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사진]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황제대관식> 부분도 / 베르사유 궁전 소장
<감동 가득한 사람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이루지 못한 수많은 사랑 중에 짝사랑은 더욱 애달프고 가슴 아리다. 세계 모든 나라, 어디나 할 것 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으로 인해 행복한 사람도 있을 테고 사랑 때문에 잠 못 이루고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세상엔 이룬 사랑만큼이나 이루지 못한 사랑 또한 많을 것이며, 그 사랑 잊지 못해 오롯이 가슴에 품은 채 그리움으로 아픔을 대신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을 아실 이 /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은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시인 김영랑(1903-1950)이 지은 이 시는 이제 막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이 느끼는 설렘과 순수한 열정을 보드라운 장미꽃잎처럼 표현했다.
비록 사랑하는 님이 내 마음을 모르신다 해도 님을 그리워하며 한 올 한 올 자아낸 무지개 빛 실타래를, 홀로 가슴앓이하며 품어낸 영롱한 진주를 임에게 드리고픈 마음일 것이다. 설사 그 사랑 온전히 전하지 못한다 해도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오르듯’한 혼자 마음은 내내 행복하리라.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16세기 조선 왕조 때, 황진이에 대한 일화는 서글프고 안타깝다.
양반인 아버지와 천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황진이는 미모가 출중해 온 마을에 칭송이 자자했다. 이웃에 사는 총각이 먼발치에서 본 황진이를 연모해서 총각 어머니가 황진이 집에 넌지시 혼인 의사를 밝히지만, 황진이 어머니는 딸을 초라한 집에 시집보내기 싫어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절망에 빠진 청년은 상사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죽어버렸다. 총각 상여가 나가는 날, 기이하게도 관이 황진이 집 앞에서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아무리 애써 관을 옮기려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사람들은 상사병으로 죽은 청년의 한을 풀려면 사모한 처녀 속옷을 던져줘야 한다고 황진이 집에 통사정을 했다.
사실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가 자신을 연모해 죽은 청년, 생면부지의 사람 관에 어찌 속옷을 줄 수 있었겠는가? 요즘 시대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황진이는 과감하게 속저고리를 관에 덮어주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관이 움직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황진이는 기녀가 되었다. 그녀는 신분상으로 서출이라 양반의 소실이나 첩으로밖에 살 수 없는 처지인 데다 낯 모르는 청년 시신을 담은 관에 속옷을 주었으니 어찌 되었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황진이는 여느 기녀들과는 달리 시 짓기와 악기 다루기에 능했고 무엇보다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녀가 남긴 여러 시조들은 문학사에도 기록될 만큼 훌륭한 작품이다. 그녀 사랑이 짝사랑은 아니라 해도 그녀 신분이나 상황이 평범하지 않았으므로 그 누구와도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사랑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이사종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 지은 시 <동짓날 기나긴 밤>은 애틋함이 묻어난다.
동짓날 기나긴 밤 / 황진이
동짓날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어드란
구뷔구뷔 펴리라.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어, 일 년 중 밤이 제일 긴 동짓날 밤을 잘라내어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속에 넣어두었다 님이 오신 밤에 굽이굽이 펼치리란 염원이다. 황진이는 춥고 긴 겨울밤을 지새우며 님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외롭고 기나긴 밤이 지나 포근한 봄바람 부는 날, 그리운 사람이 온다면 님과 해포를 풀기엔 짧기만 한 시간일 것이므로 겨울밤 내내 넉넉히 준비해 둔 시간을 꺼내서 님과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만날 기약 없는 현실이라 해도 그런 염원으로 하루하루 시간을 견뎌내다 보면, 볼 수 없는 괴로움도 잦아질 테니까 말이다.
황진이 시 가운데 <꿈>이란 작품은 시인 김안서가 번역했는데, 애절하기 그지없다. 중학교 3학년 때 입시 시험을 치른 후에 종로 YMCA에서 기타를 배우던 시절, 기초 연습을 하고 처음 악보를 받은 곡이 <꿈>이어서 내게는 더욱 잊을 수 없는 시요, 곡이 되어버렸다.
꿈 / 황진이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에는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꿈길 따라 그 님을 만나러 가니
길 떠났네. 그 임은 나를 찾으러
밤마다 어긋나는 꿈일 양이면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시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그녀를 찾아 길을 나섰을까? 황진이가 그를 너무나 그리워한 나머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찾아오리라는 생각, 혹은 체념으로 쓴 시일 게다. 꿈길에서 그를 볼 수 없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찾으러 떠났기 때문이라 위안하는 그녀 마음이 애절할 뿐이다.
자신을 떠난 님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그녀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그리워했으면 꿈에서조차 사랑하는 님을 만나러 길을 나섰을까! 애틋한 사랑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 더 애달프다.
가을밤의 꿈 / 한용운
가을밤 빗소리에 놀라 깨니 꿈이로다.
오셨던 임 간 곳 없고 등잔불만 흐리구나.
그 꿈을 또 꾸라 한들 잠 못 이루어 하노라.
야속타 그 빗소리 공연히 꿈을 깨워
님의 손길 어디가고 이불귀만 잡았는가.
베개 위 눈물 흔적 씻어 무삼하리요.
꿈이어든 깨지 말자 백번이나 다짐했건만
꿈 깨자 님 보내니 허망할 손 맹세로다
이후는 꿈은 깰 지라도 잡은 손은 안 놓으리라.
님의 발자취에 놀라 깨어 내다보니
달그림자 기운 뜰에 오동잎이 떨어졌다.
바람아 어디가 못 불어서 님 없는 집에 부느냐.
한용운 시인 작품 <추야몽(가을밤의 꿈)>도 황진이 <꿈길>만큼이나 애틋하다. 얼마나 그리워했으면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깰 정도로 잠을 이루지 못했을까? 어느 한순간, 꿈속에서나마 그리운 님을 만나지만, 빗소리에 잠이 깨서 한없이 허망함을 느낀다.
꿈결처럼 님을 만나 설레던 가슴은 여전히 뜨겁게 떨리건만 방안엔 등잔불만 약하게 흔들리고 홀로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외롭고 허전했을까?
꿈에서 깨는 순간 사라지는 님이기에 꿈속에 머물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런 의지와는 아랑곳없이 어김없이 꿈은 깨고 ‘잡은 손은 안 놓으리라’던 맹세조차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니 가을밤이 더욱 쓸쓸하고 고적하게 느껴졌으리라. 그래서 님을 향한 그리움은 더욱더 깊어지는 것일 게다.
그리움/ 강문정
저녁노을 고즈넉이 내 맘 붉게 물들이고
어둠은 스멀스멀 세상 그림자로 스며든다.
밤은 깊어 가는데,
가슴속엔 여린 등불 하나 꺼지지 않고
창 밖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위태롭게 일렁인다.
가을바람 부는 길에 흩날리는 낙엽만큼
켜켜로 쌓여 가는 그대 향한 그리움
아울러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도 짝사랑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국비 장학생으로 이탈리아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다비드를 기다리는 건 혼란과 반전의 연속이었던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그는 혁명군 편에 섰으며, 베르사유에서 삼부회가 열리고 격렬한 정쟁이 있은 후, 국회의사당을 막아버리자 국민의회 의원들이 정구장에서 모임을 갖고 결의하던 모습을 그린 <정구장에서의 선서>와 1789년 프랑스혁명과 관련된 많은 그림을 그렸다.
특히 1793년 10월 16일 오전, 왕비였던 마리 앙투와네트가 갇혀 있던 콩시에르쥬리에서 콩코드 광장으로 이송될 때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크로키로 그리기도 했다.
혁명 막바지에 유럽 동맹군이 결성되고, 그에 대항하는 프랑스 군대를 진두지휘하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로 등극하자 군주제 폐지로 결론지어지고 공화정이 무너졌다. 예술에 관심을 갖고 예술가들에게 관대했던 나폴레옹은 재능 있는 작가들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 지원했다.
다비드 역시 나폴레옹에 발탁되어 신고전주의 사조를 연 대가답게 수석 궁정화가로 활동했다. 혁명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그를 변절자, 배반자라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죽고 죽이며 살아남기를 되풀이하던 가공할 시기를 견딘 사람들에겐 그런 말조차 사치스러운 것일 게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혁명 위원회 세력이 매번 바뀌면서 권력을 잡은 세력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가!
다비드는 그림 그리는 것에만 몰두했다. 그러던 중에 황제의 여동생 폴린을 짝사랑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폴린에게 느낀 사랑의 감정을 죽을 때까지 당사자에게는 고백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그린 작품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에 그 마음을 빛깔로 표현했을 뿐이다.
루브르에 그린 그림에는 원래 나폴레옹 누이들이 입었던 은회색 드레스로 그렸고, 현재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두 번째 그린 그림에 폴린이 입은 드레스는 매혹적인 분홍빛이다. 사랑하는 감정을 마음 깊이 간직한 채, 그 느낌을 분홍으로 표현한 작가의 마음이 재치 있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우리만큼 절절하다.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루브르 박물관 소장. 그림 왼편 황제의 누이들은 은회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부분), 베르사유 궁전 소장. 그림 왼편에서 두 번째 폴린만이 드레스가 분홍빛이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걸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은 게 본능인데, 그 마음을 고이고이 마음에 묻어 둔 화가가 대견할 따름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그래서 더 애절하고 그리움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한용운 시인의 <군말>에 나오는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라는 시구가 떠오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