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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업 Jul 19. 2023

퇴사 후 한 달, 경제적인 압박과 우울함

28살 끝자락이 됐을 때 나는 다시 백수로 돌아왔다.

1년 4개월 간의 회사 생활은 나의 긴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원래부터 나는 취업준비생이었는데 잠시 먼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랄까


하지만 내가 취업준비생으로 다시 돌아왔을 땐 두 가지가 달라져 있었다.

하나는 항상 나를 믿고 지지해 주던 여자친구가 없어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겨낼 것이다.




제주도 여행 계획을 뒤로하고 공부할 독서실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리 못해도 1년 이상은 공부하게 될 텐데, 당연히 시설도 좋고 환경도 쾌적한 독서실을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독서실은 한 달에 20만원 정도로 비싼 편이었다.

대학생 때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나는 고등학생 때 이후로는 독서실을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한 달에 10만원이면 충분히 좋은 곳에서 공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10년 새 바뀐 물가를 체감하게 됐다.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면 이 정도의 금액 차이는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이러한 사소한 금액 차이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공부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히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 어느 때보다 공부하겠다는 열정이 강한 지금인데, 열악한 공부 환경쯤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는 주위에서 가장 저렴한, 한 달에 13만원이면 이용할 수 있는 독서실을 등록했다.

매달 아낄 수 있는 7만원으로 문제집을 더 사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역시나 시설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시설이 노후화된 것은 물론이고 커피나 음료 등 마실 것도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다.

내가 있는 공간에는 총 30개의 칸막이 좌석이 있었는데, 일주일 동안 그 공간에서 3명밖에 보지 못했다.

귀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공간에서 나 혼자 공부하고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동안 나는 공부 환경을 탓하는 사람들은 의지가 부족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으스스한 곳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보니, 오히려 작은 인기척과 소리에도 예민해졌다.

물론 사람이 너무 많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많이 나는 것도 문제겠지만, 사람이 아예 없는 것도 정말 큰 문제였다.


쾌적한 공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고, 비싼 독서실은 역시나 그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다.



독서실을 등록한 후에 내가 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인강을 등록하는 것이었다.

나는 금융공기업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경영학과 경제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애초에 전공이 비상경 인문계열이었다 보니 무엇을 선택하든 기초부터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전공에 대한 선택은 퇴사 전에 결정해 놨고, 조금 더 나의 흥미를 끈 전공은 경제학이었다.


보통 금융공기업 경제학 시험은 5급공채(행정고시) 경제학 강의를 들으며 대비하는 경우가 많다.

행정고시 수험시장은 이미 큰 시장이었기 때문에, 유명한 강사들의 강의가 많고 문제집도 많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행정고시 경제학 강의로 기초부터 다지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유명한 강사들의 강의는 역시나 가격대가 만만치 않았다.

보통 기초 이론, 심화 이론, 기초 문제풀이, 실전 문제풀이 등으로 강의가 나뉘는데, 기초 이론 강의에만 100만원 정도가 들었다.

(물론 실제로는 1순환, 2순환 등의 용어를 사용하긴 한다.)

이러한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끼고자 최신 강의가 아닌 1~2년 전의 강의를 등록했다.

물론 강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솔직한 내 마음은 한 푼이라도 비용을 아끼려고 했던 것에 더 가까웠다.


나는 퇴사할 때부터 최대 2년의 수험기간을 잡았고, 강의에 사용하는 비용은 300만원까지로 예산을 책정했다.

확실하게 목표를 정해놔야 정해진 기간과 예산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노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강의 비용은 미리 조사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 통장에서 100만원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니 장수생이 되면 안 된다는 불안함도 커지기 시작했다.



독서실과 강의를 등록하면서 경제적인 압박은 예상보다 나를 크게 짓누르고 있었다.

분명 퇴사하기 전에 공부를 위해 당연히 지출될 비용으로 분류해 놨음에도, "혹시나 수험기간이 1년 더 늘어나면 어쩌지"라는 생각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람도 거의 없는 으스스한 독서실에서 1~2년 전의 강의를 듣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이제 막 회사에서 벗어나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행복함과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설렘이 가득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월급을 받고 있을 때와 받지 않을 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마인드'에 있었다.

월급을 받고 있을 때는 큰 지출도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반면에, 받고 있지 않을 때는 작은 지출도 낭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퇴사하기 전에 세웠던 계획에는 이러한 마인드의 변화가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생활을 한 달 정도 하다 보니 "이렇게 공부한다고 정말 합격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밖에 들지 않았다.

회사 다닐 때는 항상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빴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없는 독서실에서 혼자 강의를 듣고 책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히키코모리가 된 것 같았다.

살면서 우울하다는 감정을 크게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맥주라도 마시지 않으면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우울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나에게도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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