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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업 Aug 06. 2023

학교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퇴사 후 한 달

그 어느 때보다 열정이 가득해야 할 때에, 나는 아무도 없는 독서실에서 오히려 열정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에게 필요한 변화는 내 속에서 잠자고 있는 열정을 깨울 수 있는 것이어야만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이었을 때가 언제였을까"


이 시기를 떠올려보면 분명 내 안에 있는 열정을 깨울만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대학교를 다닐 때였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는 공부든 노는 것이든 어느 하나 마음먹고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대학생 때는 나름 열심히 살아온 편이었다.

원래 서울로 대학교를 가기에 수능 성적이 터무니없이 낮은 편이었지만, 말로만 듣던 수능 찍신(?)이 강림하여 예상치도 못하게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뜻밖의 서울 생활에 도취하기보다는,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해서 다른 친구들보다 뒤처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공부라는 것에 열정이 생긴 것이다.


평소에도 공강시간에는 웬만하면 도서관에 있었고, 시험기간에는 3주 전부터 도서관에서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다.

쪽잠을 자고 싶어도 편한 소파가 있는 과방보다는 도서관에서 불편하게 엎드려 자는 것을 택했다.

아마 대학교 4년 내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학교 도서관은 내가 가장 열심히 살아왔던 현장 그 자체였다.

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대학생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 열정을 다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 학교는 편도로만 2시간이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학교에서 집중력 있게 공부한다고 해도 하루에 4시간이라는 시간을 대중교통에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학생 때는 학교 근처의 외부 기숙사에서 살았다.

학교 기숙사는 아니었지만 운 좋게 모 기업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기업이 보유한 기숙사에서 무료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나와야만 했기 때문에, 졸업 이후에는 계속 본가에서 지내며 회사도 다니곤 했다.

내가 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자취를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고시원을 알아봤다.

월세가 50만원 정도이긴 했지만 보증금이 필요 없었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구비되어 있다는 점이 좋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낼 것이기 때문에, 방 크기가 작아도 크게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시원 방을 직접 보고 온 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방이 작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방 안에서 움직일 공간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빨래 건조대조차 놓기 어려웠다.

게다가 독서실 비용을 아끼려고 귀신의 집 같은 독서실을 예약한 경험이 있던 터라, 이번만큼은 돈을 아낀다는 이유로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보증금이 좀 들더라도 최소한 사람답게는 살 수 있는 월세를 구하기로 결심했다.

도서관에서 도보 10분 정도 거리의 방을 알아봤는데, 보증금 500에 월세는 36만원이었다.

보통 학교 근처의 월세는 1000/50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좀 노후화된 곳이어서 가격이 싸게 나온듯했다.

그래도 공간이 넓은 편이고 나름 갖춰질 것은 다 갖춰져 있었다.


나는 큰 고민 없이 이곳으로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졸업하고 다시 본가로 돌아간 후로 2년 만에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다.



20만원짜리 독서실도 비싸서 포기했는데, 그보다 더 비싼 36만원짜리 월세를 구했으니 조금 아이러니한 결정일 수 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독서실에서 공부하면서,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열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시설이 더 좋은 독서실로 옮겼어도 이러한 원론적인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항상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부모님의 케어 속에서 지내다 보니, 절박함보다는 안정감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곳에서 다시 공부할 생각을 하니 설레기 시작했다.

이러한 설렘은 퇴사하자마자 느꼈어야 했는데...

조금은 늦었지만 이제 정말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롯이 나 스스로의 힘으로 버티고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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