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냉정과 열정사이 / 괴테

감동 가득한 사람 이야기 19화

by 강문정

[대문 사진] 파리 생마르탱 운하 풍경


오래전 여름, 한국에서 오신 분으로부터 <냉정과 열정 사이> 영화 DVD를 선물로 받았다. ‘여느 사랑이야기와 다르지 않겠지!’ 생각하며 묵혀 두다가 마로니에 나뭇잎이 흩날리는 어느 가을날 영화를 봤는데 풍경과 배경 음악이 예사롭지 않았다.


원작은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공동 작업한 것으로 일반 소설과 다르다. 여자 주인공 아오이는 에쿠니 가오리가, 남자 주인공 쥰세이는 츠지 히토나리가 집필해서 화제를 모은 책으로 2005년 나카에 이사무가 감독했다. 이 영화는 파스텔화 같은 장면들이 내내 펼쳐져 은은한 빛으로 채색된 그림책을 보는 느낌이었다.


특히 엔야의 배경음악이 잘 녹아드는 피렌체 골목길과 밀라노 두오모 성당 전경 그리고 감동적인 거리 음악회까지, 헤어진 주인공들이 반드시 만나 다시 사랑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냉정과 열정 사이> 무대가 된 피렌체 두오모


쥰세이와 아오이는 대학에서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나가다 집안의 반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헤어진다. 둘은 수년간 헤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헤어진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고뇌한다.


두 사람은 각각 그들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곁에 있지만 자신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결코 마음을 줄 수 없어 괴로워한다. 갈등하던 그들은 둘 다 이별한 채 홀로 지낸다.


아오이와 쥰세이는 서로 다른 공간에 있으면서도 오래전에 나눴던 기억을 떠올린다. 두 사람은 “십 년 후 생일날, 밀라노 두오모 성당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곳을 찾는다.


밀라노에서 재회한 연인은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 후 다시 헤어지게 되고, 결국엔 피렌체 역에서 환상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다.


젊은 날, 열띤 사랑이란 감정으로 잠 못 이루고 고통받은 남녀가 한둘이겠는가? 특히 사랑하는 두 사람을 둘러싼 그들 가족의 반대나 그들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이성으로 인해 흔들린다.


사랑할 땐 가슴 설레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환희를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사랑 때문에 늘 흔들리고 불안해하며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이루지 못해 더 그립고, 이별했기 때문에 더욱 가슴 아픈 사랑이 첫사랑이다. 또한 그런 아픔을 견디면서 일상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사실 영화에서처럼 옛 연인을 만나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참 기쁜 일일 테지만, 이것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가정한다면 황당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싶다. 첫사랑을 찾은 것으로 제일 마음 편치 않은 이야기는 영국 찰스 왕자 예일 것이다.


1948년에 태어나 일흔 살이 넘었으니 왕자라 하기에는 좀 민망한 면이 없지 않다. 프랑스 방송에서조차 ‘저주받은 왕자’라는 타이틀로 왕좌에 앉지 못하는 그에 대한 다큐를 방영했을 정도다. 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장수하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을 모시고 보필할 수 있기에 찰스 자신은 ‘행복한 왕자’일지도 모른다.


그가 1981년 고인이 된 다이애나와 결혼식을 올릴 때, 동화 속 공주처럼 예쁘고 수줍어하던 신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결혼 전 여러 규수들과 염문을 뿌리던 노총각이 어쩌면 그리도 고운 소녀 같은 신부와 결혼할 수 있었을까? 왕자니까 가능했을 거다.


윌리엄과 해리를 낳은 다이애나는 앳된 신부에서 우아한 숙녀로 발돋움했고, 공식 석상에서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던 그녀는 시간이 흐르면서 기품 있는 자태와 세련된 매너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때때로 그녀 큰 눈에 어리곤 하던 안개 같은 절망의 빛은 외국인인 내게도 감지될 만큼 깊은 슬픔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결국 그들은 결혼 15년 만인 1996년 공식 이혼했다.


1997년 8월 31일 밤, 다이애나는 파리 16구 알마 막소 광장 아래 지하차도에서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만 서른여섯 살이던 그녀는 사고 현장에서는 살아 있었고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사망했다. 당시 이 사건은 세상의 논란이 됐다. 단순 사고인가? 타살인가? 타살이라면 이유가 무엇이며, 누가 사주했는가? 등등이다.


1997년, 차량 사고가 있었던 지하 차도 위, 알마 막소 광장에는 다이애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의 발길이 지금도 이어진다..


추측성 기사나 심층취재 방송이 나오긴 했으나 결론은 명확히 나지 않았다. 결국 그녀가 탔던 벤츠 차량이 리츠호텔에서 구입하기 전에 두 차례나 사고가 났던 문제 차량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훗날 그 사건에 깊이 관여한 누군가가 ‘양심선언’을 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파리 시는 다이애나를 추모하기 위해 사고가 났던 지하차도 위, 알마 막소 광장을 '다이애나 광장'으로 이름하였다.


다시 시점을 돌려보면 이미 이혼한 아내지만 아이들의 어머니요, 한때는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 시신을 찾으러 서둘러 파리에 온 사람은 찰스였다. 1997년 늦여름 날, 파리에 온 찰스는 당시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와 베르나데트 여사의 위로를 받으며 런던으로 돌아갔다.


9월 초로 기억되는 다이애나 장례식은 화려했던 결혼식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추모 속에 장엄하게 치러졌다. 프랑스에서도 텔레비전 주요 채널에서 실황방송을 할 정도로 깊은 관심과 애도가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 찰스에 대한 기사가 가끔씩 나왔는데, 눈길을 끈 건 찰스가 첫사랑이던 카밀라와 동행하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 다 각각 이혼한 자유인이니 함께 다닌다 해도 문제 될 건 없었지만 기자들은 예사롭지 않은 두 사람 행보에 관한 기사를 부지런히 세상에 알렸다.


청년 왕세자와 카밀라는 1971년 폴로 경기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왕세자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사교적이라 결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당시만 해도 왕세자가 평민과 결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에 어쩌면 그가 애써 결혼 자체를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1947년생으로 당시 적령기에 이른 카밀라는 소령 파거볼스와 결혼해서 자녀를 둘 낳았다. 기혼녀가 된 카밀라는 왕세자 찰스가 81년 다이애나와 결혼하고 나서도 그들이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두 사람은 연인 관계를 지속했고, 심지어는 폴로 경기 등 공식 모임에도 배우자들과 함께 참가해서 사랑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이애너가 찰스와 살고 있는 동안에도 찰스와 카밀라가 다정하게 있는 사진과 달콤한 밀어를 나눈 내용 등이 공개되어 다이애나는 몹시 실의에 빠지기도 했었다.


글쎄, 첫사랑을 못 잊고 방황하는 찰스를 순정파라고 해야 할지, 왕실의 권위를 지키느라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끝내 찾은 열정적인 사람이라 해야 할지!


세상 사람들의 눈이야 어찌 되었건 그들은 2005년 봄에 결혼식을 할 거라고 공식 발표를 했지만 바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들이 결혼 날짜를 잡은 즈음, 병세가 위독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서른 해 동안이나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사랑을 지속시키다 무려 34년 만에 재혼한 그들을 옹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둘의 관계를 알고 결혼생활 내내 괴로워했을 다이애나에게 연민을 느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방송에서조차 왕실 전기작가나 취재기자를 통해 카밀라를 둘러싼 왕실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다.


첫사랑은 말 그대로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까닭에 소중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나 사랑하는 방식이 서툴기 때문에 첫사랑이 이뤄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기 자신을 자책하며 헤어진 첫사랑을 더욱 그리워하게 된다. 이루지 못해 더욱 애틋하고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과 함께 했던 날들은 가슴 설렌 시간으로 아름답게만 기억하는 것이다.


첫사랑을 찾는 것은 같은 내용인데, <냉정과 열정 사이> 주인공들의 재회와 찰스와 카밀라의 재혼이 다르게 느껴진다.


십여 년을 헤어졌다 다시 만난 영화 속 인물들과 달리 찰스와 카밀라는 각기 아내와 남편, 자식들을 둔 기혼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30여 년을 세상이 다 알 만큼 연인 관계를 지속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각각의 배우자들과 자식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다이애나는 비명횡사를 했고 8년 후인 2005년 4월 9일, 쉰아홉 살 카밀라와 쉰여덟 살 찰스는 결혼식을 치렀다. 이제 칠순을 훌쩍 넘긴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첫사랑을 이뤄낸 자신들에 대해 만족하고 있을지!



첫사랑/J.W. 괴테


아~ 누가 그 아름다운 날을 가져다줄 것이냐

저 첫사랑의 날을

아~ 누가 그 아름다운 때를 돌려줄 것이냐

저 사랑스러운 때를


쓸쓸히 나는 이 상처를 기르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한탄과 더불어 잃어버린 행복을 슬퍼한다.


아~누가 그 아름다운 날을 가져다줄 것이냐

그 즐거운 때를.


첫사랑을 노래한 독일의 대문호 괴테


아무도 갖다 주지 않을 것이다. 혹여라도 첫사랑을 찾으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순간에 그 마음 접고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첫사랑과 함께 했던 기억은 그것이 어떠했건 간에 ‘무드셀라 증후군’ 증상처럼 모든 것이 아름답고 좋게 생각되지만, 헤어진 건 헤어진 것이니 그저 기억 속에 묻어두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첫사랑에게 못 해준 것이 있어 아쉽다면 현재 내 곁에 함께 하는 사람에게 잘해 줄 일이다. 첫사랑에게 이기적이고 서툴게 대해 후회된다면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 더 헌신적으로 사랑해주면 될 것이다. 첫사랑에 연연하며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고 귀한 시간과 자신의 삶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니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소중한 사람과 가족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지 두사람이 헤어진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가슴 속 깊은 곳에 서로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결코 잊지 못하는 첫사랑이라면, 그들 사랑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는 경우라면 예외일 수 있겠다. 가령 누군가가 첫사랑과 진정 인연이 있다면 굳이 애써 찾지않아도 시공을 초월한 어딘가에 연결된 운명의 끈을 따라 우연히 만나게 수도 있겠다.


이별한 첫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무던히 참고 견디며 수많은 날들을 보냈어도 사랑하는 마음 변함없이 지속되는 누군가에게, 그리움 사무치게 깊어 늘 마음 저리고 가슴 미어지는 아픔을 느끼는 누군가에게 살짝 귀띔해주고 싶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마법 같은 노랫말처럼 서로가 그토록 애절하게 그리워한다면 어느 날엔가 이승 아닌 다른 곳에서라도 애틋하고 아름다운 염원을 다시 그릴 수 있는 고운 여백이 그들앞에 꿈결처럼 펼쳐질 거라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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