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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춘남 이야기-1

소설

by Eun Mar 14. 2025

 부릉부릉~~~ 끽!! 틱!

 "아이고~ 춘남 씨, 이제 퇴근하시는구먼. 시계야 시계. 어쩜 이렇게 매일 제시간에 출퇴근할 수 있단 말이야. 거 참! 암만 봐도 성실한 총각이라니까~~"

 경비 할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한 길춘남을 살갑게 반긴다.

 "아~네. 일용직 노동자가 뭐 할 일이 있나요? 퇴근하면 바로 집에 와서 자야죠. 그래야 내일 또 일하죠. 하하"

 "그래그래~허허. 아니 근데 이 사람아~ 또 술을 사 가는가? 일하고 왔는데 따뜻한 밥을 먹어야지. 매일 저녁마다 술을 마시면 속 버리네."

 길춘남은 소주가 든 검은 봉지를 등 뒤로 살짝 감추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밥이 밥 해주는 여자가 되고 결혼해야지가 될 것이다. 얼른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한 길춘남은 '그럼~'이라는 고갯짓을 하고 걸음을 옮긴다. 그러다 경비실 맞은편 평상에 앉아있는 김선아를 보고 멈칫한다. 길춘남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경비 할아버지는 선아를 발견한다.

 "쯧쯧, 참 안 됐어. 또 싸우고 난리가 났네. 저 양반은 술 마시고 집사람 패는 대회 나가면 1등 할 인간이야. 귀신은 뭐 하나 저 인간 안 잡아가고... 선아만 불쌍해.. 어린것이... 쯧쯧"

 경비 할아버지의 말을 듣던 길춘남은 '그러니까요~'라는 고갯짓을 하고 천천히 김선아를 쳐다보았다. 아직 겨울은 오지 않았지만 저녁은 제법 쌀쌀했다.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쪼그려 앉은 선아의 하얀 다리가 달빛에 빛이 났다. 

 "멍멍~~ 컹컹~"

 "희망아, 이리 와. 죄송합니다...."

 '선아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 '희망'이구나. 희망이라....' 

 길춘남은 자신을 향해 짖는 희망이의 붉은 코끝과 주둥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흘러내리는 침을 보며, 그리고 쭉 뻗은 하얀 선아의 다리를 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로열 골드 맨션. 건령이 50년은 되어 보이는 낡은 3층 주택이다. 하늘과 맞닿아 있어 경치는 좋지만 그 경치를 보려면 반포장된 골목길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누가 이런 곳에 건물을 지었을까. 한때는 '로열 골드'라는 이름처럼 이 동네에서 제법 잘 나가는 건물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건물로 들어서는 골목길의 잡초 덩굴을 제거하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건물이 되었다. 한 집당 18평. 20평도 되지 않는 낡은 맨션에 사는 사람들 사정이야 다 거기서 거기다. 그래도 맨션이라고 경비 할아버지가 있다는 건 의외다. 월급은 받는 건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할아버지에겐 이곳이 예전엔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의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월세 없이 기거하는 주거의 개념이다. 아무도 경비 할아버지를 의식하지 않으며 할아버지도 입주민에게 월급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한때는 짙은 파랑이었던, 지금은 칠 벗겨진 하늘색의 지붕이 있는 건물 입구로 길춘남이 걸어간다. 입구 오른편 우편함은 오픈형이 된 지 오래다. 입구의 왼쪽은 거울이 있었던 흔적만 있다. 그래도 경비 할아버지가 청소를 하시니 계단은 먼지가 없다. 길춘남은 술병이 든 검은 봉지를 흔들며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오른다. 

 "나가!! 나가서 술 사 오라고, 이년아!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시끄러워~ 제발 좀 그만해. 술이랑 원수 졌냐? 곱게 처먹어."

 계단을 오를수록 101호 선아네 싸움 소리가 커진다. 201호에 사는 길춘남은 평정심을 찾으려 과하게 큰 숨을 쉰다.  

  "뭐라고? 이 년이... 야! 어디 가? 이 문 안 열어? 술 사 오라고.. 술 사 와!!!"

 "악~~~ 으악~~ 철썩!!! 퍽!!! 윽!!!!"

 길춘남의 꽉 쥔 손이 살짝 떨린다. 눈꼬리가 올라간다. 심장박동이 거세지고 얼굴이 붉어진다. 콧구멍이 벌렁거린다. 길춘남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집 안으로 들어간다.

 길춘남이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씻고 빨래를 돌리고 컵라면에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돌려 술 상을 차렸다. 라면 한 젓가락에 소주 한 잔, 햇반을 라면 국물에 말아 한 입 먹으면서 소주 한 잔. 소주 2병이 비워지고 있다. 101동 싸움이 오늘따라 길다. 날카로운 까마귀 울음 같은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제발 그만... 이제 그만 저 입을 닥쳤으면 좋겠다. 길춘남은 남은 라면 국물을 한 입에 털어 넣고 소주 한 병을 따서 입에 털어 넣었다. 

 와장창!!

 "그래 이 여편네야. 오늘 끝장을 보자. 딸년은 어디 갔어? 에미년이나 딸년이나..."

 오늘따라 길다. 오늘따라...

 '제발 이제 그만..... 조용히 해. 제발.... 닥치라고.. 닥쳐! 닥쳐!' 

 소주를 들이붓는 길춘남의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심장박동이 더 빨리 뛴다. 얼굴은 장미보다 붉다. 콧구멍은 커져서 터져버릴 것 같다. 참을 때까지 참았다. 이제는 더 이상 못 참는다. 그러니 이제 그만 저 망할 입 좀 닫아줬으면 좋겠다. 입에 걸레를 처넣든지 때려서 기절을 시키든지....

 '아니며 입을 찢어버리든지 키키키.....'

 소주병을 쥔 손이 멈칫한다. 동공이 커진다. 공기도 멈춘다.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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