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음에도 쉽지 않습니다.


수많은 작은 사건들과 매일의 고비들 앞에서 제가 아무리 자신의 원칙을 지키려 노력한다고 해도 잘 대처하는 날보다는 지키지 못하는 날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자신에 대해 너무 실망하지 말고 이런 시간이야 말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란 것을 늘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그러나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인생의 큰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저는 그저 하루의 고비만을 잘 넘기면서, 또는 넘기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성실하게 시간을 보낸다면 조금씩 성장하는 기쁨을, 일하는 기쁨을 언젠가는 걱정 없이 느낄 수 있게 될지 모릅니다. 물론 그때는 또 다른 문제로 힘들어할지 모르지만 매 순간의 고비를 어찌어찌 넘기며 잘 버틴다면 언젠가 제가 바라는 수준의 직장인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날은 분명 올 것입니다. 그때는 막 잘난척하면서 난 이렇게 버텼다고 자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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