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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업 Aug 15. 2023

한국은행에 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2년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캠퍼스의 풍경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았다.

나에게 2년 전 학교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부대끼며 나름 시끌벅적한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혼자 묵묵히 나의 갈 길을 걸어가는 공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학교의 풍경과 건물들은 나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무엇보다 집 앞의 독서실에는 중고등학생들이 많았었는데, 학교 도서관에는 취업을 준비하거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등 나와 비슷한 목표를 가진 학생들이 많았다.


물론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들에게는 내가 아저씨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취업을 빨리 한 편이어서, 아직 지금의 내 나이에 학교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도서관에서의 내 목표는 세븐일레븐이었다.

아침 7시에 도서관에 도착하여 저녁 11시에 공부를 마치는 것이다.

보통 아침 6시에 일어나 씻고 나오면 7시에는 도서관에 앉아 공부할 준비가 되어있다.

집을 나설 때는 눈도 잘 떠지지 않을 정도로 피곤했지만, 새벽 공기를 마시며 도서관으로 향하다 보면 어느새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7시에 도서관에 도착하면 항상 나보다 먼저 나와있는 몇몇 학생들이 있었다.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지는 모르나, 아침 일찍 도서관에 나와 두꺼운 책들을 쌓아놓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며 나도 늦지 않게 나와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속으로 기상스터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학교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나의 열정을 깨우기 위함이었는데

이 정도면 꽤나 성공적이었다.



금융공기업 시험은 기관마다 난이도의 차이가 크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이렇게 오랜 시간을 공부에만 전념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공부 외에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친구들을 만날 일은 더더욱 없었다.

차라리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내가 선택한 전공인 경제학이 나와 잘 맞는 것도 한몫을 했다.

강사의 강의력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경제학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한 챕터를 공부하면 한시라도 빨리 다음 챕터를 공부하고 싶었고, 집에 와서도 경제학과 관련된 책을 읽었으니 말이다.

한동안은 내 모든 말에 경제학 용어가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경제학에 미쳐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경제학을 활용해서 일을 할 수 있는 곳 있을까?”

나는 처음으로 관심 분야로의 취업을 원하고 있었다.


처음 취업을 준비할 때에는 대기업을 목표로 준비했었고, 이직하겠다고 결심한 곳은 금융공기업이었다.

두 번 모두 나의 관심 분야라기보다는, 연봉이나 안정성 등을 고려한 선택에 가까웠다.


물론 금융공기업에 가겠다는 목표가 바뀐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금융공기업들이 경영, 회계를 기본 베이스로 하고 있지만, 경제를 기본 베이스로 하고 있는 기관도 있다.

수많은 금융공기업 중 후자가 내 목표가 된 것이다.



경제학을 기본 베이스로 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한국은행’이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으로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곳이다.

채용 사이트에는 ‘대한민국 최고 경제전문가 집단’이라고 쓰여있을 정도로 경제에 관해서는 그 어느 회사보다 자부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만큼 입행하기도 굉장히 어려운 곳이다.

다른 금융공기업들과 시험 유형이 다르고 난이도도 상당히 높아, 금융공기업 채용 시장은 사실상 한국은행을 준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뉜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도 도전했다가 장수생이 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경제학을 공부한 지 고작 3달밖에 되지 않은 내가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도전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던데...

그런데 나무가 크고 멋있어서 쳐다만 보고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금융공기업을 가겠다는 목표만 있었을 때는 합격에 대한 불안함이 컸다면, 나의 방향성이 명확해졌을 때는 오히려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갈 길이 멀어도 목표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마인드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나는 일주일정도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가장 큰 문제는 기간이었다.

퇴사를 할 당시 목표 기간은 2년을 잡았고, 돈도 2년 동안 수험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만큼만 모아놨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 내가 지금으로부터 2년 안에 한국은행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인터넷을 아무리 찾아봐도 나와 같은 사례는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당연히 고민에 대한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리고 설령 나와 비슷한 사례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선택에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어설프게 노력해서 운 좋은 합격을 목표로 퇴사까지 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합격하면 100%인 것이고, 안 되면 0%인 것이다.

사례가 없으면 내가 그 사례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경제학 공부를 시작한 지 3달째

나는 한국은행에 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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