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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맞은 시기란 있는 것일까?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by zejebell

마음은 늙지 않는 것 같다고 젊었을 적 어느 즈음에 인연이 되었던,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르신께서 하신 말씀이 요즘 종종 떠오르곤 합니다. 저는 젊음에 대한 집착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딱히 나이가 드는 것이 슬프지도 않았고 젊음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도 없었습니다. 그냥 사는 게 바빠서 힘든 시간들이 차라리 빠르게 지나가길 바란 적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이가 되고 보니 좋은 시간을 좋은 줄 모르고 보낸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가 생기고 있습니다.


힘들어 죽을 것만 같았던 시기에 자신의 시야가 얼마나 편협했었는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좁았었는지가 이제야 조금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시기에 아이가 얼마나 이뻤는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오지도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불안에 떨면서 두려워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아마도 지금 역시 제 자신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인데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도전을 올해 시작하면서(직장생활) 저의 생활패턴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집에서만 머무르던 시간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집에 있었던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았던 유리병 속 모래와 같았다면 세상의 시간은 쏟아지는 폭포와 같이 느껴집니다. 제가 없었던 세상은 저하고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속도로 점점 더 빨리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역시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문화, 조직의 문화와 업무의 흐름, 변화의 속도는 느린 시간 속에 익숙해 있었던 제가 따라잡기에는 솔직히 많이 버겁게 느껴집니다. 특히, 기억력과 주의집중력에 있어서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뇌의 부위를 사용하려니 수많은 범퍼링이 일어납니다. 일주일에 몇 번씩이나 실수를 하는 자신을 보면서 괜히 일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질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처음 시작했던 마음을 기억하면서 젊은 직장 동료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늘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직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제가 현재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경력이 오랜 직원분이 일을 그만두신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을 참 잘하셔서 누구에게나 문제가 생기면 의논하고 함께 해결을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직원분이셨던 만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분의 퇴직을 말리셨다고 합니다. 그 직원분의 퇴직 시 나이가 현재 저와 비슷한 나이대셨는데 물론 그분이 일을 그만두시는 데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중 하나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적 기능이 저하되어(뇌기능일까요?) 그동안 안 하던 실수가 계속되면서 스트레스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자기 업무에서 자꾸 실수가 생기게 되면서 함께 일하고, 자신이 일을 가르쳤던 사람들에게 오히려 업무적으로 지적받게 되면서 아무래도 자신이 일을 그만둘 때인 것 같다고 말하고 퇴직하였다고 합니다. 이 일에 대해 들으면서 제가 든 생각은 각자의 입장차는 있지만 사람에게 있어 알맞은 때라는 것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신체적인 기능만 놓고 본다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퇴직은 자연스러운 수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 점은 저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나이 들어 시작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두려움이 있고 젊었을 때와 다른 기억력으로 인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은 여전히 젊었을 그 어느 순간에 머물고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은 젊었을 시절과 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고 귀찮으며 배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집니다. 익숙하고 안전한 곳에서 계속 머물고 싶습니다. 그곳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활만을 고집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 세상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어쩌면 그렇게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순간을 놓쳐버리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때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나이가 젊든, 많든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있어 변화를 필요로 하고 원하는 바로 그 순간이 될 것입니다.


제가 조금만 더 젊었을 때 마음을 고쳐먹고 자신에게 알맞은 순간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변화에 대해 좀 더 일찍 마음을 열었다면 지금보다 좀 편하게 일을 배울 수 있었을까요?

나이 들어서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주변에 미안할 뿐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젊음이나 간절히 원했던 기회의 문이 닫혔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한 끝이 아니라는 것은 알만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닫힌 문만을 바라보면서 포기하기보다는 또 다른 새로운 문이 열리길 기다리면서 저의 알맞은 순간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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