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업 Aug 20. 2023

초시생이 정보를 얻는 방법

제로에 가까운 확률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은행에 가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호기롭게 목표를 잡았다.

하지만 목표를 잡자마자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문제의 본질은 하나로 수렴했다.


"그래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건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어떤 과목들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지, 돈은 얼마나 필요한지 등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행 채용 사이트에는 2013년까지의 기출문제들이 일부 올라와있었다.

(물론 지금은 매년 시험 문제를 공개하고 있다)

무려 6년 전 자료였고, 현재는 유형도 많이 바뀌고 난이도도 훨씬 어려워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기초 지식만 갖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6년 전 문제들의 난이도도 좌절스러운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의 난이도가 지금의 나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준비를 해야 그 정도, 아니 그 이상의 난이도의 문제들을 풀 수 있는지였다.


확실한 것은 내가 지금까지 듣고 있었던 행시 경제학 강의만으로는 한국은행 시험을 대비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도 매년 50~60명 정도의 사람을 채용하는 곳인데, 어쩜 이리도 정보가 없을 수 있는지...

검색을 하면 할수록 마음만 답답해질 뿐이었다.

실제 한국은행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통해 정보를 얻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반년 정도는 강의를 계속 복습하면서 기초를 다지는 데 집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라는 목표를 정한 뒤로는, 의미 없는 복습을 계속하기보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예상보다 조금 이르긴 했지만 일단 아무 스터디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네이버 카페와 같이 스터디를 모집하는 모든 사이트에서 한국은행 시험을 대비하는 스터디를 찾아봤다.

아무리 못해도 10곳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발견한 곳은 3곳뿐이었다.


하지만 스터디 모집공고를 보자마자 좌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3곳 모두 지원 요건이 재시생이거나, 초시생이더라도 시험 유형에 맞게 최소 1년 이상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시에 합격하는 케이스는 거의 없을뿐더러, 한국은행만의 시험 유형이 워낙 독특해서 전업으로 한국은행만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이 중요한 듯했다.

당연히 새로운 스터디원을 구하는 입장에서는 실력 있고 정보도 많은 사람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은행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풀이 매우 좁기도 했고, 시험도 학문적인 영역에 상당히 치우쳐져 있어 외부 강의도 전무했다.

그래서 스터디원들이 시험 유형에 맞게 모의고사를 직접 발제하고, 스터디에서는 시간을 재고 모의고사를 푸는 방식으로 스터디를 진행한다.

즉, 스터디원 개개인의 역량이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험을 경험해 보고 복기해 둔 자료가 있는 사람들, 이미 입행한 선배들의 자료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스터디에서 환영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실 한국은행 스터디는 굉장히 폐쇄적인 편이다.

좋은 대학에 나온 학생들은 선배들의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고,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교내에서 자체적으로 스터디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S대의 모 동아리에서는 대학생 때부터 동아리원들이 시험 문제를 하나씩 맡아 완벽하게 복기해 오고, 이에 대한 풀이도 자체적으로 진행해 해설집을 만든다.

시험 문제가 공개된다고 해도 어떻게 풀어내고 해석하느냐가 관건인데, 문제조차 거의 공개되어있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들이 나와 같은 초시생이더라도 이미 정보력에서 상당한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도 '그들만의 리그'가 확실해 보이는데 내가 도전해 볼 수나 있을까

아니 어쩌면 도전하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었다.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4년 간 경제학을 전공한 그들 중에서도 소수만 합격하는 시험이다.

정보는 물론이고 경제학의 기초도 없는 내가 합격한 모습이 머릿속에는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냥 지금 깔끔하게 포기할 것인가, 울며 겨자 먹기로 스터디에 지원 메일이라도 보내보고 포기할 것인가의 문제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미 밑바닥인 나에게 거절은 전혀 두려운 요소가 아니었다.

그들이 나를 거절한다면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모집 중이었던 스터디 3곳 모두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기본적으로 지원자격에 발끝만큼도 못 미치는 사람이다.

당연히 남들과 똑같은 내용으로 지원하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채용과는 다르게 법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감정에 호소해서라도 스터디원들이 느끼기에 나라는 사람이 1년 간 함께 공부해보고 싶은 사람인지를 설득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왜 한국은행을 준비하고 싶은지, 앞으로 공부는 어떻게 해나갈 계획인지, 스터디에 임하는 각오 등에 대해 장문의 지원 메일을 보냈다.


자기소개서도 아니고 고작 스터디에 지원하는 것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사람이 아쉬울 게 뭐가 있겠는가

후회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해보고 후회하자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은행에 가기로 결심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