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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느 Oct 15. 2024

영국까지 가서 독서모임 연 사람.. 그거 저예요

런던에서 스무 달 동안 독서모임 운영한 이유

꽤 오랫동안 독서모임 고인물 멤버로 참여하다가 런던으로 장기 파견 근무를 가게 되면서 내가 모임을 열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임을 열게 된 이유는 크게 네 가지였다.

1. 독서모임을 하고 싶지만 마땅한 데가 없다는 현실적 이유 (없으면 내가 만들지 모!)


2. 일 외의 정체성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한창 컸던 시기


3. 런던에서 독서모임을 하면 한국과는 또 다르게 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


4. 장기적으로 혹시 이게 잘 된다면, 수익화해서 부수입원으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과연 이게 될까? 일과 병행해서 하기에 너무 힘들거나 에너지를 많이 뺏기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안 되면 접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가볍게 시작한 모임을 20개월간 이어가게 될 줄은 몰랐지.

중간중간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한 번도 쉬지 않고 1달에 적게는 1번, 보통은 3번 매달 모임을 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그 집념이 좀 무서울 정도.. 독하다 너..

나를 계속하게 한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봤다.



첫째는 역시 내가 좋아서 했기 때문이다.

내가 독서모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생각이 궁금해서, 그걸 통해 자기 확장을 끊임없이 할 수 있고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되어서라고 지난 글에서 정리했었다. (내가 5년 동안 독서모임 하는 이유​​​)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활동이기 때문에 모임 운영이라는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계속할 수 있었다.(내가 독서모임을 운영하지 않으면 대체 공급재가 없는 곳..!)

둘째는 사람이었다.

외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과 함께 하는 독서모임이라는 특성상, 자기 삶에 대한 방향성이 뚜렷하고,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이런 멋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매번 새로워… 짜릿해..


오셨던 분들로부터 이런 모임을 운영해 주셔서 감사하다, 덕분에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런 코멘트를 종종 듣는 것도 너무 따숩고 힘이 되었다.

사실 나는 외부의 칭찬 (외적 동기)보다는 자기만족 (내적 동기)에 의해서 움직일 원동력을 받는 게 더 큰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따뜻하고 긍정적인 코멘트가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줬던 건 분명하다.

세 번째는 내가 해보기 전에는 기대하지 못했던 의외의 이유였다. 본업 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긍정적인 영향이 꽤나 많았다는 점이다.


사실 본업이 너무 바쁘거나 피곤할 때는 ‘아 오늘 독서모임은 안 하고 싶다’ 고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막상 모임 장소로 향할 때는 다시 에너지가 솟고 설레었다. 일에 너무 매몰되어 있다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릴 수 있어서 오히려 리프레시가 되고, 스트레스 받던 일도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 ‘그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을 일은 아니었네’ 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냥 취미 활동일 뿐이지만 내 삶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본업과의 관계도 더 건강하게 만들어준다고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느꼈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었다. 만약에 모임 운영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더했다거나, 본업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컸다면 진작에 그만뒀을 것이다.



그럼 내가 독서모임 운영을 통해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돈을 받고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이익은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얻은 것은 많았다고 생각한다.

(원래 잘 되면 수익화를 해보겠다는 꿈은, 금전적인 것 외에도 얻는 게 많다는 걸 깨닫고 일단 접었다.ㅎㅎ)

가장 좋은 것은 역시 나의 또다른 정체성을 일궜다는 것.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처음으로 본업만큼의 열정과 열심, 그리고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가지고 하는 일이 생겼다는 게 자존감을 꽤 올려줬다.

회사는 지금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있더라도 사실 언젠가는 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발적으로 퇴사하든, 정년까지 다니고 퇴직을 하든, 중간에 원치 않게 그만두게 되든 언젠가는 내려놓고 싶지 않아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원할 때 내려놓을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가끔, 이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나는 뭘까?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직업을 빼고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캐릭터가 생겼다는 게 맘에 들었다. 나는 앞으로 언제 어디서든, 원한다면 독서모임 운영자는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두번째는 역시 사람.

독서모임을 통해서 꽤나 가까워진 관계들도 많이 생겼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생겨서 같이 마요르카 여행도 다녀오고 (혼자서는 엄두를 못 냈었던 곳!) 런던 내에서도 여기저기 종종 놀러 다녔었다.

평생 만나보기 어려웠을 다양한 직군, 직업, 회사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도 즐거웠다. 구글러, 이름만 대면 아는 글로벌 금융회사, 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분, 예술 분야 종사자, 사진작가, 어릴 때 캐나다로 이민 간 워홀러, 영국에 정착해서 17년 사신 분 등등. 일부러 만나려고 해도 어려울 수 있는 사람들인데, 내가 좋아서 연 모임에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서 찾아오고 진솔한 이야기들을 자발적으로 들려주는 게 문득.. 엄청난데? 라고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이게 내가 얻은 가장 큰 자산이지 않나 생각한다.

세 번째는 나의 재능 발굴 및 본업에 적용할 수 있는 스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것.

막상 모임 운영을 해보니, 진행하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대화가 너무 산으로 간다 싶으면 적절한 시점에 끊을 수도 있어야 하고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게), 소외되는 사람 없이 두루두루 이야기할 수 있게 발언 배분하는 세심함도 있어야 하고, 특정 주제에만 매몰되지 않고 다양하게 이야기해 볼 수 있게 적절한 질문도 던질 수 있어야 나도 만족스러운 좋은 시간이 되는 것 같았다. 이래서 유재석이 칭송을 받는 거구나.. 국민 MC..

세미나를 하면 발표자뿐만 아니라 사회자에게도 발표자 못지않은 사례를 하는 게 예전에는 이해가 안 됐었는데 (발표는 발표자들이 하고 사회자는 별로 하는 게 없지 않나? 라고 생각) 왜 사회자가 중요한 지 알게 되었다.

본업에서 나도 더 직급과 연차가 올라가면 때로 사회자가 되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때 이 경험이 매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사람들이 나의 진행을 좋아해주셔서.. ‘그래도 내가 진행력이 없지는 않구나’ 생각했고 이 스킬을 좀 더 잘 키워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후 수개월간 고민하다가 드디어 지난 7월, 한국에서도 독서모임을 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독서모임을 열게 된 이유는, 영국에서 열었을 때와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약간 다르기도 하다. 나의 상황도, 환경도 달라졌기 때문에 같은 마음가짐일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걸 하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을 오랫동안 했다.

그럼에도 결국 모임을 열게 된 이유, 모임 운영한 지 3개월 정도 지난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 다른 글에서 한 번 풀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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