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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May 18. 2024

언니와 함께한 일주일

 나의 친언니가 통영에 왔다. 20년 넘게 다닌 직장에 1년 휴직계를 낸 언니가 하나뿐인 동생과 일주일을 지내기 위해 통영에 왔다. 내가 사는 공간을 내어주고 나의 시간을 언니를 위해 쓴 일주일은 생각보다 진한 여운을 남긴다. 온다고 할 때는 선뜻 나서지 못했던 마음이 간다고 할 때는 시원섭섭함으로 다가왔다. 형제는, 혈육은 원래 그런 것인가, 떨어져 산 시간만큼의 공백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의아했다.
 언니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을 해야 한다. 8시에는 과일, 특히 사과와 샐러드를 먹어야 한다. 저녁에는 티브이보다는 책을 읽어야 하고 10시쯤 되면 잠을 자야 한다. 아침이 비교적 여유로운 나는 일찍 일어나 같이 운동을 하진 못하지만 아침 준비를 하고(참고로 나는 아침을 먹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같이 즐기는 시간을 가진다. 통영의 풍경을 제주도보다 사랑하게 되었다는 언니와 경치 좋은 커피숍을 7일 동안 다녔고, 맛있는 점심을 검색해 7일 동안 먹으러 다녔다.
 "네가 주로 가는 단골 커피숍은 어디야? 네가 주로 가는 단골 식당은 어디야? 너는 주로 장을 어디서 보니? 너는 이 시간에 주로 뭘 하면서 지내?"
 나는 나와 반쪽이 닮은 언니와 함께 단골 커피숍에 가서 늘 먹던 음료를 마시고,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맛있지? 라며 같이 먹고, 여기 마트는 해물이 싸고 싱싱하다며 통영 자랑도 했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책을 보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다음 같이 가자고 했던  제주도 일정을 짜며 머리를 맞댔다. 나의 삶 속에서, 나의 공간에서, 내가 일구어 놓은 것들을 같이 둘러보며 "우리 은주, 잘 살고 있었네."라는 말을 들을 때면 이런 말을 들을 일이 앞으로 또 있을까?라는 생각에 살짝 울컥하는 마음도 생겼다.
 언니가 가고 난 뒤 나는 다시 단골 커피숍에 앉아있다. 늘 정하여 놓고 거래를 하는 곳이나 손님을 뜻하는 '단골'이라는 단어는 내 삶을 말해준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시간에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말해준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렇기에 나의 단골 가게를 소개해 준다는 것은 나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내가 했던 생각을 같이 공감하기를 바라는 행동과 같다. 그래서 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의도가 있다.
 내가 일하는 오후 시간 동안 한산도, 박경리 문학관, 전혁림 미술관, 달아공원, 평림 일주로 와 풍화리 일대를 일주 한 언니는 충무김밥을 사들고 홀연히 떠났다. 일하는 사이 잠깐의 휴식이 아닌 자신에게 쉼을 허락한 언니는 지금 청송에서 사과를 따고 있다고 한다. 쉬는 것이 맞냐는 나의 물음에 시간이 주어졌으니 열심히 쉼을 즐기고 싶다는 말이 돌아왔다. 서로의 주름을 확인하고 건강을 체크하며 세상살이의 푸념을 늘어놓는 시간이 아니어서, 하필이면 하늘이 푸르고 날씨가 너무 좋아서 언니와 함께한 일주일은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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