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진주 목걸이와 불 드 쉬프

감동 가득한 사람 이야기 5화 프랑스 작가 모파상 작품 모음

by 강문정

[대문 사진] 모파상 소설 <불 드 쉬프> 표지 삽화


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1850-1893)은 우리나라에는 <여자의 일생>과 <진주 목걸이>, <불 드 쉬프>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다. 남자면서 여자 심리를 어쩌면 그렇게도 잘 묘사하고 표현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기 드 모파상(1850-1893)

<여자의 일생>의 주인공 잔느는 그 시대에 귀족이나 부르주아 집안 딸들이 그랬듯이 수녀원에서 교육받고 성장해서는 아버지가 선택한 남자와 결혼해야 했다.


그녀는 결혼을 통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설렌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는 달리 잔느 남편은 그녀를 절망하게 만들고, 깊은 상처만 줄 뿐이다. 파렴치한 그는 밖으로만 돌다가 끝내는 마차 안에서 불명예스럽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잔느는 아들 폴에게 모든 사랑을 걸지만 아들 역시 잔느를 실망시키고 잔느 재산을 노리며 괴롭히다가 마침내 사생아를 낳아서 어머니 잔느에게 아기를 보내버린다.


유년과 소녀시절, 그녀가 인생과 결혼에 대해 막연하게 품고 있던 기대와 설렘, 희망과 환희는 찰나에 허공으로 사라진다. 그녀는 결코 빼낼 수 없을 만큼 굵어지고 깊게 박힌 못을 지닌 채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고, 날캉날캉하게 해져 버린 마음을 추스른다. 결혼이란 굴레로부터 시작된 절망과 고독, 분노와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온 잔느는 말한다.


“인생이란 게 그렇게 좋지도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것이지요.”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잔느가 철학자 같이 심오한 말을 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즐겁고 행복한 일들은 잠깐일 뿐이다. 우리의 일상은 고되고 단조롭게 이어지며, 때때로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을 겪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은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견디고 인내하는 법을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진주 목걸이> 주인공 마틸드는 평범한 공무원의 아내다. 어느 날 남편은 초대장을 아내에게 건넨다. 꿈에 그리던 파티였으므로 마틸드는 가슴 설렌다. 그녀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듯이 파티에 ‘어떤 옷을 입고 갈까?’ 생각하곤 가장 깨끗하고 고운 옷을 정성스레 손질한다. 다음은 ‘의상에 어울릴 액세서리는 무얼 하나?’ 고민한다. 아무리 서랍을 찾아봐도 옷에 걸맞은 장신구는 없다. 빠듯한 경제 형편에 액세서리를 살 수 없던 마틸드는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부유하게 사는 친구를 찾아간다.

파리 몽소 공원에 있는 모파상 기념비

그녀가 친구에게 진주 목걸이를 빌려 목에 거는 순간만큼은 상류사회의 일원이 된 듯 뿌듯한 행복을 만끽한다. 하지만 마틸드는 목걸이를 잃어버린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누?’ 머릿속이 하얗게 얼어 버리는 순간이다. 마틸드는 친구에게 그 사실을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일단 진주 목걸이를 돌려줘야지.’ 잘 사는 친구니까 목걸이가 진짜일 거라 스스로 판단하고 빚을 내 고가의 진주 목걸이를 사서 친구에게 돌려준다. 남편의 박봉으로는 엄청난 빚을 갚을 수 없자 마틸드는 여기저기 허드렛일을 하며 고단한 일상을 이어간다.


시간이 흘러 피곤에 절고 초췌한 기운 역력한 마틸드를 우연히 만난 친구가 너무나 변해버린 마틸드를 보고 놀라 안부를 묻자 그녀는 자초지종을 털어놓는다.


“글쎄, 시간이 지나서 말인데, 내가 그때 네 목걸이를 잃어버렸었잖아? 그러니 어쩌겠니? 네가 아끼는 것일 텐데, 그것과 같은 목걸이를 사서 네게 돌려주긴 했지만, 그걸 사기 위해 큰 빚을 졌거든. 그래서 그걸 갚기 위해 그만.” 이 딱한 사정을 들은 친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마틸드, 진작 말했어야지, 그 목걸이는 가짜였는데!”


요즘이야 독자들이 끝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단편, 엽편들이 워낙 많이 나와서 ‘그저 그러려니!’하겠지만 19세기 말만 해도 이런 형식의 글은 거의 없었다.

아울러 그가 1890년 발표한 단편 <불 드 쉬프(Boule de suif)>는 사회 여러 계층을 등장시켜 그들의 비열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1871년 프랑스가 프로이센과 전쟁을 치르던 때를 배경으로 쓴 이 작품에는 주인공 엘리자벳 루쎄와 세상 사람들 행동과 심리를 예리한 필치로 묘사했다.


<비계 덩어리> 소설 속 장면을 다룬 폴 에밀 부티니 그림.


‘불 드 쉬프’라 불리는 통통하고 예쁜 주인공 엘리자벳 루쎄와 다양한 사람들이 탄 마차가 출발한다. 마차 안에 앉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과는 격이 달라 보이는 불 드 쉬프가 함께 마차에 탄 것이 몹시 못마땅한 듯 눈총을 주며 그녀로부터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져 앉으려 애쓴다.


점심때가 되자 엘리자벳 루쎄는 알뜰하게 준비해온 음식을 꺼내 먹는다. 전쟁 중이라 문 연 식당도 없을뿐더러 이어지는 시골길에 딱히 먹을 것을 살 만한 곳도 없다. 마차 안 사람들은 경황없이 마차를 타느라 미처 먹을 것을 준비 못 했으므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불 드 쉬프와 그녀의 풍성해 보이는 바구니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처음엔 도도한 몸짓으로 그녀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던 사람들은 어색한 미소를 띠며 애원하는 듯한 표정까지 짓는다. 마음 착한 엘리자벳 루쎄는 혼자만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음식을 나눠준다. 그들은 음식을 받아먹으면서 자신들이 그녀와 좀 더 친분이 있는 것처럼 미소 짓는다. 마차 안 사람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지극히 선량한 얼굴로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다.


말발굽 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나른한 시간이 지나고 프러시아 군대가 주둔하는 병영 앞에서 프러시아 군인들이 갑자기 마차를 세운다. 그들은 마차 안 사람들을 검문하고는 수상한 징후가 없는데도 마차를 못 가게 한다. 영문을 몰라 안절부절 못하던 사람들은 마차가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이내 알아챈다. 독일군 장교가 불 드 쉬프에게 야릇한 눈빛을 보내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 드 쉬프'는 프랑스 인으로서 독일군 장교의 욕망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고 다짐하며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녀의 의지가 굳게 다져지면 다져질수록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마차 안 사람들은 그녀에게 점점 원망을 드러낸다. '불 드 쉬프'는 서서히 절망한다. 음식을 얻어먹을 때는 자신을 향해 존경과 감사의 표정을 짓던 사람들이 마차가 묶여 있는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며 모든 증오의 눈빛을 쏘아대자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 마지막 자존심은 허물어진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마차 안 사람들에게 떠밀리다시피 독일군 장교와 하룻밤을 보내고야 만다.


다음 날 독일군 장교는 마차를 출발시킨다. 마차가 움직이자 사람들은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거만하게 앉아있다. 그러나 주인공 '불 드 쉬프'는 처음 마차에 오를 때와는 달리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초췌해진 모습으로 말없이 있을 뿐이다.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누구도 가엾은 그녀에게 안부인사는커녕 미소 짓거나 눈길조차 주는 사람은 없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마침내 정오가 지나자 사람들은 저마다 아침식사 때 싸온 음식을 꺼내 야금야금 먹기 시작한다. 모두가 음식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배를 채울 때, 주인공 '불 드 쉬프'는 그들이 내는 음식 씹는 소리와 음식 냄새를 맡으며 허기와 갈증에 지친 채다. 밤새 시달리느라 잠 못 이루고 아침도 먹지 못한 그녀에게 누구 한 사람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 건네는 이 없다. 그 좁은 공간에서 허공만 바라보는 그녀 눈에는 가식적이고 야비한 인간들의 본능만이 어른거리고 마차는 마른 흙먼지를 일으키며 속절없이 달릴 뿐이다.


<비계 덩어리> 소설 속 장면을 다룬 삽화.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난 고등학생이었다. 그때는 마차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몹시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다시 읽을 때마다 두려운 느낌이 드는 건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도 자신이 인지하지 못 한 채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다른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하는 상황에서 방관하는 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보다 힘을 주도하는 집단 편에 서서 침묵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주위에 ‘불 드 쉬프’와 같은 사람은 없는지, 내가 필요할 때는 그에게 미소 지으며 다가가고, 그로부터 별다른 도움받을 것도 없고 나와 이해관계가 없다고 판단되면 냉랭하게 변해버리는 그들이 혹시 우리, 혹은 나 자신은 아닌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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