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흑가의 두 사람과 해바라기

감동 가득한 사람 이야기 4화

by 강문정


추억의 영화 <암흑가의 두 사람>을 보고 나니 머릿속이 하얀 느낌이다. <암흑가의 두 사람>은 1973년 호세 지오바니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원제는 <Deux Hommes dans la ville>이다. 장 가뱅과 알랭 들롱의 절제된 표정연기가 돋보여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내내 그들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알랭 들롱과 장 가뱅이 열연한 이 영화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의심한다는 것,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대방을 끊임없이 모욕하고 무자비하게 괴롭히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분노하게 만드는지 잘 묘사한 작품이다.


암흑가의 두 사람(원제 : 도시의 두 남자) 포스터


세상에는 자신에게 ‘품행장애’ 증상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심술과 아집으로 상대방을 곤혹스럽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 말이다. 품행장애란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죄책감 없이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고통스럽게 하는 증세다. 아이들이나 청소년들 일부에게 나타나는 증세며, 대체적으로 품행장애를 앓는 사람은 사회에서 격리되는 범죄자 유형에서 주로 볼 수 있다지만 내가 보기에는 <암흑가의 두 사람>에 나오는 몇몇 인물들이 바로 품행장애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지노는 은행 강도로 감옥에서 십여 년간을 복역하고 모범수로 출소한다. 그는 교화 책임자 제르맹(장 가뱅 역)의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사회생활에 적응해간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게 된 지노는 새로운 연인을 만나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제르맹은 아내와 딸과 아들이 함께 사는 자신의 집에 지노와 그의 연인을 자주 초대해서 온화한 가정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고 가족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알랭 들롱과 쟝 가뱅

하지만 그가 교도소에서 나온 걸 알고 예전 동료들은 범행을 제의하며 유혹한다. 게다가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사사건건 모욕하고 괴롭히는 경찰로 인해 지노는 심한 고통을 겪는다. 일정기간 보호감찰을 받는 신분이라 어떤 경우라도 참아야 하는 지노의 약점을 아는 야비한 무리들은 그가 분노할 만한 상황을 만들고 그들이 가진 권력으로 지노를 무력하게 하면서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지노를 지켜보며 쾌감을 느낀다.


지노의 예전 동료들이 은행을 습격했다가 경찰에 검거되자 그들은 아무 관련 없는 지노를 의심한다. 집요하게 지노를 감시하던 형사는 지노 집까지 찾아가 혼자 있는 지노 연인을 위협하고 괴롭힌다. 그 광경을 목격한 지노는 오랫동안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해 그를 숨지게 한다. 결국 지노는 사형선고를 받고 마침내 단두대 기요틴에 처형된다.


사형 직전, 집행인이 가위로 지노 와이셔츠 깃을 자를 때 나던 서걱거리는 소리와 공포에 질린 상태에서도 유난히 맑게 빛나던 알랭 들롱의 눈빛과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다. 지노가 처형되는 것을 참관인으로 지켜보던 제르맹(장 가뱅 역)이 집행장을 나오며 허탈하게 걸어가는 뒷모습과 그의 독백 그리고 관객들 마음속으로 절묘하게 스며들던 배경 음악 또한 긴 여운을 남긴다.


<해바라기>는 강석범 감독이 2006년 만든 영화로 김래원이 열연했다. 몇 번을 봤는데 매번 애잔하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암흑가의 두 사람>을 보면서 느끼던 감정과 다르지 않다. 호세 지오바니 감독이나 강석범 감독이 우리에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 영화를 본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깨닫게 된다.


국가와 시대적 배경은 달라도 세상엔 이런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아무리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도 뒤틀리고 못된 악의 무리들은 끊임없이 주인공을 괴롭히고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극한 상황을 만들어 결국은 불행한 결말로 치닫게 하는 것이다.


<해바라기> 영화 포스터


<해바라기>의 주인공 태식은 청소년 시기에 동네를 누비는 건달이었다. 싸움판이 벌어지면 전설의 시라소니처럼 일당백으로 혼자서 수십 명을 상대해도 이기곤 했다. 그는 술 취한 상태에서 자신을 습격한 다른 조직 깡패 최도출을 죽이고 교도소에서 복역한다.


<해바라기>라는 작은 식당을 하는 최도출 어머니는 아들을 죽인 태식을 찾아간다. 망나니 같은 아들이지만 유일한 희망이던 아들을 죽인 이유를 따지려고 교도소에 간 그녀는 자신을 보자마자 뉘우침과 회환으로 서럽게 우는 아들 또래 태식을 보고 동정과 연민을 느낀다. 몇 번이나 그를 면회하면서 태식이의 심성이 악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양아들처럼 보살펴 준다. 후덕한 어머니는 고아나 다름없는 그에게 출소하면 <해바라기> 식당으로 오라고 한다.


태식은 모범수로 출소한 후, 작고 소박한 <해바라기> 식당을 찾는다. 자신을 친아들같이 여기는 아주머니와 그 집 딸 희수와 함께 처음으로 가족의 정을 느끼며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 교도소에 있을 때, 양어머니가 준 수첩에는 자신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빼곡히 적어 하나하나 실천한다. 낮엔 정비소에서 일하고 밤엔 식당 일을 도우며 검정고시와 대학입시까지 준비한다.


한편 예전에 태식과 어울리던 불량배 양기와 창무는 그가 출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잔뜩 긴장한다. 악독한 조판수는 시의원으로 선출되어 겉으로는 선량한 채 하지만, 지역 폭력배들과 연계해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신도시 개발 명목으로 마을 일대를 살 계획을 세운다. 시의원이 되기 전 조판수는 <해바라기> 식당 아들 최도출을 부추겨 태식에게 싸움을 걸게 하고 태식이가 감옥에 간 후엔 양기, 창무 등 지역 폭력 세력을 장악했다.


그는 주민들을 위협해서 집들을 헐값에 사들이고 식당을 인수하려 하지만, 쉽지 않자 강압적으로 빼앗으려 한다. 조판수 지시대로 비열하고 야비한 양기와 창무는 폭력배를 동원해 <해바라기> 식당 딸 희수에게 심한 부상을 입힌다. 그리곤 태식의 양어머니를 살해하고 집문서 등을 훔쳐 위조한 다음 <해바라기> 식당을 무작스레 부숴버린다.


‘술 마시지 않기’, ‘싸움하지 않기’, ‘울지 않기’를 되뇌며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던 태식이는 양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나서 병원을 찾는다. 그는 병실에서 심하게 다친 상태로 엄마를 찾는 희수를 위로한다. 태식은 빈집에 돌아와 홀로 술을 마시며 서럽게 흐느껴 울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곤 악랄한 악당들과 맞서 싸운 후 화염에 휩싸여 생을 마친다.


영화 <해바라기>에서 울고 있는 태식


세월이 흘러 대학에서 수학과 조교가 된 희수는 지난날을 회상한다. 희수가 태식과 친구였던 여선생님에게 사랑이 뭐냐고 묻자 “사랑 뭐 별 건가! 행복했던 시간, 짧은 기억 하나면 충분한 거지. 기억하고 있다면 사랑은 변하지 않아.” 대답한 것을 떠올리며, 단란했던 어느 날 어머니와 태식과 함께 찍은 사진을 어루만진다.


영화 해바라기 양어머니와 희수 그리고 태식


영화에 간간이 들리는 배경 음악 이외에 양어머니 김혜숙이 부르는 노래는 이태선 작사, 박태준 작곡 <찔레꽃>이다.


가을밤 외로운 밤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 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앉아서 별만 셉니다.


가을밤 외로운 밤 잠 안 오는 밤

기러기 울음소리 높고 낮을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같은 곡으로 영화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 태식이가 부르는 노래 가사는 좀 더 구슬프다.


엄마에게 가는 길에 해바라기 꽃

해바라기 까만 씨는 맛도 좋지

배고픈 날 하나씩 까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면서 까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아프게 내려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내려오시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몇 해 전에 영화 주제곡이 담긴 시디를 구하러 몇몇 상점에 가서 찾으니 주인들은 한결같이 “그거 구할 수 없을 거예요.”란 대답을 했다.


글쎄,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든 상황을 극대화시킨 경향이 없지 않지마는 <암흑가의 두 사람>이나 <해바라기>에 나오는 비열한 인물들은 실제 우리 세상에서도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관객들의 가슴에 ‘정의의 불꽃’을 피우는 인물들일 게고, 악당들은 관람객들에게 ‘분노의 감정’이란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준다.


일상생활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나는, 당신은, 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과연 우리가 그어 놓은 선 밖에 내몰린 사람들, 정상적인 세상에서 소외되고 사회적 약자인 지노와 태식이 편에 설 수 있을 것일까?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연휴에 <해바라기>와 <암흑가의 두 사람>을 다시 한번 더 보며 곰곰이 생각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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