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면

감동 가득한 사람 이야기 20화

by 강문정


초겨울 오후 바쁜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에 오자마자 감기 기운이 스멀거려 잠시 누웠다. 나락에 떨어지듯 잠에 빠져들었다가 눈을 뜨니 주위가 어스름했다. 정신은 돌아왔는데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이곳이 파리인지 서울인지, 혹은 내가 이 세상에 있는 건지 꿈속에 있는 건지 잠시 생각하는 사이 커튼 사이로 한줄기 빛이 비쳤다.


두꺼운 커튼을 걷자 하얀 커튼으로 희미하게 비치는 바깥 풍경이 신비로웠다. 주황빛과 보랏빛 노을이 장엄하게 번져 있었다. 세상이 경이로우면서도 한편으론 멀리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그리움이 더욱 깊어졌다.


선잠에서 깬 상태는 늘 혼미하다. 현재와 어린 시절이 겹쳐지며, 온갖 기억의 향연이 벌어진다. 특히 부모님이 사무치게 그립다. 물론 어머니와 아버지는 8,991 킬로미터 머나먼 서울에 계시기에 내가 마음만 먹으면 비행기로 날아가 만나 뵐 수 있으니 위안이 된다. 어머니는 내게 늘 말씀하시곤 했다.


엄마가 아주 어릴 적에, 나른한 여름 오후 할머니와 낮잠을 자곤 했는데 말이지. 할머니 팔베개를 하고 잠들었다가 자다 깨면 주위는 어느새 해거름이었지. 곁에서 주무시던 할머니는 안 계시고 나만 홀로 할머니가 베던 베개를 베고 홑이불을 덮고 있는 거야. 너무 허전하고 놀라서 “어머니! 어머니!”하고 대청마루 바깥으로 달려 나가면 “우리 애기 일어났나?”하고 인자하게 웃으시며 다가오시던 할머니 품에 “어머니!”하고 달려가 안기시곤 했다던가!


이 세상 누구에게나 부모님이 그리운 순간이 제각기 다르겠지만 내게는 해 질 녘 황혼이 찬란하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볼 때면 그리움이 깊어진다. 그래도 나는 카톡이나 전화를 하면 그리운 부모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


내 어머니는 학창 시절에 한국전쟁이 나서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역경을 견뎌야 했다. 나는 어머니 집안 분들이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전 우리나라가 극도로 혼란스럽던 시기에 있었던 사건의 피해자였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역사의 상흔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더욱 도드라져 그 상황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림자처럼 살아서 스멀스멀 움직인다. 영화나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분노가 끓어오르는 이야기, 애잔하고 한 서린 사연은 언젠가 글로 풀어내기 위해 자료를 준비해 쓰고 있다.


그런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명망 높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 많던 재산도, 수많은 토지문서도 전쟁의 포화 속에 허망하게 사라졌다. 전쟁을 겪으면서 어이없게 전 재산을 잃는 고난의 연속이었으나 어머니는 할머니가 계셔서 이겨 내실 수 있었다.


하지만 막내딸인 내 어머니가 입시 준비할 때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는 절망과 처절한 슬픔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굳은 의지로 대학에 합격하셨지만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 세상에선 아무런 기쁨도 느낄 수 없으셨다.


찬 기운 흐르는 이른 봄, 그리운 부모님 생각에 수업이 끝나면 서둘러 학교 기숙사 방으로 와서 함께 방을 쓰는 친구 모르게 많이도 우셨다던 어머니!


늦봄 수업이 없는 토요일, 거리에 나섰다가 노을빛 퍼지는 저녁 무렵, 어머니 앞 먼발치에 걸어가는 초로의 부인 단아한 뒷모습이 돌아가신 할머니 모습과 너무 닮아서 자신도 모르게 잠시나마 그 부인 뒤를 따라 걷다가 걸음을 멈추셨다.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세상에 안 계시는데! 이 세상 어디에서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아리고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셨다. 사무치는 그리움과 슬픔을 참으며 발길을 돌려 기숙사까지 돌아오는 내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흐느끼셨다.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그 말씀을 하실 때면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가곡을 좋아하셔서 즐겨 들으시는 어머니가 이따금씩 나직이 노래하시곤 했다.


초연이 슬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러운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한명희 작시, 장일남 작곡 <비목>이다. 아울러 어머니가 부르시는 여러 곡 중에서 내 가슴을 저리게 하는 또 다른 노래는 김안서 역시 <동심초>와 가요 <고목나무>다.


가사를 듣고 나는 그저 여느 사랑 노래라 여겼는데 어머니는 그 노래를 들으시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생각을 하셨다고 했다. 마음속엔 늘 살아계신데 문득 주위를 돌아보면 세상에 계시지 않는 그리운 분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하다, 기약이 없네. (동심초)


옛사랑 간 곳 없다, 올 리도 없지마는

만날 날 기다리며 오늘이 또 간다.

가고 또 가면 기다릴 그날이 오늘일 것 같구나. (고목나무)


다시 올 리 없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보고 싶고 그리움 더욱 깊어지는 것이리라. 지금이야 세월이 지나 파리가 낯설지 않지만, 처음 파리에 왔을 때, 나 역시 어머니 아버지가 그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낙엽 흩어지는 가을날 해거름 무렵, 내 앞으로 걸어가는 프랑스 부인 뒷모습이 내 어머니 같이 단아해서 나도 부인을 바라보며 걸은 적이 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해 질 녘이면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이 너무 그리워서 서울 방향인 동북쪽 하늘을 바라보곤 한다.


아주 오래전 내가 프랑스로 떠나던 날, 공항에서 나를 배웅하고 집으로 오신 아버지께서 안방으로 들어가셔서는 한참 후에 눈이 발갛게 부어 나오셨다는 동생 말을 듣고 아버지 사랑을 전해 받았다.


철든 이후론 아버지를 안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 해 한국에 다니러 갔을 때, 공항에 마중 나오신 아버지를 꼭 안아 드리는 것으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했다.


어느새 두 분은 구순이 되셨지만 내게는 오래전 부모님과 알프스에 갔을 때, 눈 덮인 몽블랑이 보이는 곳에서 푸치니 작곡 <별은 빛나건만>을 부르시던 아버지 모습과 아버지를 바라보시며 미소 짓던 어머니 모습으로 멈춰 있다. 그 행복했던 순간을 마음속에 잘 간직하면서 부모님 그리울 때마다 그날을 생각한다.


남편의 여행수첩


어머니


며칠째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잿물을 풀어놓은 듯 탄력을 잃은 이국의 하늘

그 무거운 천을 걷어 젖힌 후


오랜만에

얻은 푸른 하늘 몇 조각

그 옆으로 온갖 형상을 하고

늘어선 탐스러운 구름 군.


그 꿈을 가르고

긴 꼬리를 남기고

달아나는 고국 같은

비행기 하나


애써 다독거려 둔 가슴에

굉음을 남긴 후 바라본 하늘엔

오염되지 않은 탯줄 같은

그리움 번져 오르고


물살 센 강가를 메운 풀잎으로 서는 오후

지난한 시간의 숲을 훑는 바람 한 줄기가

던지고 간 그리운 이름 한 다발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 강문정, <양철가슴>, 문학동네, 2005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 중에 부모와 이어지는 사랑은 변함없는 것이다. 천륜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 누구보다도 내 품성과 능력을 알고 계시고 내 결함을 잘 알면서도 언제나 다독이시며 모두가 내게서 등을 돌려도 보듬어 주시는 분들이 부모라는 존재다.


물론 자식을 버리거나 상해를 입히는 상식 이하의 부모도 있지만 그건 극히 예외적인 일이고 대부분 부모는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무조건적 사랑을 한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어머니, 아버지란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차오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건 자기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부디 지금이라도 마음을 열어 부모에게 다가가면 좋겠다. 자신이 불행해진 상황이 부모 탓이라며 그 책임을 부모에게 전가시키는 사람들 역시 자신을 되돌아보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길 바란다.


가령 누군가가 자신의 부모에게 불손한 말과 행동을 했다면 그것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당사자인 자신과 부모는 그것을 잘 알고 있지 않겠는가. 분명한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이 부모에게 함부로 했던 언행이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 올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아울러 부모에게 불손하게 했던 행동이 자신 마음에 똬리를 튼 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비난보다 더 무서운 건 어느 순간 스스로 느끼는 자책과 후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자식들 낳아 키우시느라 빈 쭉정이처럼 여위고 힘없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부드러운 음식이라도 만들어서 찾아 뵐 일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전화라도 자주 해서 늙으신 부모님들을 위로해 드려야 할 것이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게 뭔 지, 드시고 싶은 게 뭔 지, 부모님이 즐겨 부르시는 노래가 뭔 지, 있다면 손이라도 잡고 함께 노래도 부르면서 소박한 행복을 느끼게 해 드려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은 부모님이 즐겨 부르시거나 혹은 부르셨던 노래가 무엇인지 알고 계시는지! 오늘은 부모님이 즐겨 부르신 노래라도 되뇌며 부모님과 함께 한 날들을 그리워해야겠다. 안부전화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려야겠다.


파리 세느 강에 드리워진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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